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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로 다시 말씀해 주시겠어요?

타 부서와 소통의 어려움

by 수풀림

내가 속한 마케팅 부서는, 결코 혼자서 일할 수 없는 팀이다.

특정 프로모션 하나를 진행하더라도, 영업팀, 회계팀, PM팀, 고객지원팀, 법무팀 등 여러 부서와 논의를 거친다. 기획의 방향성과 가격이 타당한지 검토받고, 실제 현장에서 고객에게 적용될 수 있도록 조율하고 설득하고, 또 소통해야 한다. 아마도 큰 회사일수록 이런 절차는 더 복잡하고 까다롭지 않을까 싶다.

업의 특성이 이렇다 보니, 타 부서와의 회의는 일상이 되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나도 모르게 많은 걸 배우고, 또 느끼게 된다.


올 초에 IT팀과 미팅을 할 때였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고객 데이터를 통합해, 향후 마케팅에 효과적으로 활용하자는 논의로 프로젝트팀이 꾸려졌다. 요즘 개인정보보호가 워낙 중요한 이슈라, IT팀에서는 관련 리스크를 최우선으로 고려해 의견을 제시했다. 당시 회사 차원에서도, 고객의 개인정보보호를 위한 별도 플랫폼을 만들고 베타테스트를 하는 중이었다.

반면 프로젝트의 주요 주제는 이에 대한 '활용'이었다. 안전하게 보호된 정보를 바탕으로 어떻게 고객에게 더 맞춤화된 마케팅을 펼칠 수 있을지— 그게 마케팅팀이 고민하는 핵심이었다. 그래서 나도 마케팅팀의 입장에서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던졌다. 예컨대, 고객 그룹을 자동 분류하는 기능이 있었으면 좋겠고, 타깃 고객에게 이메일을 자동으로 발송할 수 있는 기능도 플랫폼에 포함됐으면 한다는 식이었다.


그리고 이 미팅을 통해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같은 주제로 말을 하고 있는데도, 서로 다른 언어처럼 들릴 수 있다는 점을 말이다.

IT팀에서는 지금의 중점 사항은 보호와 보안이기 때문에, 이 부분의 적용이 쉽지 않다 말했다. 나를 비롯한 마케팅팀에서는 이렇게 공들여 데이터를 모아놓고 정작 활용 못하면 무슨 소용이냐며 맞섰다. 마치 창과 방패처럼 대립했지만, 다행히도 합의점을 찾기 위해 서로 노력했다. 하지만 나는 IT팀에서 얘기하는 것의 반의 반도 알아듣지 못했다. 그들의 의견을 거부해서가 아닌, 그들이 설명하는 문장이 너무나도 외국어처럼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한국말로 다시 얘기해 줄래?"

이전 부서에 있을 때 팀미팅을 하면서 내가 종종 팀원에게 건넨 농담이다. 자신의 의견을 열 띄게 설명을 하지만, 80% 이상의 참석자가 알아듣지 못할 때마다 이렇게 얘기했다. IT팀과의 미팅에서도, 하마터면 똑같이 말할 뻔했다. ‘여긴 어디고, 나는 누구지...’ 머릿속이 멍해지는 순간, 간신히 참았다.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용어들, 한 줄 설명에도 논리 트리처럼 뻗어나가는 말들, 모든 게 너무 낯설고 생소했다. 그날 들었던 말들을 예시로 남기고 싶지만, 솔직히 지금도 무슨 말이었는지 몰라 지면으로 옮길 수도 없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다른 부서와의 미팅은 마치 외국인과 대화하는 느낌에 가까웠다.

우리 부서 내에서 논의할 때는 '그거 있잖아, 그거!' 이렇게만 얘기해도 척척 알아듣는다. '그거'가 뭔지 굳이 집어서 설명하지 않아도, 깊이 하던 업무가 있으니 눈빛만 봐도 대충 알 수 있다. 말하는 방식도 점점 닮아가고 비슷해진다. 마치 우리 부서 언어는 모국어이고, 타 부서와의 언어는 제2 외국어랄까?

같은 주제와 의도로 얘기하더라도 사용하는 단어가 다르고, 어떨 때는 사용하는 단어는 같지만 의미가 다르기도 하다.


그렇다면 제2외국어를 쓰 타 부서와는 어떻게 협업을 하면 좋을까.

나는 IT팀과의 이 어려운 미팅이 끝나고, 곰곰 생각해 보게 되었다. 어쩌면 그들 '외국인'이라 생각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나와는 다른 언어와 문화를 쓰는 사람들. 말이 안 통한다고 짜증내기보다, 그저 외국인을 만났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훨씬 느긋해진다.

외국인과 함께 일하기 위해서는, 우선 그들의 언어를 배우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들이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조금이라도 알아듣기 위해 사전도 찾아보고 통역기도 활용하면서 말이다. 물론 우리는 외국어를 잘 모르니, 그들에게 손짓발짓을 하며 물어볼 수도 있겠다. 아마도 처음엔 어색하고 잘 안 들려 답답하겠지. 그러나 배우지 않으면 영원히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리라. 그리고 관심을 갖고 그들의 언어를 습득하다 보면, 언젠가는 그들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이해가 될 것이다.


결국 협업이란, 같은 모국어를 쓰는 사람들끼리만 하는 일이 아니다.

어쩌면 서로 다른 언어를 가진 사람들이, 서로의 말을 배우고 익히며 조금씩 귀가 트이는 과정을 함께 겪는 것 아닐까. 그리고 그 과정을 통과한 대화는 더 단단하고, 오래가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물론 난, 오늘 오전에 잡힌 타 부서와의 회의에서도 "한국어로 말씀해 주실래요?"를 남발할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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