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은 더럽지만 머리는 냉철하게
학창 시절부터 착한 모범생으로 살아오며 줄곧 칭찬을 듣던 내가, 인생 처음으로 들었던 부정적 피드백은 “너 이러다가 졸업 못하면 어떡할래?”이다.
대학원 4학기 중간발표날 교수님께서는 내 논문 상태에 대해 진심으로 걱정하며 말씀을 꺼내셨다. 그러나 그 문장 자체가 나에게는 너무나 큰 충격이었다. 취직한 친구들과는 다르게 아직 경제적으로 독립도 못해 부모님께 손 벌리는 처지인데, 한 학기를 더 다녀야 될 수도 있다니... 끔찍하고 앞날이 깜깜한 기분이었다. 처음으로 인생의 쓴맛을 봤다고 생각했던 나는 그 상황 자체를 전혀 받아들이지 못했다. 같이 중간발표를 진행했던 동기와 선배들은 잘했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나 혼자서만 고배를 마신 것 같았다. 발표가 끝나자마자 학교 옥상으로 혼자 올라가 울다가, ‘여기서 떨어져서 죽으면 아플까?’라는 생각을 했다. 쪽팔렸고 당황했으며 많이 우울했다.
어찌어찌 대학원은 졸업했지만, 그 뒤로 가족같이 끈끈하게 지냈던 교수님과 대학원 선후배들과 몽땅 연락을 끊어 버렸다. 같이 밤새며 실험을 하고, 싸구려 소주로 인생 쓴맛을 나누며, 실험 결과가 원하는 대로 안 나올 때마다 도움을 마다하지 않던 사이였는데 말이다. 트라우마처럼 남은 그때의 기억은, 내 마음의 생채기가 되어 잘 없어지지 않았나 보다.
나는 어느덧 교수님이 우리 학교로 첫 부임하던 나이인 42살이 되었고, 대학원 사수 선배가 오랜만에 연락을 해 교수님 20주년 행사를 할 테니 오라고 했다. 이 나이 먹고도 아직까지 마음이 살짝 아린 것 같았지만, 회사를 잘 다니며 사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교수님에 대한 감정도 지금은 희미해져 웃으며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행사에서 본 교수님은 많이 후덕해지고 머리는 희끗희끗해 잘 못 알아볼 뻔했다. 10년 넘는 세월 동안 처음 보는 선후배들이 말을 걸어왔다. “교수님이 너 딸처럼 예뻐하셨는데 그동안 왜 연락을 안 하고 살았어?”
그랬다. 교수님과 나는 비슷한 반달눈과 무쌍까지 닮은 모습으로 부녀라고 불렸다. 까불거리는 나를 딸처럼 아껴주셨고 실험을 더 잘하기 위한 구체적인 피드백을 아끼지 않으셨다. 마지막 졸업논문 때도 진심으로 나를 걱정하셔서 매번 하시던 긍정적 피드백을 부정적 피드백으로 바꾸셨을 뿐이었다. 그리고 난, 그의 단 한 번의 부정적 피드백이 버거워 도망쳐 버렸고.,,
다 그런 건 아니지만, 회사에서 받는 부정적 피드백은 업무고과 평과로 이어져 사람들의 반응이 더 민감하다. 아무리 눈 씻고 둘러봐도 내가 잘못한 점이 없는데, 심지어 옆에 앉은 이대리보다 훨씬 잘한 것 같은데 이런 피드백을 받는 게 억울한 마음이 든다. 그러나 일을 더 잘하고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서는, 쓴 약과 같은 부정적 피드백도 필요하다.
부정적 피드백은 당연히 누구에게나 아프고 괴로울 수 있다.
특히 나같이 칭찬과 인정에 익숙하고 목마른 사람들, 완벽주의자들에겐 말이다. 때론 가시처럼 콕콕 가슴을 찌르기도 하고, 화살처럼 내 머리를 관통하기도 한다. 당신은 어떤가? 부정적 피드백을 받으면 어떤 마음이 들고 어떻게 대응하는가 궁금해진다.
아직도 부정적 피드백은 익숙하지 않지만, 극복하기 위해 나름의 노력을 하고 있다. 마음의 상처로 받아들이지 않고, 성장에 대한 자양분으로 받아들이기 위해 말이다.
우선 부정적 피드백을 받았을 때의 나의 이성과 감정을 분리해 본다.
보통 이때의 마음 상태는 심하게 말해 ‘기분 더럽다’ 일 수 있는데, 감정은 감정대로 날뛰게 내버려 둔다. 감정을 통제해 봤자 더 커지기만 할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성의 영역은 꽉 붙들고 계속 정리해 나간다. ‘이 사람이 나에게 이런 피드백을 하는 이유는 내가 조금 더 잘 해내기를 바라서일 거야. 내가 더 잘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믿기 때문일 거야.’라고 스스로에게 말해준다.
내 안에서는, 부정적인 피드백을 하는 사람을 향해 ‘자기나 잘할 것이지, 어디서 훈수질이야.’라는 마음이 자꾸 올라오지만 이성의 힘을 빌어 일부러 잠재워 본다. 그건 나한테 도움 될 게 하나도 없는 마음이기 때문이다. 사실 부정적 피드백을 하는 사람들에 따라 나의 반응이 조금씩 바뀌기도 하는데, 만약 상대가 진정성 있는 태도로 나를 위해서 하는 경우일 때 감정과 이성 모두 활짝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다른 경우일 때, 예를 들어 정치 싸움에 나를 이용하거나 자신의 실수를 나의 실수로 덮기 위해서 나에게 부정적인 피드백을 하는 경우에는 철저히 무시하는 편이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기 권법은 직장인 10년 차 이상이라면 누구나 가져야 할 내공 중 하나이다. 모든 상사나 동료들의 피드백이 나에게 다 도움이 되는 건 아니므로…
부정적 피드백에 대응하는 나의 두 번째 방법은 ‘글쓰기’이다.
사실 글쓰기는 어느 순간에나 다 도움 되는 만병통치약이긴 한데, 부정적 피드백에도 참 효과가 좋다. (써놓고 나니 약광고 같다ㅎㅎ) 다이어리 한편에 이 피드백에 대한 사실, 상황 등을 먼저 쓰고 내가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서술한다. 사회인의 미소 뒤에 숨겨 놨던 내 감정을 마음껏 방출하는 순간이다. 화가 나고 억울하고 얼굴이 화끈거린 마음을 풀어놓다 보면 조금씩 차분해진다. 그때 왜 그렇게밖에 못 했는지 갈겨쓰다 보면 스스로 깨닫는다. 아, 이건 내가 스스로 만든 핑계가 맞는구나. 다른 사람들에게 지지 않기 위해 강해 보이기 위해 마구 내 입장을 얘기했다면, 이제는 셀프 반성을 하는 순간이다. 내가 이런 부분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직접 깨닫고 나에게 다음 행동을 묻다 보면, 길길이 날뛰던 나는 조금 얌전해진다.
사실 피드백은, 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 생각한다.
꼭 해야 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건 알겠지만, 가능하다면 부정적 피드백은 평생 듣고 싶지 않다는 마음도 든다. 그러나 입에 쓴 약은 몸에는 좋다. 바른말은 귀에 거슬리지만, 슬기롭게 받아들인다면 지금보다 더 나은 내가 되어 있지 않을까...
#몹글 #몹시쓸모있는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