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내가 품어줄 수 있을까
“한 명의 천재가 100명의 범재를 먹여 살린다.”
이말에 어쩌면 우리 모두 한 번쯤은 동의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남보다 훨씬 뛰어난 능력과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가진 한 사람이, 조직 전체의 성과를 견인하는 장면. 성공한 스타트업이나 실리콘 밸리의 신화이자, 실화이기도 하다. 스티브 잡스, 일론 머스크, 샘 알트먼 등을 떠올리면 된다. 수조원의 기업 가치를 어쩌면 천재 한 명이 만들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기에.
얼마 전 팀장들끼리 모여 저녁을 먹는 자리에서, 나는 A팀 팀장에게 엉뚱한 질문을 던졌다.
"일론 머스크가 그팀 팀원으로 오면 어떨 것 같아?"
그 이야기는 아마도 우리나라 교육으로는 천재가 나오기 어렵다는 이야기에서 시작됐던 것 같다. 팀장 A는 시스템 적으로 천재를 길러내고 인정해줘야 한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 다들 그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했다. 하지만 나는, 그 천재가 실제로 우리 팀에 들어온다면, 과연 내가 품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만 이런 생각을 하는 건 아니었는지, A팀 팀장도 대답 대신 조용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한국 회사에서는 안 될 것 같다고. 아니, 그가 미국 회사에 팀원으로 입사해도 조직에 적응하기 쉽지 않을 것 같다고 말이다.
상상해보자. 일론 머스크가 진짜 내 팀원이라면.
그는 엄청나게 의욕적이겠지. 아마도 일주일에 몇 개씩 기획서를 가져올 것이다. 기존 방식은 비효율적이라고, 모든 시스템을 바꾸자고 할지도 모른다. 우리 회사의 미래를 바꿀만한 혁신적인 아이디어도 가져오겠지.
하지만 팀장인 나는, 그에게 주로 이런 말을 하게될 것 같다.
"일론 과장님, 멋진 기획을 보고해주셔서 감사드려요. 그런데 현실로 옮기기 쉽지 않겠네요."
이 표현마저도 혼자서 자리에 앉아 '이 친구 어쩌지'라며 머리를 싸맸다가, 마음을 백만번쯤 다스린 후 돌려서 좋게 말한것이리라. 애써 웃으며, 우리 회사의 기획 가이드라인에 맞춰 다시 작성하라 덧붙이며 말이다.
일론 과장이 입사함으로서 또 하나 예상되는 시나리오는, 바로 팀원간의 갈등이다.
그의 눈에는 다른 팀원이 얼마나 무능해보일까. 자신의 아이디어에 비교하면서, 이게 무슨 혁신이냐며 코웃음을 칠지도 모른다. 또한 자신은 하루에 16시간씩 일하는데, 저녁 6시면 칼퇴근을 하는 팀원이 이해되지 않을 것이다.
반대로 팀원 입장에서는, 자정이 넘은 시간에도 수시로 메시지를 보내는 그에게 진절머리를 낼지도 모른다. 회의 시간에는 자기 주장만 하는 그와는 소통하고 싶지 않을테고, 자신들의 존중받지 못한다 느낄 것이다. 1명의 천재를 영입함으로서, 5명의 소중한 팀원을 잃는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팀장력'이 부족한가보다. 어떤 팀원이 와도 잘 포용하고 리더십을 발휘해야 하는데, 나는 천재 팀원을 감당할 능력이 안된다. 일은 잘 하지만 말은 잘 안듣고, 혁신은 가져올 수 있지만 갈등을 계속 만든다면... 팀장인 나는 그를 '성과'로 판단할까 혹은 '리스크'로 느낄까.
회사에서는 늘 강조한다. 능력 있는 인재를 채용하고 양성해야 한다고.
구구절절히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 전에, 회사에서 말하는 '능력 있는 인재'란 도대체 어떤 사람을 말하는 건지 누가 한 번은 정의해줬으면 좋겠다. 어쩌면 인재를 원한다고 말하는 조직에서 진짜로 원하는 건, 말 잘 듣는 유능함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일론 머스크는 우리 팀원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게 오늘 글의 얼렁뚱땅 결론이다.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