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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풀림 Aug 23. 2024

어디에 돈 쓸 때 가장 행복하시나요

시도와 맞바꾼 돈

모든 시도에는 대가가 따른다.

작은 도전이던 큰 경험이건 마음을 먹고 시간을 할애해야 하며, 가끔은 비용이 들기도 한다. 시도를 했다가 실패를 할까 봐 무서운 마음에 머뭇 거리 기다가도, 매번 새로운 무언가는 반짝이며 나를 매혹해 가끔은 불나방처럼 달려들기도 한다.


그것이 설령 초코빵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다른 사람들은 쉽게 이해하지 못할 테지만, 나는 초코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초코와 달콤함은 보통 세트로 따라와, 달달함을 잘 못 견디는 사람으로서 초코까지 불호의 취향이 되었다. 그런데 하루는 동네 베이커리에 갔다가 초코가 가득 들은 빵을 보고 이상하게도 군침이 돌았다. 머리로는 초코빵을 사면 너는 후회할 거다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내 손은 자동반사로 이미 빵을 집어 들고 있었다. 반짝거리는 페이스트리 반죽 안에 살짝 비치는 초코크림이 왜 이리 매력적이던지. 계산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의기양양하게 초코빵을 꺼내어 한 입 깨문 순간, 역시나 내 취향이 아니라는 걸 깨닫는다.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남편은 기다렸다는 듯 잔소리를 한 바가지 퍼붓는다. "그러게 좋아하지도 않는 걸 왜 3천 원이나 주고 사냐."부터 시작해서 이렇게 먹다 말 거면 처음부터 사지 말았어야 한다며, 돈의 소중함에 대한 연설을 한다. 결국 내가 한 입 베문 초코빵은 남편의 뱃속으로 쑤욱 들어가며 설교는 일단락되었다. 


남편과 반대로 나는 3천 원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

비록 한 입 먹다가 말았지만, 이 시도로 인해 내가 초코빵을 정말 안 좋아한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의 취향을 파악하기 위한 시도에 대한 비용이 3천 원이라면 그다지 나쁘지 않은 것 같은데...

음식을 남기는 것은 자원 낭비이자 환경오염이므로, 어차피 남편에게 재활용할 계획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남편 눈에는 내가 돈도 버리고 생각도 없는 사람으로 비친 것 같다. 그는 돈에 대한 가치관이 나와는 많이 다르다. 나는 주로 음식, 책, 강의, 공연 등에 돈을 쓰고, 화장품이나 자동차, 가전제품 등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반면 남편은 자전거, 전자기기, 집 등을 사기 위해 돈을 모으고 쓰는 것에는 열심히나, 좋아하는 커피를 살 때는 5백 원이라도 더 싼 곳을 찾아간다. 물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좋겠지만 가성비가 최고라 말하는 남편 눈에는, 내가 먹다 남긴 3천 원짜리 초코빵은 낭비의 상징이었을 것이다. 


어디에 돈을 쓰면 가장 행복할까.

내 경우는 '시도'이다. 새롭고 신기한 음식을 먹어본다던가, 평소 눈여겨보던 강의를 신청하다던가, 재미나 보이는 공연을 보러 가는 식이다. 내 취향을 알아보거나 내가 원하는 것을 배우는 것에 돈을 쓰는 것이 전혀 아깝지 않다. 물론 초코빵처럼 번번이 실패하는 시도가 있기는 하지만, 결과는 큰 상관이 없다. 10만 원짜리 강의를 듣고 별로라고 느낄지라도, 그것이 나랑 맞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수업료를 기꺼이 지불할 수 있다. 시도를 통해 나를 알아가는 것 자체로 값지다 생각한다. 경험해보지 않으면 절대 모르기 때문에 돈을 내고 실험을 해보는 것이다. 이런 것들의 데이터가 쌓이면 나중에는 나에게 맞는 것을 맞춤으로 골라 시도하며 만족도를 높일 수 있다. 글을 쓰다 보니 내 돈의 가치는 호기심을 충족하기 위한 것들에 초점이 맞추어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반면 샴푸를 사기 위해 인터넷 최저가를 검색하고 이것저것 비교해 보는 것은 정말 싫어한다.

시도에 대한 비용에는 관대한 반면, 내 시간을 돈과 맞바꾸는 것은 아깝다. 더 저렴한 항공권을 찾으려고 인터넷을 한 시간 동안 검색하는 것은 나에게는 곧 낭비이다. 시간이 돈보다 더 소중하기 때문이다. 그 시간을 아껴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더 많이 시도해 보고 즐거움을 얻는 것이, 10만 원 더 저렴한 항공권보다 값지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다. 내가 좋아하는 웹툰 작가 조경규 님은 평소 다이소에서 천 원짜리 손목시계를 사서 차고 다니고 옷은 일 년에 한두 벌 정도 살 정도로 검소하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과 여행에는 돈을 아끼지 않는다. 식비가 생활비의 7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먹는 것에 진심이다. 그러나 웹툰을 그릴 때 사용하는 노트북은 7년이 넘어가 말을 잘 안 들어도 아까워서 바꾸지 못한다. 

결국 내가 행복하기 위해 사용하는 돈의 가치는 내가 정하는 것이다. 남들이 명품을 사고 너무 좋다고 자랑한다고 해서, 관심도 없는 내가 그 가방을 사는 것은 허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돈 없이 살기 힘든 세상이다.

돈 때문에 삶이 각박해지기도 하고,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 들 때도 있으며, 눈이 돌아가 이상한 곳에 투자하기도 한다. 힘들게 번 돈을 함부로 써서는 절대 안 되겠지만, 매달 조금씩이라도 내가 행복한 곳에 돈을 쓰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그럼 이 세상이 조금 더 살만하다 느껴지지 않을까.


#몹글 #몹시쓸모있는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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