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과 스트레스는 세트 메뉴
업무 스트레스로 괴로워하던 어느 날, 누군가 저에게 이런 말을 해줬어요.
"남의 돈 먹는 게 쉬운 줄 알아? 월급이랑 스트레스는 세트메뉴여~~"
햄버거도 아니고, 월급마저 세트 메뉴라니. 단품으로 월급만 쏙쏙 골라먹으면 안 되나 싶은 마음부터 들더군요. 그런데 직장인에게는 스트레스도 기본 옵션이라네요.
아무리 도망쳐봐도 절대 피해 갈 수 없 스트레스. 여러분은 스트레스가 쌓일 때, 어떤 감정이 드시나요? 그 감정은 보통 어떻게 표현되나요?
저는 일하다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가장 먼저 짜증이라는 감정이 올라와요.
‘왜 이렇게 일이 많고 복잡하지?’, ‘도대체 뭐 어떻게 더 잘하라는 거야?’라고 속으로 생각하죠. 일종의 울분 상태이기도 해요. 세상이 나에게 왜 이런 시련을 줬을까 화가 나요. 그대로 다 벗어던지고 도망가고 싶어 지고요. 그리고 거의 동시에 드는 마음은, 불안이에요. 불안은 제 친구처럼 저를 평생 따라다녔는데, 뭔가 잘못될까 봐 늘 두려운 상태예요. 막상 어떤 일은 그럭저럭 잘 해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요. 아이러니하게도, 저를 안에서 채찍질하면서 더 잘하라고 부추기는 원동력도 불안이에요. 이 녀석이 없어지고 자신감이 가득 찰 때, 오히려 다시 불안해질 정도라니까요.
이런 상태가 되면, 저는 극도로 예민해져요. 살짝만 건드려도 확 터져버리는, 봉숭아 씨앗 같죠. 옆 부서 팀장이 지나가면서 농담을 던져도, 일단 화가 나요. '웃어? 웃어!' 이런 심정이랄까요. 누가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 했나요. 내가 포악해진 상태에서는, 모든 대상을 상대로 싸우고 싶은 마음이 드는걸요. 세상 나만 억울하고, 내가 가장 불행한 것 같죠.
저는 이 상태를 작년 말에 경험했어요. 새로운 부서장과의 갈등, 7년간 정체되어 있는 커리어. 일은 곧 스트레스와 동일어였죠. 그리고 부정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어요. 회사 욕을, 상사에 대한 불만을, 일에 대한 스트레스를 이렇게까지 많이 다른 사람에게 쏟아낸 적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요. 심지어 팀원들과 회의를 하며 저도 모르게 열여덟로 시작하는 비속어를 쓰기도 했어요. 그때 느꼈어요. '아, 정말 이렇게는 안 되겠다'. 피폐해진 정신은, 결국 제 자신을 갉아먹더군요.
적당한 불안과 스트레스는 직장인을 더 열심히 일하게 만들어요.
하지만 어떤 것이나 ‘정도’가 있는 것 같아요. 이 감정들이 폭발해서 저 스스로를 다치지 않게 하기 위해, 관리하는 게 정말 중요해. 하루이틀 일하다가 그만둘 거 아니잖아요? 꾸준하고 즐겁게 월급 받으며 일하기 위해서, 저는 몇 가지 원칙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아마 원칙보다는 '루틴'이라는 표현이 더 맞는 단어겠네요.
우선 몸이 건강해야 해요. 그래야 스트레스도 덜 받고, 잘 버틸 수 있더라고요.
저는 운동을 워낙 싫어하는 데다, 하루에 12시간 이상 사무실에 앉아있다 보니 각종 크고 작은 질병에 시달렸어요. 허리디스크를 비롯해서 말이죠. 그래서 몇 년간의 시행착오를 거쳐, 지금의 루틴을 만들었죠.
출근하는 아침에는 새벽 6시에 무조건 헬스장 가기. 아무리 졸리고 피곤해도, 일주일에 4회 이상 가고 있어요. 딱 2-30분씩 스트레칭, 가볍게 걷고 뛰기, 약간의 근력 운동을 하죠. 남들처럼 바벨을 들지는 못하지만, 운동을 한다는 것 자체가 무척이나 좋아요. 처음에는 적응이 안돼서 운동하고 회사에서 졸곤 했는데, 지금은 운동한 아침의 컨디션이 가장 좋더라고요.
아참, 허리디스크 재발방지를 위한 계단 오르기도 매일 하고 있어요. 별것 아니지, 매일 10층 혹은 20층 정도의 계단을 한 번씩 올라가는 거예요. 이것도 매일 하다 보니, 할만해지더라고요. 다리에 근육도 조금 생긴 것 같고요.
두 번째는 정신건강을 지키는 일이에요.
이 부분은 비교적 뒤늦게 루틴이 잡혔는데요. 예전에는 동료들을 만나 수다를 떨고 술을 먹으면서 스트레스를 풀었어요. 하지만 효과가 그리 오래가지는 않더라고요. 일을 하다가 오는 일종의 허무함이 없어지지 않았죠. 그때부터 저에게 질문을 하고, 저를 찾아가는 과정을 오래도록 거치고 있어요. 지금도 진행 중이죠. 가장 저에게 좋았고, 일을 하면서도 실행할 수 있는 것들을 이어가고 있어요.
아침 운동을 마치고 출근하면 7시. 그때부터 노트북을 켜놓고, 회사 메신저를 차단한 채 1시간 조금 넘는 시간 동안 글을 써요. 브런치에 주 3회 올리는 것을 목표로요. 3년 전 감사일기 한 줄에서 시작한 글쓰기는, 저의 멘탈을 지켜준 일등공신이에요. 요즘처럼 바쁜 날에는 글을 못쓰고 일부터 해야 될 때도 있는데, 이럴 때는 하루가 더 답답하게 느껴지더라고요. 글이 저에게 주는 셀프 코칭의 힘이 있어서 그런가 봐요. 하루를 되돌아보고, 어떻게 더 나은 사람이 될까 궁리하는 그런 시간 말이에요.
회사에서 정신없이 일을 하다가도, 오후 3-4시쯤 되면 스트레스가 피크를 쳐요. 이때는 15분 산책을 시도합니다. 일을 빨리 마무리하고 집에 일찍 가는 게 더 효율적이지 않을까 망설일 때도 많아요. 하지만 다 멈추고 발을 움직일 때만이 느낄 수 있는, 역동의 에너지가 있어요. 블라인드에 가려 밖이 보이지 않던 사무실에서는 절대 알 수 없는, 자연의 에너지 말이에요. 언제 벚꽃이 피었는지 주변은 온통 분홍색이고, 돌틈에 연두색 싹을 틔운 민들레도 보이네요. 일 생각을 안 하고 자연과 주변에 집중해 걷다 보면, 창의적인 생각들도 더 많이 들더라고요. 잘 쉬어야 더 잘 일할 수 있다는 건, 꼭 하루의 휴가뿐이 아닌 짧은 산책의 휴식에도 적용되는 명언인 것 같네요.
스트레스는 직장인의 기본 옵션이지만, 나를 지키며 일하는 것 또한 직장인으로 살아가기 위한 기본이에요. 매일 쌓이는 스트레스 위에, 매일의 나를 지키는 작은 습관을 하나씩 쌓아가 보시면 어떨까요. 외부 환경은 비록 변하지 않더라도, 삶의 중심이 되는 '나 자신'은 조금 더 단단해져 있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