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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생존 필살기 - 거절력

회사에서 거절이 필요한 순간들

by 수풀림

직장을 다니며 나도 모르게 조금씩 늘어난 능력들이 있다.

뭐 거창한 건 아니고, 상사 기분 눈치로 알아 맞추기, 고객이 듣기 싫어하는 말 알아 차리기, 시비 거는 옆 부서와 안 싸우고 현명하게 대처하기 등등이다. 여기에 더해 상사나 동료의 부탁 거절하는 기술도 점차 늘어간다. 이 사소해 보이는 능력치들은, 회사라는 정글에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터득하게 되는 것들이다. 특히 '거절 스킬'은, 경력이 쌓이면 쌓일수록 생존에 가까운 기술이 된다.


회사를 다니면 하루에도 몇 번씩 예상치 못한 부탁이나 요청을 받게 된다.

상사의 중요하고 긴급한 지시라면, 당연히 해야 한다. 그러나 이걸 내가 꼭 해야되나 싶은데, 굳이 나에게 해달라 요청하는 사람들과 상황들이 꼭 발생한다.

"아유~ 이건 자기가 더 잘하잖아. 금방 할 수 있지? (눈 찡긋, *주의 -눈 찔러버리고 싶음)"

"잠깐만 와서 이것 좀 도와줘. (도와주는 게 아니라, 다 해달라는 거였어?)"

사고는 자기가 쳐놓고 뒷수습은 남에게 맡기는 김부장, 6시에 술마시러 나가면서 나한테 보고서를 슬쩍 떠미는 박차장. 자기가 해야 할 신입사원 교육을 남에게 당연한 듯 넘기는 이대리와, 복잡하고 귀찮은 일들에서만 쏙쏙 빠지는 임과장 같은 사람들이, 회사에는 너무 많다. 심지어 부탁하는 주제에 당당하기까지 하다. 이건 '내'가 아닌, '네'가 하는 게 맞다라는, 잘못된 믿음까지 갖고 있는 경우도 있다.


18년 동안 직장 생활을 하면서 수많은 요청을 받다 보니, 거절에 대한 생존 기술이 늘었다.

그리고 꼭 이런 부탁만큼은 거절하리라 마음 먹은 것들이 생겼다. 그건 바로 나를 '이용하는' 부탁이다.

이용하다

대상을 필요에 따라 이롭게 쓰다

다른 사람이나 대상을 자신의 이익을 채우기 위한 방편(方便)으로 쓰다.

이용하다는 단어를 사전에 찾아보면, 이 두 가지 뜻이 나온다. 평소 후자의 목적으로 나를 이용하는 사람들을, 싫어하다 못해 경멸해왔다. 공공의 이익을 목적으로 하거나, 혹은 ‘윈윈(Win win)’을 할 수 있는 요청은 흔쾌히 받아들이는 편이다. 그러나 자기 혼자 잘 살자고 남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악질이라고 생각한다.


직장생활 초창기에는, 이런 사람들에게 멍청하게 당하기만 했다.

거절을 하기가 너무나 어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입사원도 눈치라는 게 있어, 그들의 목적이 순수한지 아닌지는 그 때도 알 수 있었다. 경력이 쌓인 지금은, 이런 사람들에게 대응하기 위한 나름의 요령이 생겼다. 이 글을 빌어, 몇 가지를 소개해 본다.


1. 집요하게 이유를 물어본다 : 요청과 부탁의 목적과, 이 일의 성과를 꼼꼼하게 물어보는 편이다. 상대방은 처음에는 감언이설로 이것저것 얘기하지만, ‘5 WHY’까지 가면, 보통 횡설수설한다. 이런 인간들은, 자기도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아서이다. 심지어 답하기 짜증나서, 중간에 됐다면서 나가버리는 경우도 봤다.

2. 역으로 이용한다 : 사장님이나 상사가 시켜서 어쩔 수 없이 이런 부탁을 들어줘야 하는 경우가 있다. 짜증나는 마음을 내려놓고, 차가운 이성을 불러내야 한다. 나만 당할 수 없으니, 똑같이 되갚아줄 방법을 궁리해낸다. 그리고 같이 프로젝트를 하면서, 나도 당당하게 부탁과 요청을 한다.

“제가 000까지는 완료했는데, 000부분에 대한 정보가 없어서 내일까지 채워주세요.”

최대한 프로페셔널하게, 책임을 다한 모습을 보이면서 말해야 효과가 발생한다. 어떨 때는 내가 할 일보다, 일부러 상대방이 할 일을 더 많게 책정하고 요청한 적도 있다. 상대방이 '이게 아닌데' 하고 어버버하면서 당황하면, 사이다처럼 속이 다 시원하다.

3. 업무를 명확하게 한다 : 자신의 이익을 위해 부탁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두루뭉실하게 ‘다 네가 해라’라고 한다. 여기에 대응하려고, 공식 이메일 회신에 꼭 명시한다.

'1번 - 00까지 요청하시는 게 맞는지 확인해라, 2번 – 00 업무는 우리팀 업무가 아니라, 다른 부서에 요청해라, 3번 - 00업무 언제까지 어떻게 끝내는 걸 원하냐'

최대한 구체적으로 업무를 잘게 쪼개 나누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요청하는지, 기한은 언제인지 되묻는다. 이렇게 나오면, 보통 대꾸를 잘 못한다. 자기는 여기까지 생각해보지도 않아서다.


앞으로 회사 생활을 하다보면, 거절할 일이 계속 생길 것이다.

이 부탁을 거절하면, 나한테 불이익이 올까봐 두렵기도 할 것이다. 인사고과 평가를 못 받으면 어떡하지, 동료들이 나를 싫어하면 어떡하지 등등 걱정이 될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만약 팀장이라면, 거절 없이 일만 받아오다가는, 팀원들이 먼저 퇴사할 것이다. 우리 팀장은 호구냐며, 뒷담화의 주인공이 될 확률이 크다. 비단 팀장 뿐만이 아니다. 개개인이 모든 요청을 오는 대로 다 받아 들인다면, 정작 내가 해야 할 주요 업무는 기한 내에 끝내지 못할 확률이 크다. 실제로 이런 팀원들을 옆에서 지켜 보면, 답답해서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이 튀어나온다.

"제발 니 일이나 제대로 하고 나서, 다른 사람 도와줘라!!! (feat. 네 코가 석자다)"


앞으로 거절을 어떻게 다루면 좋을까, 글을 쓰며 생각해본다.

나는 직장에서 '현명하게' 거절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거절의 뉘앙스가 조금이라도 잘못되면, '싸가지 없다'는 비판을 받게 된다. 반면 누군가의 거절은 너무 세련되어, 거절인지도 모른 채 수긍하고 만다. 상대방의 기분을 나쁘게 하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철학과 입장을 제대로 밝힌 경우가 그러했던 것 같다.

그리고 예전에 고객과의 거절의 경험에서도 느낀건데, 때로는 거절이 기회로 변하기도 한다. 고객이 내 제안을 거절하더라도 내가 고객을 진심으로 대하면, 나중에 제품을 살 때 나를 가장 먼저 떠올린 적도 있었다. 물론 반대의 경험도 있었지만.


사족이지만 마지막으로 덧붙이고 싶은, 거절에 대한 단어들이 있다.

나만의 기준 : 거절에 대한 자신의 기준이 확실해야, 거절 앞에서 망설이는 시간이 줄어든다. 거절에 대한 후회가 남지 않으려면 '나'의 기준을 명확하게 해야 한다.

관점의 변화 : 거절이 ‘나쁜 것’이라는 시선이 아닌, ‘집중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이라는 관점으로 바라봐야 한다. 중요한 나의 일에 몰입하기 위해서는, 우선순위를 따져가며 일을 해야 한다.

유연한 대응 : 거절에 대한 기준이 확실하더라도,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해야 한다. 일단 상대방의 입장을 잘 듣고, 여기에 대해 종합적인 판단을 해야 한다. 무조건 'NO'만 외친다고 될 것은 아니다.

진심 어린 소통 : 거절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이다. 기계적으로 내 기준에 따라 거절을 하는 것이 아니라, 소통의 관점에서 거절을 바라봐야 한다. 그래야 때로는 거절이 기회로 연결될 수 있다.


부탁을 거절한다는 건, 타인을 배척하는 게 아닌, 나를 지키는 일이다.

물론 아직도 쉽진 않다.절하고 나서 괜히 찜찜하고, 이기적인 사람으로 보이지 않을까 걱정도 된다.
하지만 내 일에 집중하기 위해, 내 삶의 균형을 지키기 위해, 아마 오늘도 많은 거절을 하지 않을까 싶다. 직장인들이여,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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