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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풀림 Sep 23. 2024

그럼에도 진심은 통한다는 믿음

먼저 믿어주세요

회사에서 성공하기 위해 혈안이 된 한 사람을 알고 있다.

처음에는 본색을 감추고 '둥글둥글하고 좋은 사람'으로 포지셔닝을 했더랬다. 해외 MBA를 졸업하고 외국에서 일한 경험으로 주위의 감탄과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던 사람. 그를 채용한 팀장은, 그를 몹시도 아꼈다. 허세 가득한 말투로 고객을 대하더라도, 다른 부서 사람들과 충돌을 일으켜도, 못난 자식을 감싸는 어미처럼 그의 잘못을 드러내고 타이르지 못했다. 어쩌다 보니 그는 팀에 없어서는 안 될 귀한 인재이자, 팀을 이끄는 전략가가 되어 있었다. 그런 그를 놓칠까 봐, 팀장은 언제나 전전긍긍했다. 그의 높은 자부심과 에고는 팀장과 동료들의 추앙을 받고, 교만함으로 변질되어 가고 있었다.

부서 내 정권교체가 일어난 직후, 그는 본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자신을 좋아했던 팀장을 뒤에서 욕하고, 업무능력 없다고 생각한 다른 동료들도 가차 없이 깎아내렸다. 평소 자기 마음에 들지 않던 사람들을 싸잡아 무시하는 발언을, 새로 부임한 리더에게도 거침없이 했다. 본인이 원하는 방향대로 조직을 만들기 위해, 윗사람을 구워삶았다. 하루에도 열두 번씩 보고를 가장한 전화통화를 하며, 담배를 피우며, 현란한 언변과 잡담 능력으로 제대로 세뇌를 했다. 결국 한 달 만에 조직 분위기가, 조직 문화가 그로 인해 바뀌고 흔들리게 되었다.


그에게 별 관심도 없고,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몰랐던 나에게까지 경종이 울렸다.

그의 권모술수의 손길이 윗사람뿐 아니라 내 팀원들에게까지 뻗쳐 나간 것이다. 팀원들을 한 명씩 불러 이간질이 섞인 발언을 서슴지 않았고, 당신이 싫어하는 A 동료를 이번 기회에 같이 손을 잡고 제거하자고 했다. A 뿐만이 아니라, B도 C도 다 당신 욕을 하고 다니니, 나도 너무 화가 난다며 거짓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했다. 대화 중간중간 양념처럼 처발라진 MSG는 더 가관이었다.

"내가 리더랑 얘기해 봤는데, D는 아마 회사 오래 못 다닐 거야. 그리고 내가 조직으로 큰 그림 그리고 있는 거 너만 알고 있어야 된다. 이거 딱 리더랑 나만 아는 얘기야. (찡긋)"

이를 처음 듣고는 내 귀를 의심했다. 아닐 거야, 설마. 그러나 그 이후에 줄줄이 이어지는 증언과, 내가 직접 목격한 상황들은 그가 정말 쥐새끼임을 증명하고 있었다. 회사 생활 17년 만에 이런 인간은 처음이었다. 자신이 잘 보여야 할 윗사람과 다른 동료가 이야기라도 하고 있으면, 미어캣처럼 동태를 살피며 그 자리만 바라보고 있었다. 부임한 지 얼마 안 된 윗사람에게 보고되어야 할 사실에 입각한 중요한 안건들은, 그의 세치 혀 안에서 녹아 없어지고 말았다.


치열한 경쟁환경 속에서 일하다 온 팀원 중 한 명은 나에게 충고했다. 

"팀장님, 이렇게 순진하게 속고만 사시면 안돼요. 회사는 전쟁터고, 그런 인간들은 정말 널리고 널렸어요. 여기가 원래 순수한 사람들로 이루어진 예외적인 곳이었을 뿐이에요."

그러면서 나보고 독하게 마음 단단히 먹고 그와 싸워서 이기라고 한다. 무턱대고 그나 다른 사람을 믿지 말고, 철저하게 의심해야 한다고 한다. 이야기를 듣는 내내 입에 쓴맛이 돈다. 아마도 나도 그 쥐새끼를 같이 씹고 뜯고 욕하느냐 더 그랬던 것 같다. 

왜 이지경까지 되었을까. 그는 우선 누구에게나 호감을 줄만한 인상과 말재주를 가지고 있다. 그러니 더러운 속마음을 숨기고 겉으로 하하 호호 웃으며 누구에게나 칭찬을 늘어놓는 것이겠지. 심지어 회사에서 자기가 욕하고 다니는 동료들을 향해 누나나 형이라는 호칭을 아끼지 않는다. 누가 보면 정말 절친이라고 생각할만한 행동을 한다. 나는, 그리고 우리 부서의 많은 동료들은 그의 행동을 진심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와는 반대로 태도나 표현이 조금 거친 동료들도 있다.

이과 전공에 석박사 졸업, 그리고 연구원 경력을 가진 분들은, 우리 회사 같은 판매 중심의 조직 문화에 적응하는데 시간이 조금 걸린다. 그동안은 연구 데이터를 쌓아 논문을 쓰고 과제를 충실하게 이행하는 것이 가장 큰 목표였다면, 여기는 어떤 일을 하더라도 고객과 판매로 이어지는 점이 크게 다르다. 그런 다른 특성 때문에 조직 내에서 인정받는 평가 기준도 다를 수밖에 없다. 그것이 정량적이던 정성적이던 상관없이 말이다. 특히나 영업의 마인드로 고객이나 동료, 윗사람에게 친절한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이 이런 회사 문화에서는 환영받는다. 데이터와 팩트가 중심이었던 기존 경험에서, 갑자기 사회적 미소와 풍부한 표현력이 더 중요해지는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문화의 가장 큰 단점은, 엄청나게 높은 잠재력을 가진 사람이 있더라도 표현이나 태도가 회사 문화와 맞지 않는다면 평가절하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일에 진심이고, 데이터를 잘 만들며, 통찰력이 높은 동료들이 많다. 그러나 소통과 표현의 방법이 조금 달라 그 진가를 잘 몰라주는 경우도 많다. 진심에서 우러나온 일에 대한 열정으로 열심히 의견을 표현하지만, 화법이 서툴러 전달이 안될달까. 너무나 안타깝다.


빌런으로 등장한 동료와, 통찰력 최고 레벨의 동료를 비교해 본다.

비록 거짓이지만 친절한 몸짓과 화려한 언변이 더 좋은 걸까, 아니면 조금 투박하더라도 진심 어린 마음이 담긴 행동이 더 나은 걸까. 간교가 없는 표현을 한다고 해서, 그 사람 내면까지 깎아 내려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진심이란, 진실이란, 진정성이란 언젠가는 드러나게 될 것이다. 표면에 가려져 아직 발견하지 못할 뿐이다. 소통이 서툴더라도 그 안에 담겨 있는 해박한 지식과, 비즈니스 통찰력과, 노하우는 어디 가지 않는다. 

회사는 전쟁터라고? 한편으로는 맞다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여전히 사람들의 진심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누군가는 나에게 아직 제대로 안 당해봐서 순진하다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크게 상관없다. 만약 진심이 통하지 않는 회사라면, 사회라면, 내가 속해야 할 곳이 아니라고 생각하기에...


#몹글 #몹시쓸모있는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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