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면서 살고 싶다
나조차도 인지하지 못하는 타고난 재능에 이끌려 계속 무언가를 배우고, 그 배움과 경험을 나눠 주기를 즐긴다. 처음에는 순전히 쓸데없는 오지랖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베풂에서 내가 느끼는 기쁨이 크다는 걸 느끼고, 이제는 온전히 내 성향과 강점이라 받아들이고 있다.
직장인 사춘기를 겪으며 진정한 나를 찾는답시고 매년 연말을 방황하며 보냈다. 커리어 상담, 강점 분석, 코칭 등등으로 이어지는 표류와 배움의 과정에서 나의 키워드를 발견했다.
‘타인의 성장’.
이 단어를 듣는 것만으로도 가슴속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올라왔다. 나의 오지랖은 남을 도와 그들이 더 나은 삶을 사는 것을 보고 싶다는 욕망과 같은 단어였다. 처음에는 계속 의심했지만, 몇 년간 내가 나를 지켜보다 보니 맞다는 확신이 들었다. 팀원들의 성장을 지켜보는 것도, 얼마 전 상담을 해준 친구나 후배들의 삶의 변화를 지켜보는 것도 무척이나 뿌듯한 일이었다. 그들이 느끼는 감사함보다 내가 느끼는 감격이 훨씬 더 크게 다가왔다.
처음 ‘커피챗(Coffee Chat)’이라는 어플리케이션에 가입하고 파트너로 등록한 결정도, 나의 고유한 특성을 드디어 인정하고 난 이후였다. 취업이나 이직, 면접을 준비하는 젊은 친구들을 도와주고 싶었다. 1000명이 넘는 직원들이 다니는 회사에서 멘토로 활동할 수도 있었지만, 회사에서는 업무 외에 모르는 사람들과 사사로이 엮이고 싶지 않았다. 실은 일이 많아서 상담을 할 시간도 없었지만, 나를 아는 사람들이 개인적인 영역인 내 상담 자체를 마음대로 평가하고 나의 인간성까지 함부로 입에 올리는 게 싫어서 그랬던 것 같다. 그렇게 나의 90%를 차지하고 있는 회사 인맥을 거르고 나니, 타인에게 도움을 건네고 싶어도 어떻게 해야 할지 방법을 찾지 못했다.
우연히 블로그에서 ‘커피챗’이라는 어플리케이션에 대한 소개를 접했다. 아직 알려지지 않은 이제 막 시작하는 플랫폼이었지만, 익명으로 누군가에게 작은 도움의 손길을 내밀기에는 오히려 적합했다. 거창하지 않게, 연습하는 마음으로 시작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뭐든지 처음부터 목표가 너무 크면 실망도 큰 법이니, 사이드 프로젝트답게 가볍게 도전하고 싶었다.
여기에 파트너로 가입을 하고 20-30분의 익명 상담을 하고 나면 말 그대로 커피 값 1만원 남짓의 돈이 나에게 입금되는 시스템이었다. 소소한 돈이라 그 자체는 사실 받아도 그만 안 받아도 그만이었지만 의도와 네이밍이 좋다고 생각했다. 커피 값으로 누군가는 용기 내어 의뢰할 수 있고, 30분을 할애한 파트너들은 시간에 대한 보상을 커피 값으로 받을 수 있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커피챗으로 첫 의뢰를 받았던 순간이 기억난다.
문과 전공, 진단회사의 바이오 콘텐츠 신사업팀 면접을 앞둔 지원자였다. 그는 미리 5개 정도 되는 사전 질문을 주었고, 나는 커피챗 시간인 20분의 3배가 넘는 1시간을 투자해 질문에 대한 대답과, 지원자에 대한 궁금한 점을 준비한 상태로 임했다. 문과인데 왜 바이오 쪽으로 이직하고 싶은지, 기존에 했던 업무와의 연관성은 무엇인지, 앞으로 5년 후, 10년 후 당신이 그리는 커리어의 모습은 무엇인지 등등. 아쉽게도 그와의 상담에 대한 후기가 남아 있지 않아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상담을 끝난 이후 그는 나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여러 번 반복했던 것 같다.
2년 정도 지난 지금 약 10회의 커피챗을 진행했다. 내가 일하는 분야가 워낙 특수하기도 하고, 내 직급이 주니어들에게는 조금 어려울 수도 있다 보니 의뢰 건수가 많지는 않다. 그러나 상담을 하면서 그들이 나에게 준 피드백은 기록으로 남아, 지금도 읽으면서 뿌듯함의 감정이 차오르게 만든다.
당장 돈이 되지도 않고 내 에너지를 많이 써야 하는 커피챗을 계속하는 이유는 뭘까.
우선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생각은,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 이외의 다른 가능성의 탐색이다. 마케팅이라는 업 외에도 내가 잘하고 보람된 일에 대한, 앞으로 가고자 하는 커리어에 대한 열린 문. 비록 작은 시도이지만 약간의 맛보기처럼 간접 경험을 할 수 있다. 잠깐이지만 배웠던 코칭 대화를 활용해보기도 하고, 그들에게 숙제를 다시 줄 때도 있다.
두 번째는 누군가를 진심으로 도와주고 싶기 때문이다. 2-30분의 대화를 하고 나면 가차 없이 앱이 종료가 되는데, 나는 아쉬움에 이 상대방을 찾아서(익명이라 불가능), 직접 만나 커피를 사주며 더 대화를 이어가고 싶어 진다. 아직 답을 못한 이야기들도 많고, 이들이 가진 어려움을 듣지도 못했는데. 잠재력을 더 이끌어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안타까움이 텔레파시처럼 통했는지, 같은 사람이 두 번 신청해 준 순간은 속으로 ‘야호!’를 외친다.
마지막은 가장 사사롭고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이유인데, 바로 이 상담의 경험이 글감이 되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커피챗이라는 것이 대중적인지, 나의 브런치 글 중 커피챗의 경험이 높은 조회수를 기록했다. 사연의 비밀성이 보장되어야 하기 때문에 자세히 소개하기는 힘들지만, 비슷한 상황에 있는 분들께는 도움이 되는 것 같다.
글감 때문이라고 말은 했어도, 커피챗에서의 대화에서 나도 얻는 것이 많다.
비단 도와준다는 느낌보다는 나도 매번 배운다. 청년들의 어려운 취업문에 대해서, 면접관이 아닌 면접자의 자세에 대해서, 해외 이주를 고민하는 이유 등등에 대해서 말이다. 얼마 전에는 커피챗을 통해 벤처기업에 다니면서 다른 직장으로 이직을 희망하는 사람을 알게 되었다. 시간이 촉박하다는 핑계로, 그의 이직 의도도 제대로 듣지 않은 채, 그가 옮기고자 하는 직장에 대해 환상을 갖고 있으며 다시 한번 생각해 보라는 조언을 했다. 그는 반쯤은 울먹이는 말투로, 현재 회사 운영이 어려워져 구조조정에 들어가 안정적인 직장을 다니고 싶다 말했다. 내가 그에게 건넨 것은 조언이 아닌, 망언이었다. 당장 생계가 힘들어질 수도 있는 상황에서, 한가한 소리를 한 것은 나였다. 나의 상담은 이렇듯 아직 덜 성숙되었다. 그래서 상대방의 어려움을 통해 나도 간접경험을 하고 그의 인생 방향성을 이해하려고 한다. 그리고 어제보다는 조금 더 도움 되는 질문과 설명을 건네려 노력한다. 돈은 안 돼도, 내가 좋아하는 일이기에 발전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아마도 이 글을 읽는 독자님들은 나보다 더 많은, 돈 안 되는 일들을 하고 계실지도 모르겠다는 상상을 해본다. 그것이 글쓰기이든, 봉사활동이던, 취미던 말이다. 돈이 안 되더라도 분명 내 내면을 끊임없이 채워주고 나를 즐겁게 끌어올리는 일들은, 언젠가는 나에게 꼭 도움이 되리라 믿음을 글을 통해 나누어 본다.
#몹글 #몹시쓸모있는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