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의 이해는 무엇일까 생각해 본 아침
중학교 1학년인 딸의 성적에는 아직 큰 관심이 없지만, '성적을 부탁해 티처스'라는 프로그램은 꼬박꼬박 챙겨 보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중, 고등학생이 출연해 자신의 공부와 성적에 대한 고민을 얘기하면, 일타강사가 직접 코칭해 성적을 올려주는 것이 콘셉트이다. 성적 향상이라는 명확한 목표가 있지만, 그것을 위한 코칭 과정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바로 내가 이 프로그램에 끌리는 지점이다. 학생마다 가진 각기 다른 고민, 집안 환경, 공부 방법, 원하는 진로가 있어 이에 맞추어 개별 상담과 지도를 한다. 각자 그동안 공부해 온 방식과 공부를 대하는 접근법은 천차만별이라, 그것을 관찰하고 문제점을 파악하는 강사의 분석이 나에게 재밌게 다가온다. 누군가 내 문제도 저렇게 낱낱이 검토하고 해석해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할 정도로 말이다.
이번 출연 학생은 중학생 때까지 성적이 톱클래스였지만, 고등학생이 되어 계속 내리막 길을 걷고 있는 성적으로 고민을 하는 경우였다. 특히나 수학은 5-6등급으로, 쉬운 문제도 제대로 풀지를 못했다. 흥미가 떨어지니 수업 시간에도 졸기 일쑤였고, 수학 교과서와 문제집은 깨끗했다.
이 학생의 공부법을 모니터로 관찰하던 일타 강사는, 한 장면을 보고 매우 안타까워했다. 수학 문제집의 개념 부분에 형광펜으로 줄을 그으며 읽다가, 옆에 있던 문제를 풀이 과정을 외워서 다시 쓰는 부분이었다. 그걸 보고 나서 강사는, 수학 공부는 암기가 아니라 이해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 말을 들은 학생은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더니 강사에게 질문을 했다.
"암기와 이해의 차이가 뭐예요?"
예상치 못한 질문이었다. 암기로 푸는 법과 이해해서 푸는 법에 대한 차이를 모를 것이라는 생각을 못 해봤는데... 강사는 이에 대해, 암기는 그냥 외워서 머릿속에 넣는 것이고, 이해는 '왜 그런지'에 대해 깨닫는 것이라는 현명한 답을 했다.
'암기와 이해의 차이도 모르면서 여태까지 무슨 공부를 한 거지'라는 생각을 하다가, 문득 나에 빗대 생각하니 크게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직장을 다니면서 일을 할 때, 누군가에게 이 일을 왜 해야 되는지 상세히 설명을 듣거나 해준 적이 없던 것 같다. 그냥 위에서 하라니까, 원래 이렇게 해왔으니까, 매달 제출해야 되는 리포 트니까 하는 거였다. 쉽게 말해 단순 암기였다. 이렇게 해야 되니 잘 외우고 숙달해서 그대로 하도록. 바쁘게 돌아가는 회사에서 일일이 그걸 왜 해야 되는지 말하는 게 쉽지 않다 치더라도, 이해의 과정 없이 일하면, 티처스에 출연한 이 학생처럼 결국 일의 본질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지칠 수 있다. 일은 해야 되겠는데 이해가 안 되니 스트레스는 받고, 엉덩이 힘으로 해보다가 포기하고 절망하는 시간이 오기도 한다. 잘하려고 누구나 노력하지만, 왜 하는지부터 고민하지 않으면, 일의 깊이가 깊어지기 힘들다.
비단 회사 일 뿐만이 아니라 커리어 패스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때부터 주입식으로 듣고 자랐던 말.
'학생은 공부를 잘해야 좋은 대학을 가고, 성공을 할 수 있다.'
사회 초년생이 되면 이 말이 조금 변경되지만 내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안정적인 대기업에 들어가야 하고, 결혼을 해서 자식을 낳아야 하며, 승진을 해야 하고, 돈은 얼마를 모은 다음, 내 집 마련을 해야 한다.'
이 문장들을 의심하면서 들어본 적이 있을까. 학생이 수학 공식을 통째로 암기하듯이, 이게 정답이구나 싶어 그대로 외운 채 따라가는 살아온 건 아닌가 싶다. 내 기준이 없이 남들이 정해 놓은 반듯한 모범 답안을 가지고, 마치 그것 말고는 다른 인생이 없는 것처럼 생각한 것 같다. 이 기준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마치 인생 끝난 것같이 드는 기분은 무엇일까. 아니, 이런 성공 방정식은 누가 만들었는지 의문을 가져본 적도 별로 없다. 인생이라는 복잡하고 긴 여정은, 시험 문제처럼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닐 텐데 말이다.
만약 인생에도 수학처럼 공식이 있다면, 성공이라는 정답을 내기 위한 저마다의 풀이 방법이 있을 것이다.
회사로 출근하는 길도 여러 가지가 있는 것처럼, 성공을 향한 여정은 이보다 훨씬 다양한 길이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자신이 좋아하는 유튜브에 콘텐츠를 꾸준히 올리며 성취감을 맛보기도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여행을 하며 자신을 발견하고 남과 교류하는 삶에 큰 의미를 느끼기도 한다. 성공의 모습은 한 가지가 아니고, 성공의 정의는 저마다 달라야 하는 이유이다. 각자 좋아하는 것과, 인생에서 추구하는 것과, 내가 보람을 느끼는 일들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남들이 말하는 빠른 성공 풀이법을, 왜 나는 통째로 외워야 하는가. 그것이 맞다고 꼭 믿고, 만약 그대로 못 풀면 실패한 인생이라 좌절해야 하는가. 결국 내가 원하는 인생의 모습은 내 안에 있으니, 나에게 다시 질문해야 한다. 나는 왜 그것을 원하는지,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떤 것을 해야 되는지 말이다.
#몹글 #몹시쓸모있는글스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