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의, 우주만큼 머나먼 간극
분명 A라고 말한 것 같은데...
새로 부임한 리더는 팀장들과 1:1 미팅부터 시작했다.
당연한 수순이었다. 각 팀의 역할과 구성원 정보, 그리고 과거와 현재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1:1 미팅만큼 효율적인 것이 없으리라. 또한 팀장 입장에서도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고 안전하게 속내를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자리이기도 하다. 각 팀장들이 어떤 이야기를 리더와 나누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반은 팀 소개 또 반은 각자 갖고 있는 고민 토로의 장이었으리라 짐작해 본다.
리더는 1:1 미팅 주제를 딱히 정하지는 않았으나, 각 팀장들에게 공통 과제 A를 언급했다. 부서에 대한 기본 데이터를 만들기 위해 꼭 필요한 사항이었지만 아직 누구도 제대로 손대본 적 없는 자료였다. 다른 업무에 밀려 우선순위 업무로 부각된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리더는 A 과제가 급한 건 아니나, 알고 싶은 정보라고 미팅 때마다 살짝 이야기를 꺼낸 것 같다.
A 과제가 부담스러웠던 나는 팀장들과 사석에서 만날 일이 있을 때마다 물어봤다.
"그때 내준 A 과제 얼마나 했어요?"
사실 A 과제는 우리 팀에서 주로 맡아서 해야 할 업무이기도 했고, 여러 상황상 잘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어서 제 발이 저렸다. 우리 팀에서 제대로 했으면 다른 팀장들한테 일이 가지 않았을 텐데 미안한 마음도 든다. 리더가 딱히 타임라인을 정해준 적은 없지만 그래도 2주 내에는 뭐라도 하나 써내야 된다는 압박감이 슬슬 올라오던 참이었다.
그런데 나의 간단한 질문에 대한 다른 팀장들의 답변은 예상을 훌쩍 뛰어넘었다.
"A 과제를 내줬다고? 난 들은 적이 없는데?"
"난 그 자리에서 당당하게 얘기했잖아, 그런 정보 알아오기 쉽지 않다고."
"A 과제가 뭐예요? 다른 것 때문에 머리 아파 죽겠는데 모른 척해야겠다~~~"
"아... 그거 팀원들한테 조사해 달라고 요청하긴 했는데, 어떻게 해야 될지 잘 몰라서 고민이 되네요."
푸하하핫! 열이면 열, 각자 어쩜 이리 각자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지.
한 어미 자식도 아롱이다롱이라고 했는데, 각기 다른 환경에서 일한 경력을 갖고 있는 우리들은 오죽할까. 문득 리더가 이 답변을 있는 그대로 들었다면 과연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궁금해진다. 아마 본인의 의도와는 다른 대답에 놀랐을 수도 있고, 반대로 본인이 강조하지 않은 내용이라 그럴 수도 있다고 넘어갈 것 같기도 하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리더는 A 과제를 말했고, 상대방은 A인지 B인지, 혹은 그게 나한테 어떤 영향을 가지고 올지 크게 인지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말하는 사람이 흔히 하는 착각 중 하나는, 내가 말하는 의도 그대로 상대방이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특히 직장에서 상사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의 경우 이 증상이 더 심할 수 있다.
"김대리, 내일 오전까지 B 서류 다 작성해서 보고해 줘요."라고 말했다고 치자. 해당 업무 지시를 받는 김대리는 대략 내일 오전, 그리고 B 서류에 대한 단어는 알아들었다. 그러나 이 간단한 문장에서도 간극이 발생하는 순간은 꽤나 많이 존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상사가 말한 내일 오전은 아침 10시를 뜻했으나, 김대리 입장에서는 12시 되기 직전인 11시 50분까지만 내면 된다고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B 서류를 다 작성한다는 것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김대리 입장에서는 완성도를 조금 낮추더라도 타임라인을 맞추는 것이 더 중요해 보인다. 반면 상사 입장에서는 막상 11시 50분에 받은 서류의 완성도가 낮다면 속으로 혀를 끌끌 끌찰 수 있다. 상사는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직원을, 알잘깔딱센(알아서 잘 딱 깔끔하고 센스 있게)을 타고난 직원을 그리워하지만, 대부분 짝사랑으로 끝나더라.
듣는 사람의 대변인이 되어, 말하는 사람들에게 조언을 하고 싶다.
내가 무엇을 말하던 있는 그대로 상대방이 다 이해할 것이라 어림짐작하지 말자. 특히나 직장에서의 대화는 고맥락 대화로, 듣는 사람에게 높은 수준의 센스, 눈치, 감 등등을 요구한다.
그래서 상대방이 못 알아듣는다고 답답해하는 대신, 나의 의도를 어떻게 하면 더 잘 전달할까 생각해야 한다. 사실 나도 실패의 실패를 거듭하며 매번 깨닫는 현실이다. 팀장으로서 팀원들에게 업무 지시를 했을 때, 팀장으로서 다른 팀장들에게 협업 요청을 했을 때 내 마음대로 안돼서 그야말로 속 터지는 경험을 여러 번 했다. 처음에는 상대방을 탓하기 바빴다. 30살 넘은 성인인데 왜 이것도 이해 못 하나 싶어서. 내 말이 한국어가 아니라 프랑스어로 들리나? 경력직인데 이것도 못 알아들어? 등등 별 생각을 다하다가 결국 문제는 전달자에게도 있다는 것을 깨닫는데 오래 걸린 것 같다.
말할 때는 상대방의 입장에서 한 번 더 생각해 보자.
내가 왜 그렇게까지 해야 되나? 다 큰 성인들이 다니는 회사인데 이것도 못 알아들으면 똥멍청이 아니야?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워워워! 그런 생각은 잠시 주머니에 넣어두고 마음을 가다듬어보자.
상대방은 자신의 상황에 따라 누가 말하던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다. 내가 화자가 아니라 청자일 때 그런 경험을 했다는 것을 떠올려보자. 상사가 말할 때 지루해 죽을 것 같아서 흘려듣다가 나중에 질문받아 당황한 일, 동료가 한참 열 올리면서 말하는데 나는 바빠서 노트북 자판기만 쳐대던 일, 누가 고민상담을 하는데 내 고민이 더 커 보여서 그의 고민이 안 들어온 일 등등 생각해 보면 꽤나 많을 것이다.
직장에서도 중요한 것 중의 하나는 바로 소통이다. 소통이란 쿵짝이 잘 맞아야 잘 되는 것인데, 내가 '쿵'을 외칠 때 상대방으로부터 '짝'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 조금 더 고민해 보면 좋을 것 같다. 결국 소통이란 상대방이 있어야 성립되는 쌍방향 게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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