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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풀림 Jan 08. 2024

책을 보는 시각이 달라졌다

소비자가 아닌 창작자의 관점에서

지난주 주말 오랜만에 딸아이와 둘만의 데이트를 했다.

학교와 학원을 오갈 때를 제외하고는 좀처럼 자신의 방 밖으로 나오지 않는 사춘기 딸을 움직이게 한 것은 바로 '오무라이스 잼잼 14권' 신간 출시 소식.

책은 조경규 작가님이 2010년부터 일상 음식들을 맛깔난 그림과 이야기로 풀어 카카오 웹툰에서 연재한 것을 단행본으로 발행해 벌서 14번째이다.

음식 만화를 워낙 좋아하는 나의 권유로 초등학교 1학년 때 처음으로 읽기 시작해서, 지금은 딸의 가장 애정하는 만화책이 되었다.

조경규 글. 그림 /송송책방


혹시나 바로 구매하지 못할까 봐 전날 밤부터 근처 서점에 전화를 해서 재고 여부를 파악하고 토요일 아침 오픈 시간에 맞춰 찾아갔다.

서점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이 책을 찾아낸 딸과는 다르게, 나는 자꾸만 목표물이 아닌 다른 책들에 눈이 돌아간다. 베스트셀러 코너도 가보고 싶고, 신간 에세이 표지에 눈길이 가며, 지인이 추천해 줬던 책도 마구 읽고 싶어졌다.

서점만 가면 아니 책이 많은 어느 곳이든 가면 정신을 못 차리고 책 욕심을 부리는 나를 이해하는 딸은 다행히 아무 말 없이 나를 기다려줬다.


보고 싶고 사고 싶은 책은 너무 많은데, 집에 읽다가 만 책도 역시 너무 많은 관계로 선뜻 손이 가지 않는다.

계속되는 양가감정 속에서 고민하고 있는 나를 지켜보던 딸은 한 마디 한다.


"이 책 엄마가 진짜 좋아하는 거 아니야? 새로 나왔나 본데."


곰곰이 딸이 추천해 준 책 표지를 보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재미있게 읽어 내려간 김호연 작가님의 '불편한 편의점'이다.

어라? 2권으로 끝난 줄 알았는데 왜 베스트셀러 코너에 다시 있지라는 생각을 하던 중, 딸이 '넛지'로 나를 쿡쿡 찔러 움직인다.

전작의 책 표지와 비교해 보니 그림체가 정말 다르다고, 신간인 것 같다며 나를 설레게 만든다.

게다가 책에는 패키지로 '이 겨울, 나의 가장 벅찬 문장이었던 당신에게'라고 써진 빨간색 봉투까지 같이 들어 있다고 옆에서 나보다 더 호들갑을 떤다.


나는 딸의 말에 못 이기는 척 이 책을 집으며 '그래, 오늘은 딱 1권만 산 거야. 이런 책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잖아'라고 스스로 합리화했다.




딸과의 데이트를 이어가고 싶은 마음에 우리는 각자 구입한 책을 가지고 근교 카페로 향했다.

음료수를 주문하고 분위기 좋은 창가에 자리를 잡고 앉아 ,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책 개봉식'을 했다.

새로운 책의 비닐 커버를 고 첫 장을 펼칠 때의 그 짜릿한 느낌이란!


하지만 표지의 새로운 그림체를 음미하고 첫 장을 읽는 순간, 나의 기대감은 곧 나에 대한 원망으로 바뀌었다.

허허, 글쎄 이 책은 내가 예전에 읽은 것과 동일한 불편한 편의점의 '스페셜 에디션'이었던 것이다.

덤으로 감동적인 문구와 함께 엽서 형태의 달력이 동봉된 것 빼고는, 책 내용은 정말 똑같았다.

집에 이 책 꽂혀 있는데.....


망하고 허탈한 마음으로 힐끗 옆에서 오무라이스 잼잼을 읽는 딸을 보니 완전 몰입 상태이다.

뭐가 그리 재미난 지 오랜만에 얼굴에 만연한 미소까지 띠며 읽는다.

나는 이런 딸을 방해할 수 없어, 예전에 읽어서 스토리도 이미 다 알고 있는 불편한 편의점을 다시 읽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 책을 몇 장 읽지 않아, 나는 진심으로 감탄하고 반성하게 되었다.




처음 내가 이 책을 읽었을 때는, 이야기의 흡입력이 대단하고 내용이 정말 감동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이번에 두 번째로 읽으니, 작가님은 천재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편의점 사장님이 잃어버린 지갑을 찾아준 노숙자에게 보답하려고 자신의 편의점에서 도시락을 골라 주는 장면.

하지만 공짜로 받는 입장임에도 박찬호 도시락이 맛있다며 라이벌 편의점 도시락 타령을 한다는 18페이지의 문장을 읽으며, 작가님의 인물 설정과 표현에 무릎을 탁 칠 수밖에 없었다.


이 책의 문장 하나하나가 짧고 간결하면서도, 어찌나 재치 있던지.

그리고 문장과 문장을 연결해 주는 이음새도 물 흐르듯 자연스럽다.

문단과 챕터는 뒤로 갈수록 스토리를 더해 감동이 배가 되었으며, 등장인물은 마치 옆집에 살고 있는 이웃인양 캐릭터에 몰입되었다.


나는 왜 같은 책을 읽는데 예전과는 다른 느낌이 드는지 생각해 보았다.

가장 먼저 발견한 점은, 나의 시선 변화였다.

책을 구입해 한 번 읽고 나서 책장에 고이 보관해 두는 독자가 아닌, 창작자인 작가의 입장에서 책을 보니 정말 다르다.

이 책에 이어 오무라이스 잼잼, 아니 최근 들어 읽었던 몇 권의 책을 대하는 나의 달라진 시선을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해 본다.


1. 문장 표현 방식

책을 볼 때 주로 스토리 위주로 흘러가는 대로 따라가며 넘겼다면, 지금은 작가님의 표현 방식과 문장력을 주의 깊게 보게 된다.

아니, 이 표현을 어떻게 이렇게 맛깔나고 재치 있게 한 거지!라고 생각하며 창의적인 생각과 문구에 감탄사를 마구 내뱉는다.

그리고 나라면 이 문장을 어떻게 표현했을까 다시 생각해 본다. (생각해 봐도 잘 안 나와 슬프지만)


2. 작가의 기획 의도 

책을 읽기 전 제목과 목차를 꼼꼼히 읽게 된다.

책 제목과 챕터 구성은 책을 가장 잘 나타내기 위한 작가님의 기획 의도의 집약체이다.

예전에는 바로 본론부터 봤다면, 이 작가님은 어떤 의도로 이렇게 챕터를 구성하고 제목을 뽑았을지 잠시 멈춰 생각한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감탄한다. 작가님들의 고민의 무게와 똑똑함에!


3. 글쓰기와 퇴고에 들였을 시간과 노력

글이 짧고 쉬운 내용의 책이 베스트셀러 코너에 있으면 이해가 안 되는 걸 넘어가 화가 났던 시절이 있었다. 책이 이래도 되나 싶어서...

하지만 지금은 어떤 책을 보던 창작물에 대한 존경심이 가장 처음 드는 감정이다.

책의 길이와 깊이에 상관없이 작가님이 얼마나 기획과 집필에 시간을 들이는지 알 것 같아서이다.

게다가 백만 번의 퇴고까지 하신다고 들어, 책을 쓰시는 분들은 대단하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




나는 아직 작가 호칭이 어색하기만 한 '글린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일 년 남짓한 시간 동안 글을 쓰며 스스로 느끼는 변화는 놀라웠다.


그리고 글을 읽는 소비자에서, 어설프게나마 글을 쓰는 창작자로서 관점을 달리 하니 작가님들이 더 대단해 보인다.


하지만 예전에는 마음속으로만 나도 작가가 될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 작가님들은 별세계에 사는 연예인이라 생각했다면, 지금은 나도 저기에 있고 싶다는 꿈을 꾸고 있다.

아마도 브런치 작가님들도 나와 같은 마음으로 글을 꾸준하게 쓰고 계시지 않을까 싶다.


올해는 매일 글을 쓰며 내가 전하고 싶은 나만의 스토리는 무엇인지 찾아가겠다는 결심을 다져본다.


#글루틴 #팀라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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