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배울 점은 있다
지난 몇 년간 우리 팀에 새로운 멤버가 들어올 때마다, 팀장인 내가 가장 많이 했던 이야기는 부끄럽게도 ‘그건 내가 해봤는데 안돼.’였다.
신입사원으로서의 열정과 의욕이 가득한 그들이 그동안 시도하지 않은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내는 경우, 나도 모르게 ‘흠.... 그건 요래 저래서 안 되겠는데요’라는 소리가 절로 나오고 인상이 찌푸려졌다. 아직 그들이 이 분야와 고객을 잘 몰라서 그런 의견을 내는 것이라 치부했다. 다른 업계의 상황에서는 통했을지 몰라도, 여기서는 안된다고 굳건히 믿었다. 정말 내가 다 해봤는데 안되었다는 안 좋은 경험치도 있었기 때문에 더 그랬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도 이 부서에 처음 왔을 때 그들과 비슷하게 이것저것 해보고 싶고, 열의가 넘쳤던 것 같은데 지금은 왜 이리되었을까. 일의 뼈대도 제대로 안 잡혀 있고 담당자도 없던 시절 입사해서, 6년 넘는 시간 동안 시행착오를 겪어가며 이 팀을 일궈왔다 생각했다. 그러나 팀원들의 눈에 비친 지금의 내 모습은, 라떼를 시전하는 꼰대 팀장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리라 짐작해 본다.
내가 팀원들에게 해봐도 안될 것 같다고 언급한 일에 대한 시점은, 그들에게는 단지 과거로 보일 것이다.
팀원 입장에서는, 지금 시도해 본 후 결과가 안 좋으면 수용할 테지만, 예전에 안되었다고 지금도 하지 말라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 생각할 것 같다. 이건 비단 나의 팀원들에게뿐만 아니라 얼마 전 부서 총괄로 부임한 상사의 눈에도 그렇게 비쳤을 것이다. 그가 우리 부서에 새로운 긍정의 바람을 일으키기 위해 이것저것 제안을 했을 때, 내 대답은 팀원에게 했던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지금 말씀하신 사항들 예전에 다 시도해 봤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글로벌팀에서 반대해서 무산되었어요."
이런 종류의 문장 외에는 다른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그 이후로도 비슷한 대화를 몇 번쯤하고 나서는, 그가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변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이 내가 겪었던 시행착오를 겪지 않고, 잘 될 것 같은 방법만 시도했으면 하는 것은, 결국 내 욕심일 뿐이었다. 설령 팀원들이건 동료들이건 상사이건 간에 말이다. 그 잘 될 것 같은 방법, 정해진 방법, 쉬운 길, 성공할 것 같은 방법이라는 것은 현재가 아닌 과거 시점의 경험일 뿐인데, 정작 이미 지나간 경험에서 한 발자국도 못 벗어나는 건 나였다. 그들이 실패를 경험하게 하고 싶지 않다 생각했던 것은, 나의 잘못된 욕심이었다. 통제 불가능한 결과의 영역을 가능하다고 잘못 믿고 있는 바람에 , 오히려 그들을 통제하고 있었다.
새롭게 이것저것 해보자고 말하던 팀원들의 반짝이던 눈망울이 우울한 표정으로 바뀌면서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했다. 그건 내 탓이 아니라 조직문화가 원래 그런 거라고, 비즈니스 환경이 별로 좋지 않아 그런 거라고, 고객사가 변덕스러워서 결과가 잘 안 나온 거라고 우겨보고 싶었지만, 나에게 책임이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안다. 그리고 이런 느낌은 바늘처럼 내 심장을 콕콕 찔러와 나를 반성하게 만든다.
다시 팀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본다.
그들은 예전부터 답답한 마음이 한가득이었겠지만, 팀장이 자꾸 반대하니 자신의 의견을 제대로 펼치기 힘들었을 것이다. 아니, 어느 순간부터는 입을 꾹 다물고 그냥 고개만 끄덕였을 수도 있다. '어차피 말해봤자, 팀장 마음대로 할 텐데 뭘'이라고 생각했을 것 같다.
회의 시간을 핑계로, 브레인스토밍을 계기로, 그들에게 아이디어를 물어봤다. 이번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끌고 가려면 무엇을 해야 할지, 경쟁사와 다르게 시도해 볼 만한 것은 무엇인지, 어떤 것을 하면 우리 팀이 가장 뿌듯할지 등등을 논의했다. 계속 내 눈치만 보던 팀원들은, 의외로 내가 그들의 의견에 반대를 하지 않자 표정이 살짝 풀리며 다양한 의견들을 제시한다. 개중에는 정말 답답해서 '안돼~~~~~!!!"를 외치고 싶은 아이디어도 있었지만, 간신히 참아본다. 팀장이 반대를 하면 결국 아무도, 아무 의견도 내지 않을 것을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인내의 시간을 거치고 서로 생각과 의견을 교환하다 보니, 제법 괜찮은 안들이 쏟아진다. 의견에 대한 필터링은 그 이후에 하면 될 문제이지, 처음부터 할 필요는 없었는데, 이렇게 겪고 보니 알겠다.
디지털 마케팅을 더 중점적으로 발전시켜야 된다는 아이디어도 결국 팀원들이 제시한 의견이다.
우리 분야의 고객사들의 디지털 마케팅에 대한 수용성이 낮다는 이유로, 자원 투자를 계속 반대했던 나였다. 이렇게 해서 투자 대비 성과가 얼마나 나오냐고 다그치기만 했었다. 꼭 해야 될까라고 질문을 가장한 거절을 해왔던 것도 바로 팀장인 나였다. 그러나 그들의 새로운 시도로 이제는 디지털 마케팅은, 경쟁사와 차별화를 가져갈 수 있는 좋은 무기로 자리 잡았고, 지금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주요한 자원이 되었다.
이외에도 그들이 생각하고 계획한 대로 진행해서 잘 된 예시들은 수도 없이 많다. 그들은 매번 했던, 기존에 잘 되었던 방법이 아닌, 새로운 성공 방정식을 써 나가고 있다. 물론 중간에 크고 작은 실패도 겪기는 하지만, 결국 그것도 그들의 몫인 것이다. 팀장의 역할은, 방법에 대한 정답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큰 방향성 안에서 팀원이 여러 가지의 시도해 볼 수 있게끔 해주는 것이다. 이걸 깨닫는 데까지는 나도 많은 시행착오를 겪고 있고, 지금도 내 본성을 버리지 못해 옛날 버릇이 나오곤 하지만 말이다.
팀원들은 나의 가장 좋은 스승이다.
그들을 보며 나도 배우는 것이 정말 많다. 앞서 말한 새로운 시도뿐만이 아니라, 내가 생각지도 못한 것들을 그들 한 명 한 명은 더 잘 알고 있다. AI를 응용해 업무 효율성을 높이고 보다 창의적인 마케팅 활동들을 기획한다. 회사를 더 오래 다니는 내가 잘 모르는 회사 생활 꿀팁을 알려 주기도 하고, 새로운 비즈니스 트렌드를 업무에 적용한 우리 팀의 비전을 제시할 때도 있다.
비단 업무적인 것뿐 아니라, 가끔 그들이 인생 선배 같이 느껴질 때도 있다. 상사의 꾸지람으로 멘탈이 나갔을 때 감정적으로 나를 위로하는 한편, 상사가 원하는 업무 방향성을 제시해주기도 한다. 내가 주저앉아 있을 때 일으켜 주는 것도 팀원들이다. 이렇게 말하니 그들의 존재 자체가 더 소중하고 감사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들에게 더 적극적으로 배우고 소통하리라 결심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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