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풍경을 그리다
어쨌든 내일부터 회사에 나가야 하니 대중교통부터 검색하기 시작했다. 집에서 지하철역까지 걸어서 25분, 지하철 50분 직행. 이 정도면 나쁘지 않겠다 생각하고 다음 날 아침 운동화로 중무장한 채 집을 나섰다.
어차피 주말 동안 일도 안 할 거였는데 뭣하러 집에 노트북을 가져와서 이 고생인가 싶은 마음이 치밀어 올랐다. 아파트 지하 주차장부터 회사 지하주차장까지 운전해서 가는 동안은 절대 느끼지 못했던 감정.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걸으면 운동도 되고 좋을 것 같았는데, 슬슬 다리도 아프고 목도 마르다. 가방은 저기 보이는 공원 벤치에 벗어두고 가면, 훨훨 날아갈 수 있을 것 같다.
간신히 지하철역에 도착한 시간은 새벽 6시. 어라, 생각보다 이 시간에 사람들이 많아 놀랍다. 체험 삶의 현장처럼, 수많은 직장인들이 이렇게 열심히 사는구나 싶어 동병상련의 마음이 든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지하철이 오지 않는다. 원래 지하철 운행 시간이 따로 있나 싶어 찾아보니 이 시간대는 10분의 배차 간격이 있단다. 서울에서 2호선을 타면 1분마다 한 대씩 지하철이 쌩쌩 지나갔던 것 같은데, 경기도의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
영겁의 시간처럼 느껴진 10분이 지나고, 드디어 지하철에 입성!
쪼오기 보이는 자리에 얼른 앉아 무선 이어폰부터 꺼냈다. 오늘의 계획은, 유튜브로 영어 듣기와 브런치 글쓰기. 50분이라는 시간 동안 할 수 있는 것들이 이렇게 많다니, 아침에 출근하면 여유 있게 커피부터 한 잔 할 수 있을 것 같아 웃음이 지어진다. 가끔씩 대중교통을 타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며 볼륨을 올려본다.
그런데, 약냉방칸이라고 큼지막히 쓰여있는 표지판이 무색하게도 너무 춥다. 추워서 아무것도 못하겠다. 영어고 나발이고 귀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정신만 사나워지는 것 같아서 과감하게 유튜브를 끄고, 브런치 앱을 열었다. 오늘은 무슨 글을 쓸까 하고 글감부터 고민한다. 마음은 이미 글 한편 다 쓴 것 같은데, 첫 줄부터 막힌다. 평소 노트북으로 글을 쓰다가 갑자기 스마트폰으로 쓰려니 저항감이 든다. 글씨도 작고 잘 안 보이고 무엇보다 몰입이 안된다. 어휴, 정신 사나워라. 이놈의 집중력은 채 10초도 못 가고 끝나 버렸다.
다 때려치우고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본다.
앉아 있는 사람이나 서 있는 사람 대부분 스마트폰에 코를 파묻고 있다. 나도 그랬지만 말이다. 그러나 개중에는 간지 나게 종이책에 집중하는 사람도 있었다. 슬쩍 옆사람의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니 인강을 듣고 있는 것 같다. 저절로 존경심이 든다. 난 집중이 안돼서 좋아하는 웹툰도 잘 안 들어오던데, 사람 많은 지하철에서 공부를 하다니... 지하철을 매일 타면 저렇게 공부를 할 수 있을까 상상하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말았다. 장소가 어디던 상관없이 공부를 하는 사람들은 의지와 집념이 대단한 것 같다. 하고자 하는 목표가 있고, 그걸 이루기 위해 자신의 시간을 쪼개 할애하는 사람들이다. 루틴을 만들고 꾸준히 실천하는 사람들은 저절로 빛이 난다. 자신들은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퇴근길에도 어김없이 지하철을 탔다.
회사에서 밤 10시 이후 퇴근하면 택시비를 지원해 주는데, 아싸리 야근을 할까 말까 엄청나게 고민했다. 지하철을 타는 것도, 내려서 집까지 25분을 걸어가는 것도 천근만근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하철을 타고나서는 숙연한 마음이 다시금 든다.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 혼란스러움 중에서도 공부를 이어가는 사람들이 진심으로 존경스럽다. 매일의 고단함을, 자신을 위한 노력으로 치환하는 것이야 말로 인생의 진리를 실천하는 것이 아닐까 싶은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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