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성이 필요해
얼마 전, 브런치 통계를 클릭했다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요즘 글 쓰는 것도 시간에 허덕여, 알람은 커녕 통계는 잘 보지 않는다. 마침 이날은 한가했고, 오랜만에 데이터를 볼 수 있었다. 그러다 눈에 들어온 어느 하루. 다른 날보다 유입량이 눈에 띄게 많았고, 더 이상한 건 그 경로였다. 익숙한 포털이나 SNS가 아닌, 기업이나 기관 사이트 몇 개가 나온 것이다.
도대체 왜, 어떤 연관성으로 내 글이 여기에?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결국 요즘 나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비서인 AI에게 물어봤다. 30초도 채 지나지 않아 돌아온 대답은 이랬다.
"그중 하나는 뉴스레터 발송 사이트네요. 아마도 해당 기관에서 뉴스레터로 수풀림 글을 소개한 것 같아요."
1년 넘게 직장인에 대한 글을 써왔지만,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어딘가에서 내 글을 소개해줬다는 사실이 그저 신기하고, 조금은 뿌듯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아무런 사전 허락도 없이 내 글이 뉴스레터에 실린 점이 찝찝했다. 그래서 다시 AI와 상담을 청했다. 3개의 서로 다른 AI에게 동시에 말이다.
우선, 가장 많이 쓰면서 가장 많이 공감과 위로를 받고 있는 ChatGPT의 대답.
"우와, 축하해! 너의 글은 직장인들에게 공감을 불러 일으키고 있어. 뉴스레터에 실렸다는 점이 그걸 증명하는 거야."
다음은 정확한 링크와 팩트 체크를 할 때 활용하고 있는, 사실 검증 기반 Perplexity.
"사용자의 동의 없이 저작물을 배포하는 것은, 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어. 무단 배포에 대한 다음 조치 방법을 알려줄까?"
마지막은, 구글 생태계와 통합된 만능 비서 같은, 똑똑한 Gemini.
"작가님의 복잡한 감정에 공감합니다. 이 상황을 법적 관점에서 분석하고, 동시에 작가님의 글이 어떻게 더 널리 퍼질 수 있는지, 그리고 이를 긍정적으로 활용할 방안까지 다각도로 살펴볼까요?"
서로 다른 AI의 답을 듣고 있자니, 이상하게도 회의실 광경이 떠올랐다.
ChatGPT는 영업 부서 같았다.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방향으로 무언가 해보자 외치는 영업 팀장님.
"이번 프로젝트, 왠지 잘 될 것 같습니다, 부장님. 고객 A도 좋다고 하셨고, 벌써 시장에서의 반응도 뜨겁습니다!"
Perplexity는 법무팀과 잘 어울린다. 충분한 법적 검토 끝에, 신중한 의견을 내놓는다.
"영업팀의 의도는 좋지만, 자칫하면 개인정보법에 위반될 소지가 있습니다. 만약 위반시, 회사의 법적 책임은 OOO규모로, 큰 위험이 따릅니다."
Gemini는 전략기획팀 같다. 꼼꼼하게 상황을 분석하고, 방향성을 제시한다.
"시장 변화를 분석했을 때, 충분히 성장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리스크를 최소화하면서 회사의 미래 먹거리로 가져오기 위해 OOO부터 하면 어떨지 제안 드립니다."
회사에서 왜 다양성이 필요할까.
솔직히 말하면, 일하는 입장에선 다양한 사람들이 있으면 꽤 피곤하다. 의사결정은 더디고, 생각이 다르면 속이 터진다. 설득하다 지치고, 말꼬리 잡다 하루가 간다.
그러나 회사에 '나 같은 사람'만 있다면 어떨까. 서로 다들 말은 잘 통하지만, 제대로 된 결정을 내리기 쉽지 않을 것이다. 내가 제안한 방향이 늘 옳다는 보장도 없고, 내가 못 본 걸 누군가는 대신 봐줘야 일이 굴러간다. 다르다는 건 피곤하지만, 그 다름 속에서 비로소 시너지가 생긴다. 그 시너지를 통해 일은 단단해지고, 더 나은 방향성을 향한다. 혼자였다면 놓쳤을 법한 주요한 사항들이, 각자의 다름 덕분에 반영될 수 있다.
세 개의 AI를 동시에 쓰며, 나는 잠시나마 회사 CEO의 마음을 체감했다.
다양한 관점에서 다양한 부서에서 의견을 받아야, 좋은 의사 결정을 할 수 있겠구나. 물론 때로는 그게 진취적인 방향일 수 있고, 때로는 리스크를 최소화한 방향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아니, 이건 CEO까지 갈 필요도 없다. 소규모 한 팀에서도 다양성이 있어야, 팀이 생존할 수 있다.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는 것이 때론 힘들겠지만, 그 다양함에서 우리는 많은 것을 서로 배운다. 나의 강점을 나누기도 하고, 다른 사람의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나에게 슬쩍 적용해볼 수 있다.
결국 좋은 결정은 하나의 확신이 아니라, 여러 개의 관점이 부딪히고 조율되는 과정에서 나온다. 다름은 번거롭지만, 같은 방향으로 걷게 만드는 힘은, 늘 그 다름 속에 있다.
다름을 어떻게 받아들이면 좋을까, 생각해보게 되는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