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도 필요하다
설령 모르는 것이 있더라도 대부분 아는척하며 넘기기 일쑤다. 예를 들어 상사가 회의 시간에 하나도 이해가 안 되는 외계어를 쓰며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한다고 말한 상황이라고 하자. 그가 뭘 말하는지 전혀 모르겠지만, 주위를 둘러보니 나만 빼고 다 알아듣는 눈치이다.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잘 듣고 있는 상황이라, 섣불리 중간에 끊고 잘 모르니 다시 설명해 달라 말하기도 힘들다. 머릿속으로는 '젠장, 하나도 모르겠는데 도대체 다음에 뭘 하라는 거지?'라는 생각이 둥둥 떠다니지만, 말로 내뱉지는 못하겠다.
회의는 후반부를 향해 달려가고 상사는 모두에게 새로운 프로젝트에 대한 숙제를 주었다. 회사원 생활 10년 동안 늘은 건 눈치와 뱃살뿐이다. 상사와 눈이 마주치자 자동으로 자본주의 미소가 발사된다. 오늘 회의 내용은 하나도 이해 못 했지만, 상사의 기분이 나쁘지 않은 것 같아 다행이라 생각된다.
회의가 끝난 후 삼삼오오 모여 커피를 마신다.
공식 회의는 종료되었어도, 남은 참석자들의 사적 회의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편한 자리에서 속마음을 꺼내본다. "아니, 아까 부장님이 말씀하신 거 다 이해했어요? 나 혼자 못 알아들었나 싶어서..."
말을 꺼내기가 무섭게 동조가 이어진다. "헐, 나는 나만 모르나 싶었는데!", "아니, 도대체 뭔 말을 하시는 거야? 알아듣게 말씀하셔야지~~"
의외다. 예상 못한 반응이다. 하도 고개를 끄덕거리며 긍정의 눈빛을 발사하길래, 나만 바보인가 싶었는데. 한편으로는 동료들도 몰라서 다행이다 싶다가도, 다른 한편으로는 이럴 줄 알았으면 아까 모른다고 말해볼 걸 하는 후회가 남는다.
모르는 걸 모른다고 말하기는 쉽지 않다.
특히나 회사생활을 하는 직장인이라면 더 그렇다. 모른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시기는 신입사원일 때뿐이기 때문이다. 그때는 모르는 게 당연하고, 모른다 말하면 주위에서 친절하게 알려준다.
그러나 회사원 N연차가 되고 나서부터는 모르는 건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게 된다. 아니, 오히려 모른다고 말하면 계모에게 구박받는 신데렐라 처지가 된다. 그 연차동안 직장을 다니고 경력을 쌓았으면 응당 이 정도는 알아야 한다는 주변의 기대치는, 큰 부담으로 다가와 내 입을 다물게 한다. 몰라도 아는 척, 알면 더 아는 척. 그야말로 척척박사 흉내의 달인들이 회사생활을 더 잘한다는 평판을 받는 아이러니한 광경이 펼쳐진다. 어디서 섣불리 모른다고 말하는 용기 있는 사람이 나타난다면? 주위에서 곱지 않은 시선으로 그 사람을 바라볼 가능성이 있다.
'성적을 부탁해 티처스'라는 예능 프로그램을 빼놓지 않고 보고 있다.
성적과 진로에 대해 고민하는 중고등학생들이 매주 나와, 사교육 학원 선생님들의 상담과 교육을 받고 변화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이다. 금쪽이의 학생 버전이랄까?
이번에 나온 학생은, 집안으로부터 의대를 가야 한다는 압박감이 너무나 큰 환경에서 자라온 학생이었다. 중학교 때까지는 제법 공부도 잘해 당연히 의대를 가는 줄 알았으나, 명문 고등학교에 들어가고 성적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 학생의 고민을 듣고 학생의 현재 성적과 이해도를 파악한 티처스의 출연 선생님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말했다.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이야기해야 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너의 현재 위치를 파악하기 어렵고 그래서 앞으로가 더 안 보인다는 조언을 했다. 메타인지라는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결국 내가 모른다는 것 자체를 아는 것이 메타인지의 기본이다. 그리고 그 모른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다. 모르는 것을 뭉개고 여기에 계속 다른 지식만 쌓는다면 그야말로 모래성이라는 조언이 이어졌다.
회사원들의 '잘 모르겠습니다'라는 발언은 꽤 용기 있는 문장이라는 생각이 든다.
팀원으로 여러 명을 경험해 보았을 때도 마찬가지다. 팀장인 나에게 잘 보이기 위해 아는 척을 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모르는 것을 인정하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의 결괏값에는 큰 차이가 있다. 차라리 잘 모르는 것들에 대해서는 솔직하게 모른다고 말해야 한다. 그래야 같이 방법을 찾아보고, 더 나은 결과를 만들기 위해 머리를 맞댈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일을 하는 목적은 무엇일까? 일을 잘하고 싶은 욕망은 누구에게나 있고, 그 과정에서 타인의 인정을 받고자 잠시 모르는 것에 눈을 감는다면? 이번에는 그 상황을 넘길 수 있더라도 결국 나에게 남는 것은 껍데기뿐이다. 일의 핵심이 되는 DNA는 배우지 못하게 된다.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용기 내어 말해보자.
물론 여기에도 사회생활 스킬은 들어가야겠지. 공개적인 자리에서 말하지 않고 둘이만 있을 때 슬쩍 물어보거나, 혹은 당사자가 아닌 주변에 물어볼 수도 있다. 무엇보다도 모르는 것이 생기면 혼자 공부한 후에 정말로 잘 이해가 안 되는 것을 물어보는 것이 가장 좋다. 그래야, 내가 모르는 부분이 전체가 아니라 여기부터 저기까지라는 객관화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야, 남에게 배우며 알게 되는 부분이 구체화가 되기 때문이다.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자기 객관화의 시작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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