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풀림 Aug 21. 2024

똥파리로 시작해 감사로 끝난 하루

내가 가진 것에 집중하기

내가 사는 곳 근처에는 멋지고 근사한 대형 카페들이 많다.

주말마다 매번 어디에 갈까 검색할 만큼 다양한 선택지들이 있다. 불볕 같은 여름 더위를 피하기 위해 요즘 자주 카페를 가곤 하는데, 이번에 발견한 신상 카페는 상상 이상으로 좋았다. 유명 건축가가 고안한 것 같은 건물 외관과, 주위 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초록의 정원, 직접 원두를 볶는 로스터리 시설까지. 아참, 카페 건물 밖으로 물도 흐르게 만들고, 쉽게 보기 힘든 대나무도 심어 놨다. 

아이스 라테를 받아 큰 통창이 있는 창가 좌석에 앉는다. 지하로 내려왔음에도 불구하고 통창 밖으로는 인공과 자연이 어우러진 풍경이 펼쳐진다. 멋진 돌에 떨어지는 물줄기를 보니 나도 모르게 마음이 고요해지고 경건해진다.


엥? 그런데 이게 뭐지?

한껏 카페가 주는 예술적 영감에 빠져 있는데, 통창 밖에 똥파리 한 마리가 붙어 있는 게 보였다. 오늘은 마음을 먹고 새로 산 책도 읽고 글도 쓰려고 왔단 말이다. 이런 공간에서 커피를 마시며 글감에 대한 영감을 받으려고 왔는데, 다른 것도 아니고 똥파리라니... 나의 감상을 방해하는 존재가 거슬려 손바닥으로 탁 쳐보기도 하고 훠이훠이 손짓도 해보는데, 이 자리가 명당인지 날아갈 생각을 안 한다. 포기하고 다시 자리에 앉았지만 왠지 눈길이 자꾸만 그쪽으로 간다. 대나무와 돌과 물은 이제 잘 들어오지도 않는다. 오직 저 똥파리를 어떻게 쫓을까라는 생각뿐. 똥파리에 꽂히니 나도 모르게 스마트폰을 집어 들고 '똥파리 퇴치법'을 검색하게 된다. 저것만 없으면 여기는 완벽할 텐데...

이렇게 몇 분 가량을 똥파리에 집착하다가 문득 깨달음이 찾아왔다. 손톱만 한 존재인 똥파리 한 마리 때문에 1000평이나 되는 이 공간을 제대로 즐기고 있지 못하다는 자각. 은은한 조명과 근사한 음악, 아름다운 인테리어가 바로 내 앞에 존재하는데 그걸 간과하고 있었다. 


왜 나는 99개의 밝은 점이 아닌, 1개의 어두운 점이 더 신경 쓰일까.

완벽한 작품에 티끌이 생겼다고 생각해서일까? 내가 지금 누리고 있는 좋은 것들이 이렇게나 많은데 , 난 왜 똥파리가 유독 크게 보이는 걸까.

비단 나뿐만은 아닌 것 같다. 얼마 전 회사 동료와 이야기를 하는데, 자신이 회사에서 어떤 일을 하는지 모르겠고 인정을 잘 못 받고 있는 것 같다는 고민을 털어놓았다. 가만히 듣다가 참지 못하고 끼어들었다. 네가 얼마나 잘하고 있고, 다른 사람들이 너의 업무 방식과 결과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정말 모르냐고. 동료는 자신이 잘 못한다고 생각하는 업무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었다. 자기가 잘 해내는 것들은 잘 보지 못했고, 잘 안 되는 것들이 크게 다가온다 고백했다.


똥파리 때문에 기분 좋은 하루를 망쳤다고 생각했다가, 이내 마음을 고쳐 먹었다.

내가 가진 좋은 것들에 집중해야겠구나, 고작 똥파리 한 마리가 나를 망치게 할 수는 없다고 결심한다. 나에게는 사랑하는 가족과,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집, 그리고 안정된 직장과 좋은 동료들이 있다. 건강한 몸뚱이와 힘든 일이 있더라도 이겨낼 수 있는 정신력도 갖춘 것 같다. 그리고 이건 어찌 보면 당연한 조건들이 아닐 수 있다. 이 자체만으로도 진정 감사해야 될 일이다. 남들과 비교해 더 못 가진 것만 확대해서 보고 불평하는 삶을 산다면, 그건 참 불행한 삶일 것 같다. 이렇게 생각을 바꿔 먹으니 내가 가진 수많은 것들에 새삼 고마운 마음이 올라온다. 비가 퍼붓는 날씨에도 무사히 출근한 것과, 허리 디스크가 나아 앉아서 글을 쓸 수 있는 나의 컨디션, 그리고 글쓰기를 도와주는 노트북에게까지도 말이다.

영어 단어 'Present'는 명사로 쓰일 때 두 가지 뜻이 있다. 하나는 현재이고 하나는 선물. 현재를 있는 그대로 누리며 감사하는 것이, 바로 인생의 선물이라는 의미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선물 같은 하루를 시작하시기를 바라며...


#몹글 #몹시쓸모있는글쓰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