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김밥이야? 같은 김밥 아니죠~~~
"지금부터 점심 드시고, 1시부터 수업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회사에서 진행하는 신제품 론칭 전략 관련 수업이, 벌써 6번이나 지나갔다. 부서를 옮기고 얼떨결에 이 프로그램을 맡게 되었고, 내가 강의를 진행하는 게 아닌데도 준비에 신경이 쓰인다. 특히나 나와 함께 교육을 담당하는 팀원의 가장 큰 고민 중 하나는, 점심 메뉴 선정이다. 제한된 비용 내에서, 음식물 쓰레기는 최소한으로 나오는, 그러면서도 지난번과 겹치지 않는 도시락을 주문하려 머리를 쥐어 싸맨다. 점심식사라는 직장인의 큰 즐거움을 꼭 지켜주고 싶어 했다.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는 그의 마음이 참 예뻐, 어떤 메뉴를 시키던 엄지 척을 날려주고 있다. 40명이나 되는 수강생들의 입맛을 맞추는 것도, 도시락을 주문하고 나르는 것도 일이다. 사실 나 같으면, 귀찮아서라도 대충 매번 시키던 곳에서 주문할 것 같다.
한편으로는 알고 있다. 나 같은 마음으로 점심을 준비하면, 꼭 이런 반응을 듣게 된다는 것을.
"또 김밥이야? 어휴... 어제도 먹었는데."
회사에서 미팅이나 교육 시간에 먹을 수 있는 도시락 선택지는 사실 그리 크지 않다. 앞서 말한 제한 조건이 있기 때문이다. 최소 3-4명에서 최대 60명까지의 도시락을 시켜본 경력자로서, 메뉴는 손에 꼽을 정도라 말할 수 있다. 보통 김밥, 샌드위치, 한식 도시락 등이 단골 메뉴다. 심지어 미팅을 하면서 먹는 경우도 허다하기 때문에, '간편함'이라는 요소는 정말 중요하다. 그래서 참석자들 입에서 '오늘 점심 또 김밥이냐'라는 타령이 나오는 것이다. 한 입에 먹기 좋고, 30분 내에 끝낼 수 있는, 그야말로 한국식 패스트푸드라 자꾸 주문하게 된다다. 물론 요즘은 김밥의 변주가 다양해져 그나마 이런 원망이 살짝 줄어들긴 했다. 계란지단이 듬뿍 든 키토김밥, 고추냉이 소스를 찍어먹는 김밥 등. 하지만 체감상 '김밥은 그냥 김밥'이라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4번째인가 5번 깨의 교육을 3일 앞둔 어느 날, 팀원이 느닷없이 점심시간 동안 나갔다 오겠다고 했다. 회사에서 걸어서 25분이나 되는 거리를, 운동삼아 갔다 오겠단다. 알고 보니 교육에서 먹을 도시락 메뉴를 미리 리 주문하고 결제까지 한다는 것이었다. '시간 아깝다, 가지 마'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말려도 소용없을 것 같은 눈빛이었다. 드디어 교육 당일날. 꼰대의 마음 반, 호기심 반으로 얼마나 대단한 메뉴일까 궁금해 도시락 뚜껑을 열어보고는 살짝 놀랐다. 그 안에는 꼬마 김밥이 들어 있었다. 광장시장에서 파는 손가락만 한 김밥이 아닌, 일반김밥의 반 정도 크기와 굵기인 김밥이었다. 참기름 냄새가 솔솔 나서 식욕을 자극하기는 했지만, 매번 먹는 흔한 김밥 하나 사려고 그 고생을 했나 싶었다. 나로서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비효율적 시간 투자와 메뉴 선택이었달까.
"오, 이거 신기한데요! 이게 도대체 뭐예요?"
"어머~대박!"
그런데 김밥을 받아 든 사람들이 갑자기 웅성댔다. 왜 그런가 싶어 주위를 둘러보는데, 내가 열었던 김밥 말고 다른 김밥 박스에 색다른 무언가가 들어 있었다. 심지어 옆 책상에서 식사를 하시는 교수님도 물어보셨다. 알록달록한 이 김밥은 뭐냐며.
"아, 그건 두부로 만든 꼬마 김밥이에요."
팀원은 싱글벙글 웃는 얼굴로 자신 있게 대답을 했다. 알고 보니 각자 2개의 박스가 하나의 세트로 제공되었고, 한 박스에는 두부 꼬마 김밥이 들어있었다. 유부초밥도 아니고 도대체 두부김밥이 뭔가 싶어서 물어봤다. 검정 김 대신 노랑, 주황, 연두, 분홍 등으로 예쁘게 물을 들인 얇은 포두부로 싼 꼬마 김밥이란다. 이 집에만 있는 시그니처 메뉴라 일부러 주문해 봤다고 덧붙이며. 한 입 베어 물으니 색다른 식감이 먼저 느껴졌다. 김밥과 속재료는 동일하지만, 피를 변경하는 것만으로도 다른 맛과 질감이 느껴져 독특했다.
"여러분, 식사 맛있게 하셨나요? 저는 오늘 점심을 먹고, 많은 걸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1시가 되어 다시 시작한 강의에서, 교수님은 도시락 이야기로 포문을 여셨다. 자신은 태어나서 이런 김밥을 처음 먹어 봤는데, 놀라웠다 했다. 형형색색 눈으로 맛보는 즐거움뿐 아니라, 이거야말로 '차별화' 아니냐며 덧붙이셨다.
"저는 당뇨가 있어서, 먹고 싶어도 마음대로 아무거나 먹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김밥만큼은 실컷 먹었어요. 저 같은 당뇨 환자를 위해 만든 김밥이 아닌가 싶더라니까요. 오전 수업에서 제가 차별화 얘기 많이 했는데, 이 두부 꼬마김밥이야말로, 생활 속 차별화인 것 같습니다."
흔해빠진 꼬마김밥이, 경영 수업의 차별화의 예시로 나오다니. 부정할 수 없었다. 나 역시 두부 꼬마김밥이라는 것 자체를 처음 접했기 때문이다. 이걸 만든 사장님은 어떻게 이런 생각을 처음 하게 되셨을까. 어쩌면 거창한 이유로 시작하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떻게 하면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색다른 김밥을 만들까라는 고민은 하셨겠지.
다르게 한다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본 하루였다.
생활 속 차별화는, 익숙함을 익숙하지 않게 바라보는 것에서 시작하는 것 같다. 작은 관점의 변화로부터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피어난다. 늘 보던 시각이 아닌, '이건 왜 그렇지?'라고 한번 더 질문해 보는 것. 김밥을 꼭 김으로 말아야 할까라는 질문이, 아마도 두부 꼬마김밥을 만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또 차별화는, 거창한 혁신이 아니라 눈에 잘 띄지 않는 작은 디테일에서 피어난다. 두부포를 얇게 부치는데 그치지 않고, 알록달록 색을 입힌 그 마음처럼.
결국 다름은, 아주 사소한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그 사소함은, 사람들에게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