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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능력한 직장인처럼 느껴질 때

나만 바보가 된 것 같은 기분

by 수풀림

지난 4월은 쏟아지는 일들로 정신을 차리기 힘들었다.

내일까지 마감인 업무를 하고 있는데, 모레까지 마무리해야 할 급한 프로젝트가 떨어지는 식이었다. 우선순위, 중요도, 이런 거 따질 시간조차 없었다. 들어오는 일을 쳐내기 급급했을 뿐. 나만 그런 건 아니었고, 우리 부서 전체가 공사다망한 시즌이었다. 서로 여유가 없어 회의 시간에나 간신히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각자 해온 업무들을 펼쳐놓고, 진행상황을 확인하고 앞으로의 방향성을 논의하는 자리. 유일하게 팀과 소통하는 이 자리에서, 나는 한동안 느끼지 못했던 감정에 빠져 허우적댔다. 그건 바로 열등감과 자괴감이었다. 분명 작년 말까지만 하더라도, '앞으로도 똑같은 일을 계속하기 싫다, 지겹다'라는 생각만 가득했었다. 뭘 해도 이미 해봤다, 새롭지 않다는 느낌이 지배적이었다. 이미 7년이나 했던 일이라, 대부분의 업무는 별다른 설명 없이도 알아서 할 수 있었다. 오히려 내가 누군가를 가르쳐줘야 하는 입장이었던 적이 많았다.


그런 상태로 올해 초부터 새로운 부서로 이동을 했고, 전과 다른 업무를 시작했다.

중고 신입사원이라 따로 오리엔테이션 기간은 없었지만, 허니문 기간은 있었다. 큰 업무는 주어지지 않고, 여기저기 회의에 참석하며 일을 배우는 시간 말이다. 분명 그때만 해도 설렘이 더 컸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다른 느낌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동료들의 프레젠테이션을 보며, 경외심이 드는 한편 주눅이 드는 것이었다. 과연 내가 저렇게 할 수 있을까 질문을 해보면, '그렇지 않다'는 대답만 나왔다. 상사의, 회사의 기대치에 맞추려면, 저 정도는 해야 될 텐데라는 자문자답과 함께... 그들과 나에게 주어진 시간과 자원은 차이가 없었는데, 왠지 나만 잘 못해내는 기분이 들었다. 나도 모르게 그들과 비교하며 자책하기 시작했다.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는 걸까."
하루에도 몇 번씩, 이 질문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업무를 따라잡느냐 가랑이가 찢어질 것 같으면서도,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걸 멈추지 못했다. 18년 차 경력자로 왔으면, 이 정도는 당연히 해야 된다는 기준이 있었다. 아마도 남이 정해준 기준보다, 내 기준이 좀 더 높은 것 같긴 하지만. 특히나 '중요하다'라고 주어진 업무를 할 때는, 답답해서 도망가고 싶을 정도였다. 어떻게 해도 이 업무를 제대로 못 끝낼 것 같았다. 다른 동료에게 맡겼으면 하루 이틀 안에 뚝딱 했을 것만 같아, 계속 자괴감이 들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 감정은 나만 느끼는 것은 아니었나 보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친해진 동료 A도, 비슷한 푸념을 했다.

"저는 여기에 이직한 다음에, 바보가 된 느낌이에요."

내가 얼핏 들었던 바로, 그는 이 업계에서 날고긴다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이직을 한지 이제 막 1년이 되어가는데, 업무를 따라가지 못해 힘들다고 했다. 밤을 새워서 일을 해도, 나만 뒤처진 것 같다는 생각을 떨쳐 버리기 어렵다 고백했다. 생각지 못한 그의 고백에, 나도 모르게 울컥하며 고개를 마구 끄덕이고 있었다.


이런 감정들은 왜 생기는 걸까?
나와 동료 A 같은 경우에는, 아마도 새로운 업무와 환경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필요해서일 것이다. 전과 다른 곳이지만, 비슷한 속도와 효율을 내야 한다는 압박감이 더 커서 그럴지도 모른다. 설령 그렇다고 해서 모든 직장인들이 이렇게 반응하지는 않을 것이다. 회사를 다니며 관찰한 바로는, 같은 상황에서도 여러 반응들이 나와서 신기했다.

[동료가 멋지게 발표를 하는 것을 지켜보는 상황에서]

비교형: "우와, 진짜 잘한다. 저 짧은 시간 안에도 저렇게 해냈는데, 나는 뭐지?"

질투형 : "뭘 저거 가지고 호들갑이야. 저 정도 경력이면 원래 다 그만큼 하는 거야. 내가 더 잘한다, 흥!"

무시형: "음, 잘하네." (다시 스마트폰을 쳐다봄)

성숙형: "정말 잘하네! 매일 늦게까지 연습하더니, 결국 성과로 이어지는구나. 나도 조금 더 노력해야겠다."

어떠한 반응이 더 좋다, 나쁘다를 따질 마음은 없다. 사람은 복잡한 동물이라, 상황마다 여러 반응들이 다르게 나올 것이다. 어떨 때는 질투도 했다가, 어떨 때는 진심 어린 응원을 건네기도 한다. 이런 반응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자신을 방어하거나 동기를 부여하려는 시도다.


다만 연차가 쌓인 직장인으로서, 열등감이 나를 잡아먹게 놔두면 결국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만은 잘 알고 있다. '왜 나만 안 되지?'라고 생각하면, 될 것도 안되기 때문이다. 스멀스멀 이런 감정들이 찾아올 때,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일단 그들의 성과 뒤에 숨겨진 '노력'을 찾아보자. 마치 SNS처럼, 결과는 눈에 보이지만 그 과정은 잘 보이지 않는다. 발표를 끝내주게 잘 한 동료는, 아마도 집에서 엄청난 연습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 연습이 켜켜이 쌓여, 좋은 결과로 이어진 것이다. 처음부터, 날 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다.

두 번째 처방으로는, 셀프 칭찬과 감사를 권하고 싶다. 우리는 남들이 조금이라도 잘하는 것은 민감하게 잘 찾아내면서, 정작 자신에게는 참 박하다. 나도 그렇다. 회사에 지각하지 않고 온 것만으로도 사실 칭찬받을 일이다. 착실하게 업무를 하는 것도, 마감시간 안에 일을 마치는 것도 마찬가지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아도, 나는 내가 얼마나 애쓰고 있는지 알아줘야 한다.

다시 시작된 5월 직장인의 삶, 오늘 하루쯤은, 조금 서투르고 느려도 괜찮다고 나 자신에게 다정하게 말하며 시작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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