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보르작 멘델스존 쇼팽?
미미레도도시라솔라시미미파미레~~~
빠른 피아노의 선율이 귀성길 차에 울려 퍼진다. 리스트의 라 캄파넬라(La Campanella)라는 곡이라고 한다. 들어보니 귀에 익숙하지만, 내 손으로는 한 번도 틀어본 적 없는 음악. 추석 명절 고향으로 향하는 길, 우리 가족은 때아닌 클래식 음악 듣기 삼매경에 빠졌다. 이제 갓 3년이 넘은 이 차에서는 아마도 처음으로 틀어보는 클래식 장르였으리라.
발단은 바로 중1 딸아이의 음악 수행평가.
당장 이번 주 금요일이 시험날이라는데, 한두 마디 해보니 딱 봐도 잘 모르는 눈치다. 답답한 마음을 애써 숨기며 딸의 신청곡이었던 엔믹스의 노래를 당장 꺼버리고, 수행평가 목록에 수록된 음악 중 하나를 골라 재생한다. 약간의 항의가 있었지만 일단 무시했다.
시도레미파~~시도레미파~~~라라레레파레파파라레~~
총 14곡의 시험문제 중 11번, 발퀴레의 기행(바그너)이라는 곡이다. 곡명을 검색하다가 무슨 노래 제목이 이래?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막상 들어보니 묘하게 현대적이다. 딸의 표현을 빌리자면, 마치 스타워즈 삽입곡 같단다. 스타워즈를 본 적도 없을 테지만 그 말을 들으니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이어지는 다음 곡은 시작 부분을 듣고 바로 곡목을 맞춘, 호두까기 인형 중 사탕요정의 춤(차이코프스키). 어라? 이 곡도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은데? 크리스마스날 몰래 찾아온 반가운 손님이, 살금살금 걸어가는 느낌의 피아노 곡이다. 호두까기 인형 내용을 알고 있어 더 그런지 음악에서 동화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2015년 조성진이 한국 최초로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을 했다는 뉴스를 접하고도,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나와는 상관없는 유명인의 수상 소식이란, 일상에 묻히기 마련이니까. 그러나 딸아이의 수행평가 목록 7번, 쇼팽의 즉흥환상곡을 들으니 온몸에 소름이 오스스하고 돋는 게 느껴진다. 전율과 감동이 찾아온다. 이래서 다들 쇼팽, 쇼팽 했구나.
이제부터는 수행평가를 위한 강제 듣기가 아닌, 적극적 음악 감상이 시작된다. 물론 전지적 엄마 관점에서다. 딸은 무슨 노래가 나오는지 관심도 없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혼자만의 세계에 다시 빠져 든다.
창 밖의 달을 보며 들으니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가 더 감미롭다. 하이든의 놀람 교향곡 2악장을 듣다가는, 정말로 깜짝 놀라 버렸다. 잔잔한 시작에 한창 귀를 기울이며 집중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빠방! 하고 주위를 전환하는 큰 소리가 나와서 말이다. 이런 나를 보며 딸아이는 깔깔대다가, 설명을 하나 덧붙인다.
"우리 선생님이 그러는데, 하이든이 일부러 그런 거래. 사람들이 연주하는데 자꾸 졸아서 깜짝 놀라게 하려고."
어우야, 천재다 천재. 200년도 더 전에 설계한 그의 의도가 적중한 것을 감탄하며 듣는다.
나에게 클래식 음악이란?
잔잔하고 평화로우나 졸려운 음악, 딱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첫 직장에서 만난 동료와 함께 외근을 가는 길, 그가 클래식 FM을 틀어놨길래 채널을 돌리며 말했다. 일하는데 제발 신나는 음악 좀 들으면 안 되냐고. 동네 공연장에서 클래식 음악 콘서트를 할 때 찾아가 본 적은 있지만 감동은 그때 잠깐 뿐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클래식 선율이 내 마음속으로 들어왔다.
그 계기가 딸의 수행평가라는 게 어이가 없긴 하지만, 시작이야 어찌 되었던 이제라도 클래식 음악이 좋다는걸 알게 되었으니 상관 없다. 왜 예전에는 몰랐는데 갑자기 감동적이라 느꼈을까. 처음엔 나이를 의심해 봤고, 두 번째는 분위기를 의심했다. 아니다, 이 두 가지는 큰 이유가 되지 않는 것 같다.
내 나이 11살, 동생 나이 9살 때 갑자기 동생이 하늘나라로 떠났다.
지병도 없었고 사고도 아니었다. 정말 그냥 말 그대로 갑자기였다. 나랑 놀이터에서 놀던 동생은 어떤 계기도 없이 쓰러졌고, 시장에 갔다가 뒤늦게 그 소식을 들은 엄마는 응급실로 달려갔다. 심장마비라 손을 쓸 수가 없었다. 동생의 장례식을 치르고 집으로 온 엄마는 영혼이 반쯤 나가 있었다. 어린 나는 눈물 몇 번 흘리다가 금방 친구들과 놀러 나갈 수 있었지만, 엄마 아빠는 죽음을 항상 생각하고 있었으리라.
그때 우리 집 전축에서 가장 많이 재생되었던 음악은 바로 클래식이었다. 새카맣게 타 재가 될 것 같은 마음을 보듬어주고, 남몰래 눈물을 흘려도 괜찮다 말해주며, 다시 살아갈 힘을 줄 수 있었던 유일한 음악 장르는 클래식이지 않았을까.
자식을 잃은 슬픔을 나는 감히 상상할 수 없지만, 당시 클래식 음악을 틀어 놓았던 부모님의 마음을 이제는 조금은 알 것도 같다.
긴 추석 연휴를 마치고 회사로 복귀하니 다시 머리가 아파온다.
슬그머니 딸아이의 수행평가 목록을 다시 꺼냈다. 오늘은 슈만의 트로이메라이라는 곡을 틀어본다. 소용돌이치던 감정이 조금씩 차분해지는 게 느껴진다. 잠시 일을 멈추고 음악에 귀 기울인다. 음악이 주는 에너지를 오롯이 받아들인다. 슈만이라는 작곡가는 과연 자신의 음악이 전해져 2024년에도 재생될 것이라는 상상을 해봤을까. 아직도 나는 클래식의 무슨 곡이 유명한지, 어떤 작곡가가 위대한지 잘 모른다. 그러나 그들이 남긴 유산은 분명 지금의 나에게까지 내려와 감동을 선사한다.
유튜브에서 우연히 고명환 작가님의 고전에 대한 책과 철학을 소개하는 영상을 보았다. 고전이란 시간이 지나도 남는 것이라고 한다. 고전 문학, 고전 음악, 고전 철학 등 오랜 시대를 거치며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가치를 인정받은 것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