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의 퇴사가 나의 회사생활에 미치는 영향
남은 사람들의 씁쓸함에 대해
줄줄이 이어지는 퇴사 시즌이다.
반년동안은 잠잠한가 싶었는데, 다시 시작된 느낌이다. 누군가는 새로운 기회를 찾아, 누군가는 이 조직과 업무가 마음에 들지 않아, 또 누군가는 사람에 질려 퇴사를 한단다. 한 명이 퇴사 선방을 날리니,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줄지어 사표를 던진다. 그야말로 혼란스러운 시기. 보통 퇴사를 하기 전 친한 동료들과 사적으로 상담을 하기 때문에, 이미 들었던 퇴사 소식 자체는 그리 놀랍지는 않다. 그러나 퇴사 결정 한두 달 전부터 들어왔던 그 사람의 고민은 나에게까지 남아 마음이 뒤숭숭해진다. 차라리 다른 회사에서 좋은 제안을 받아 고려하고 있다면, 뒤도 볼 것 없이 나가라고 마음껏 흥 원해줄 텐데, 외부 계기가 아닌 내부 계기로 퇴사를 고심하는 동료를 보면 우울이 전염된다. 때로는 상사와 업무 스타일이 안 맞아서, 때로는 내부에서 자신에 대한 안 좋은 소문들이 돌고 있는데 듣기 싫어서, 또 때로는 이 조직에는 미래와 희망이 없다는 생각이 최고조에 이르러 퇴사를 생각한다고 했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실낱같이 남아 있던 내가 몸담고 있는 회사에 대한 애정과, 내가 하는 일에 대한 자부심이 바닥을 치는 것은 물론이다.
회사는 어차피 누가 나가던 누가 들어오던 잘 굴러간다고 한다.
다 안다. 머리로는 이해하고 나도 그렇게 누군가에게 뱉었던 말들이다. 여기에 빠진 것은 바로 감정이다. 회사는 사람 한 명쯤 없어져도 당연히 망할 일은 없을 것이나, 누군가를 잃었을 때 애도할 수 있는 시간과 여유가 절실하다. 퇴사하는 직원의 인수인계와 업무에만 신경 쓰지 말고 남아 있는 사람들의 심정도 헤아렸으면 한다. 남아 있는 사람들은 퇴사한 직원의 일을 도맡아서 해야 될 담당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상실을 경험한 사람들이다. 동료의 퇴사로 얼마 남지 않았던 의욕은 바닥이 되고, 나도 이참에 퇴사해야 되나 싶을 것이다. 특히나 나와 잘 맞았던 동료가 퇴사한다고 했을 때의 그 상실감은 슬픔을 넘어 허무함의 느낌까지 들 수 있다.
나와 6년 넘게 같이 일하며 호흡을 맞췄던 동료가 3일 만에 다른 부서로 이동했다.
강제 발령이다. 그녀가 얼마나 이 부서에 공을 들이고 아꼈는지 알기에 그 어떤 위로의 말도 하지 못했다. 아무리 위에 따져도 소용없었다. 받아들이던가 퇴사하던가 선택지는 둘 중의 하나다. 그녀는 나와 동갑내기로 마음을 나누는 사이였다. 업무 스타일이 달라 종종 부딪히기는 했어도, 서로의 일에 대해 진심으로 존중했다. 그런 그녀가 어제를 기점으로 우리 부서에서 사라져 버렸다. 우리는 황당함에 서로 눈물만 흘리다가, 팀원들이 볼세라 급하게 닦고 아무렇지도 않게 각자의 일을 해야 했다. 인수인계를 할 시간도, 그동안 어떤 업무를 했는지 파악할 시간도 없었다.
그러나 나에게, 그리고 다른 동료들에게 돌아오는 건 결국 그녀가 하던 일이었다. 슬퍼할 시간 따위 여유 따위는 없었다. 당장 몰아닥치는 일들을 그녀 없이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묻는 위아래 사람들의 질문에, 남은 일을 처리할 수밖에 없었다.
직장이라는 곳이 차갑고 매정하게만 느껴진다.
나의 오래된 벗이 떠나는 길에 진심으로 위로를 해주고 싶었다. 지금은 힘들더라도 네가 거기서 짱 먹고 잘 해내면 나중에 여기 생각도 안 날 거다, 아니면 점찍고 돌아와서 복수해라 등등의 유머를 건네고 싶었다. 같이 울어주고 웃어주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우리는 각자의 자리로 돌아와 전쟁 같은 월요일을 보내야 했다. 조직개편으로 시끄러워진 민심을 달래야 했고, 내년 매출 목표를 정하는 미팅을 해야 했으며, 팀원들에게는 주간 보고를 받아야 했다.
퇴사와 죽음을 비교하는 건 너무나 큰 오류이겠지만, 내가 지금 느끼는 상실감만큼은 너무나 커 마음에 구멍이 난 것 같다. 남은 사람들은 도대체 어디까지 감당해야 할까. 오히려 떠난 사람들이 부러워지는건 무슨 심보일까. 비단 남은 일뿐만이 아니라, 남은 감정이 회오리처럼 소용돌이쳐서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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