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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풀림 Aug 27. 2024

담배  vs 명상

이왕이면 몸에 좋은 거

담배에 대한 환상은 아직까지도 나를 유혹한다.

담배에서 뿜어져 나오는 퐁퐁퐁 피어나는 하얀 연기를 바라보고 있을 때는, 왠지 모든 걱정근심이 바람처럼 날아가버리는 느낌이다. 회사에는 별도로 쉬는 시간이 없는데, 흡연가들에게는 담배가 땡기는 시간이 곧 쉬는 시간이다. 일을 하다가도, 회의가 끝날 때도 크게 구애받지 않고 일단 건물 밖으로 나간다. 때로는 혼자 때로는 집단을 이루어 회사 근처 흡연 구역에 몰려 있는 애연가들을 보면, 고약한 냄새에 얼굴이 절로 찌푸려지다가도 이내 부러운 마음이 들곤 했다. 왠지 그들은 스트레스를 날려버릴 수 있는 또 하나의 무기를 갖고 살아가는 느낌이었다. 회사에서 겪는 빡침과 압박감과 부조리함을 한 모금의 담배 연기로 날려 보낸다면, 가성비로는 최고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첫 담배의 추억은 대학교 1학년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동아리에서 간 농촌봉사활동이 고돼서 밤마다 끙끙 앓았다. 그러나 피곤한 와중에도 늘 밤마다 술판을 벌이긴 했다. 어느 날 하루는 술을 마시다가 잠시 남자 선배들이 화장실을 간 틈을 타 방문을 잠그고, 그동안 너무나 궁금했던 담배를 시도해 보기로 했다. 여자 동기들 넷과 함께, 선배들이 탁자에 놔두고 간 담배와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였다. 술은 거나하게 취했지만 이상하게 담배 앞에서는 긴장되었다. 용기 있던 친구가 먼저 한 모금의 호흡을 하고 숨을 내뱉는데, 예상과는 달리 '켁켁켁' 소리만 가득했다. 옆에 있던 친구는 얼른 담배를 빼앗고 자신이 보여주겠다고 했지만, 결과는 비슷했다. 결국 우리는 담배를 제대로 시도해보지도 못하고, 빨리 문을 열라는 선배들의 성화에 급히 불을 꺼야 했다. 대학생이 되고, 성인이 되고 나서 만끽하는 자유 중 1번은 술이요, 2번은 담배였는데 두 번째는 너무 시시하게 끝나 버렸다. 담배를 피우면 멋진 어른이 될 것만 같았던 나의 환상은, 허무한 시도의 끝으로 인해 아직도 남아있는 것 같다.


직장인의 영원한 숙적이자 친구인 스트레스는, 시도 때도 없이 불쑥 찾아오곤 했다.

그때마다 이렇게든 저렇게든 견디며 살았지만, 한편으로 손쉬운 해결책을 찾아 헤맸다. 눈에 들어온 건 흡연가들의 도넛 연기. 그들은 담배를 피우면서, 그리고 거기서 잡담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없애버리고 오는 것 같았다. 10분 남짓한 시간에 많은 것들을 하고 상쾌해진 얼굴로 돌아오는 동료들을 보니 다시금 나도 해볼까라는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흡연을 한 번 시작하면 내 성향상 골초로 살아갈 것 같아 대용품을 검색해 봤다. 비흡연가인 동료와 함께 비타 담배를 찾다가, 대신 둘이 춥파춥스를 먹으며 웃었던 기억이 난다. 담배를 시작하기엔 여태까지 시도 안 하고 건강을 유지했던 마흔 남짓 생이 아까웠다. 그러다가도 문득 직장에서 인간관계나 일로 스멀스멀 검은 기운이 생길 때마다 담배 생각이 간절한 것도 사실이었다. 

그렇다, 그냥 담배에 대한 동경이 아직도 있나 보다.


오늘 아침 출근길에는, 어제 일의 잔향이 없어지지 않아 마음이 시끄러웠다.

열받는 사건들, 묘하게 이상한 관계들, 과연 해결되기나 할까 생각되는 문제들로 말이다. 신나는 음악을 틀어놔도 잘 들리지 않는다. 늘 오던 길로 운전해 오다가, 갑자기 나무를 보고 싶어졌다. 마음의 고요함을 다시 찾고 싶다는 본능이 발휘되어, 회사 근처 샛길로 운전대를 돌렸다. 골목길에는 작은 동네 뒷산이 있었고, 크게 쭉쭉 뻗은 가로수가 있었다. 에어컨을 끄고 음악 볼륨을 낮추고 창문을 여니, 새의 지저귐까지 들린다. 선선해진 아침 공기가 훅 하고 들어오는데 무척이나 반가웠다. 3분도 안 되는 좁은 동네길 드라이브는 어지러웠던 내 머릿속을 확실히 맑게 만들어주었다. 그러면서 들었던 생각은, '아, 이래서 사람들이 명상을 하는구나'였다. 자연 풍경 속에서 이렇게 잠시 있기만 해도 좋은데, 명상을 하면 내 마음에 얼마나 도움이 될까 하고 훅 와닿았다.


나는 왜 매번 담배를 피우고 싶었지라는 생각을 다시 가져와본다.

그건 스트레스에 대한 회피 심리였던 것 같다. 연기에 안 좋은 건 싹 다 날려버리고 새롭게 내가 하고 싶은 좋은 것들을 시작하면 되겠다는 환상. 

그러다가 아침에 잠시 들었던 명상에 대한 생각과 비교해 본다. 결국 내가 필요로 하는 건 뭘까. 나의 멘탈을 살리는 건 무엇일까. 담배 vs 명상. 결국 누구나 다 알고 있는 결론을 내본다. 명상을 해보고 싶다로.

비단 담배가 몸에 안 좋기 때문만은 아니다. 혼자 생각하고 정리하는 힘이 절실하므로, 그걸 위한 도구가 무엇인지 고민하니 명상이 떠오르는 것이다. 흡연은 생각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진 게 아니라, 생각을 잊기 위한 방법이 아닐까. 


나의 명상은 가부좌를 틀고 싱잉볼을 가지고 하는 형태는 아니겠지만, 생각의 정리라는 측면에서의 글쓰기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글쓰기에 대한 예찬은 끝도 없지만, 오늘처럼 이렇게 담배와 명상을 같이 놓고 생각할 거리가, 글쓰기 아니면 있기나 했을까. 돌멩이 하나를 보고 나도 조약돌처럼 흔할 수 있지만 세상에 쓸모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기나 했을까. 매일 글감을 찾다 보니 모든 게 글로 귀결되긴 한다.

이렇게 조금씩 글쓰기로 나를 알아가고 내 생각을 알아갈 수 있으니, 이보다 더 가성비 갑인 스트레스 해소법이 있을까 싶다. 결론은 글쓰기가 최고? ㅎㅎㅎ라고 외쳐보며 얼렁뚱땅 마무리해 본다.


#몹글 #몹시쓸모있는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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