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or nothing?
All-or-nothing
한국어로 번역하면 '모 아니면 도'라는 이 극단적 영어 표현은, 그동안의 내 마음가짐을 잘 나타내주는 형용사 중 하나다. 쉽게 말해, '대충 할 거면 차라리 시도도 안 하는 게 낫다'는 뜻이랄까. 예를 들어 작년 말 브런치에 처음으로 글을 올리면서도, 온전하지 않은 글을 발행할 바에는 차라리 안 쓰겠다 결심했다. 물론 내 기준에 부합하는 좋은 글을 쓴 적은 한 번도 없지만, 마음만큼은 완벽을 추구했다. 일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가볍게 시도해 볼 법한 작은 업무에도 욕심이 잔뜩 들어가, 시작하기도 전에 지쳐 아예 손을 놔버린 적이 종종 있다. 완전무결의 결과를 내기 위해서는 엄청난 노력을 해야 야하는데, 하다가 결과에 흠집이 나버릴까 두려워 시도조차 안 하는 거다. 이때의 내 마음을 표현하는 대화창이 있다면, 아마 이런 말이 나올 것이다.
"내가 다 할 수 있는데, 결과가 완벽하지 않을 바에는 안 하는 것뿐이야. 결코 못하는 게 아니라고"
완벽주의자의 가장 큰 장벽은, 바로 자신의 마음이다.
잘 해내고 싶은 마음이 너무 커서, 그 마음 때문에 힘들어진다. 무언가를 시작하려 해도, 잘하지 못할 바에는 아예 시작 안 하는 게 낫지 않냐는 '불안의 속마음'이 올라온다. 올해 봄, 이직의 기회가 생겨 거의 7년 만에 이력서를 작성해야 했다. 나를 추천해 주신 분은, 이력서도 빨리 제출하는 편이 낫다며 이틀의 짧은 마감시한을 주셨다. 주말 동안 이력서를 작성했는데, 이때 내가 가장 먼저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7년간의 이력 정리? 땡! 그건 바로 이력서 디자인이었다.
그동안 이력서 업데이트를 안 했기 때문에, 무조건 내가 해왔던 주요 업무를 복기해야 했다. 그러나 여기에서마저 완벽주의가 발동해, '완벽한' 이력서 템플릿을 만드는데 두 시간을 썼다. 내 사진을 그럴듯하게 편집하고, 각종 사이트에서 찾은 이력서 샘플을 참고해 새로운 템플릿을 만들었다. 물론 결과는 전혀 완벽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말이다. 하나라도 더 경력 기술을 추가해도 모자랄 판에, 겉으로 보이는 템플릿이나 만들고 있었다니 스스로 한심했다. 심지어 이력서를 작성하다가, 나중에 시간이 모자라니, 아예 제출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야말로 all-or-nothing.
인생은 과연 all-or-nothing일까?
동료들의 요즘 관심사는 바로 '운동'이다. 나처럼 몸에 심각한 이상이 와서 시작한 동료도 있고, 운동 자체를 즐기며 하는 동료도 있다. 또 누군가는 '바프(바디프로필)'을 찍기 위해 하기도 하고, 동호회 가는 재미로 운동하는 동료들도 보인다. 어느 날 운동을 주제로 한 대화 중 누군가 이런 말을 했다.
"30분 대충 할 거면, 아예 안 하는 게 낫지 않나? 그게 운동이라고 할 수 있나?"
운동에 대해서는 관심도 의욕도 없는 나는, 이때만큼은 완벽주의를 내려놓고 말했다. 그 어떤 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시도라도 해보는 게 낫다고 대답했다. 어찌 보면 나의 변명도 컸다. 운동을 한답시고 아침마다 헬스장을 가는데, 최대 30분 운동하는 사람이 바로 나이기 때문이다. 사실 내가 운동을 시작할 때의 다짐은, '집에서 누워서 TV 리모컨이나 만지작거릴 바에는, 헬스장 가서 5분만 스트레칭 하자' 딱 요 정도였다. 원체 운동을 싫어하는데, 운동을 안 하면 생존에 위협이 생길 수도 있다는 경각심이 든 이후였다. 매일 2-3km 걷기와 뛰기, 혹은 그마저도 힘들 때는 스트레칭 정도를 하고 출근하다. 누군가에게는 운동이라고 말할 수도 없는 수준이지만, 내 기준에서는 최선을 다한 것이다. 어차피 운동으로 완벽해지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건강 유지 방법을 찾은 것이기 때문이다.
나의 브런치 글은, 매번 시간에 쫓겨 퇴고 따위는 없이 내보낸다. 매번 발행 버튼을 누를 때마다 후회가 밀려오고, 완벽주의가 다시 고개를 든다. 다른 작가님들의 글은 그렇게 멋지기만 한데, 내 글은 부끄럽기 짝이 없다. 그러나 작년 말부터 글쓰기 모임을 통한 결과에 구애받지 않는 꾸준한 글쓰기를 시도하다 보니, 이제는 습관이 되었다. 남들에게 인정받기 위한 '완벽한' 글이 아닌, 그냥 써나가는 나의 기록일 뿐이기에. 만약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면, 나에게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을 것이다. Nothing 상태로 계속 머물며, 나는 못 한 게 아니라, 안 한 거라는 되지도 않는 변명을 스스로에게 하고 있었을 것 같다. 그러나 지금은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나만의 something을 찾아가는 과정을 밟고 있고,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이다.
PS. 소중한 댓글 매번 남겨주시는 독자님들 감사드려요~ 댓글에 하나씩 답을 '완벽하게' 달아야 한다는 마음 때문에, 아직도 읽고만 있고 답을 못하고 있어 정말 죄송합니다ㅜㅜ 워라밸을 찾고 마음의 여유가 생길 때, 꼭 댓글 달게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