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풀림 Sep 24. 2024

외국계 회사 좋은가요?

개인의 취향이지 말입니다

"외국계 회사 다니세요? 우와~ 너무 부러워요!"

가끔 이런 말을 들을 때가 있다. 경직된 한국 회사 문화에 지쳐 외국계로의 이직을 꿈꾸시는 분들과, 이제 막 사회에 첫 발을 내디딘 주니어 경력자 분들이나 취준생 분들이 주를 이룬다. 이런 종류의 감탄사를 들으면 사실 마음이 복잡해진다. 같은 외국계 회사에 다니는 업계분들과는 절대, 네버! 이러한 말들을 입에도 올리지 않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외국계 회사도 별반 다를 바 없다. 

지금으로부터 약 10년 전, 그동안 동경해 마지않던 외국계 회사로 처음 이직했을 때 나는 충격으로 시름시름 앓았더랬다. 여기가 80년대 무역상사인지 외국계인지 구별하기 힘들었다. 여직원이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고, 밥은 남자들끼리만 먹었으며, 심지어 손님이 오면 커피를 타라고 했다. 윗사람과 함께한 회의 시간에 의견이라도 낼라 치면, 다들 놀란 토끼눈으로 쳐다봤다. 말은 안 했지만 속으로는 이랬으리라.

'어딜, 떼끼! 부장님이 말씀하시는데 쪼렙 여자 대리가 끼어들어?'

상명하복, 군대문화 그 자체였달까. 직전에 다니던 중소기업이 훨씬 선진 문화를 가졌다는 걸 깨닫는 데는, 딱 하루면 충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변 사람들이 외국계 회사 어떻냐고 물어보면 나는 대체로 괜찮다고 답한다. 

그러고 나서 단서를 꼭 단다. 자신이 가장 일을 잘할 수 있는 환경이나 조건이 무엇인지 스스로 답을 찾아본 후 도전했으면 좋겠다고. 막연한 환상만 가지고 오면 실망이 클 것이라는 말도 덧붙인다.

누군가에게는 최적의 업무 환경일 수 있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최악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외국계 회사의 종류와 비즈니스 특성에 따라 그 환경이 다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프랑스계 회사에서는 워라밸을 중시해 퇴근 시간이 대체로 지켜지지만, 미국계 회사에서는 성과가 더 중요해 밤마다 노트북을 켜놓고 일해야 할 수도 있다. 아니지, 이것도 업계마다, 회사마다, 더 나아가 부서마다 다 다를 수 있다. 


외국계 회사 경력 10년 차로서, 내가 느낀 외국계 회사의 장단점을 공유하고자 한다. 

외국계 회사로 입사나 이직에 대한 도전을 응원하지만, 미리 현실을 알고 지원하면 도움이 될 것 같다. 나의 경험도 바이오 분야라는 좁은 업계와, 마케팅이라는 하나의 직군에서만 쌓은 것이기 때문에, 그냥 많은 의견 중 하나로 참고 정도만 하시면 좋겠다.


Q. 외국계 회사는 정말 좋은가요? 

(아마도 그렇겠죠? 제발 그렇다고 해줘요!)


A. YES

비교적 자유로운 근무 환경 : 모든 부서가 다 그렇지는 않지만, 국내 회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출퇴근이나 업무시간 조절이 자유롭다. 오늘까지 완료해야 할 프로젝트가 있다면, 집에서 일하던 회사에 나와서 일하던 상관없이 마감시한만 잘 지키면 별 문제없다.

글로벌한 업무와 교류  : 아무래도 외국계다 보니 여러 국적의 사람들과 함께 일할 일이 많다. 다른 나라 사람들과 교류하며 다양한 업무 방식과 문화를 경험하게 된다. 덕분에 시야가 넓어지며, 새롭게 배우는 것들이 생긴다.

수평적 문화 : 상하관계가 없는 건 아니지만, 한국 회사에 비해 덜 수직적이다. 특히나 외국인과 화상회의를 할 때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대부분 발언권을 가질 수 있다. 사장님의 이름을 대놓고 막 부르지는 못하지만, 가끔씩 한국 상사의 호칭을 뺀 영어 이름을 자유롭게 말하기도 한다. 


B. NO

개인주의/ 서바이벌 문화 : 이것도 회사마다 다를 것 같은데, 내가 경험한 쪽은 미국계라 더 그런 것 같다. 체계적인 입사 교육을 기대했지만, 현실은 회사 기본 매뉴얼과 함께 혼자 서바이벌해야 하는 구조였다. 일? 절대 알려주지 않는다. 혼자 깨우치고 배워가야 한다.

한국 문화에 대한 이해 : 외국계 회사의 고객도 한국인인 경우가 훨씬 많다. 그러나 외국계 회사의 외국인 상사들은 한국 고객의 특성을 잘 이해하지 못해, 괜히 직원들의 능력만 의심하기도 한다. 모든 게 한국 법인 내에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므로, 외국 보스를 잘 설득해야 하는데 쉽지 않다

밤낮이 바뀐 환경 : 미국, 유럽 등의 외국계를 다닌다면, 그들과 실시간 소통하기 위해 밤이나 새벽에 깨어있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직무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한국 시간과 외국 시간을 맞추는 것은 익숙해지기 전까지는 피곤하다.


C. Maybe

철저한 평가주의? :외국계 회사는 막 공정하고, 업무로만 냉정하게 평가할 것 같지만 반드시 그렇지도 않다. 일하는 사람은 한국인이고,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다 보니 업무 평가나 승진에 대한 불만이 거기서 다 거기다. 

꼰대 없는 세상 : 오우~~ 노노! 한국인 보스라도, 설령 아주 가끔 외국인 보스라도 꼰대는 반드시 어디에나 존재한다. 꼰대 총량의 법칙이라고, 만약 보스가 꼰대가 아니라면, 동료가 꼰대인 경우도 많다. 이건 어디까지 운이다.

늘어가는 영어 실력 : 정말 하기 나름이다. 외국계 회사를 다니더라도, 부서에 따라 직무에 따라 영어회화를 한 마디도 안 해도 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조사 빼고 다 영어 단어는 쓰면서도, 막상 외국인이 오면 어버버 하게 되기도 한다.


경험은 자산이다. 이런 모든 것들은 결국 자신이 경험해 보기 전까지는 쉽게 알지 못한다.

외국계라서 좋다 혹은 나쁘다의 개념보다는, 직군마다, 업무마다, 부서마다 많이 다르기에 하나로 퉁쳐서 말할 수 없다. 설령 글로벌하게 엄청 좋은 회사에 입사하더라도, 빌런 상사 만나면 외국계에 대한 환상이 와르르 무너지기도 한다. 반대로 아무 기대 없이 입사했는데, 외국계 회사의 문화나 복지와 찰떡궁합이라 오래오래 다니시는 분들도 봤다. 


막연한 동경은 금물이지만, 만약 외국계가 궁금하다면? 한 번 도전해 보시라고 권해드리고 싶다.

경험이 쌓여 내가 잘 맞는 회사가 어디인지 알기 전까지는 선택에 대한 아쉬움이 남을 것이니 말이다.


#몹글 #몹시쓸모있는글쓰기

매거진의 이전글 그럼에도 진심은 통한다는 믿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