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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소 팀장은 행운일까 저주일까

30살에 팀장이 되고 나서 깨달은 것

by 수풀림

팀장이 되었다.

입사 4년차, 서른 살. 회사에서 가장 어린 팀장이었다.

팀장이 된 이유야 몇 가지 있었지만, 결정적인 건 단 하나였다. 전임 팀장은 퇴사했고, 그 자리를 맡을 사람이 마땅치 않았다. 예전에 외부에서 팀장을 뽑았다가 대차게 말아먹은 경험이 있는 임원진은, 내부에서 빨리 대체될 수 있는 사람을 찾았다. 게다가 대퇴사 시기가 막 지난터라, 남아 있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신입으로 시작해 4년을 버틴 내가, 그 팀에서 가장 오래된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렇게 얼렁뚱땅 팀장이 되었다.


팀장으로서 시작은, 엉망진창이었다.

팀원은 달랑 3명이었지만, 나에겐 30명의 무게로 다가왔다. 나보다 나이도, 경력도 많은 팀원들은, 나를 팀장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제안하고, 아이디어 회의를 열, 돌아오는 반응은 차가웠다.

"지난번에 그거 다 해봤는데, 안되던데요."

"팀장님, 잘 알아보고 말씀하시는 거 맞아요?"

동료였을때는 누구보다 가까웠는데, 팀장이 되니 달라졌다. 그들의 시선은, 더 이상 따뜻하기만 하지 않았다. 그들이 원하는 팀장, 경험과 통찰, 그리고 팀을 이끄는 리더십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에 비해 나는, 그들의 눈에 아직 한참 부족한 존재. 아마 아무것도 모르는 햇병아리 같은 모습이었으리라.


상황을 바꿔보려 애를 썼다.

일부러 점심도 같이 먹고, 대화도 더 많이 하려고 했다. 그들이 내는 의견을 최대한 반영하고자 귀를 기울였다. 하지만 상황은, 내 의지와는 자꾸 반대로 흘러갔다.

"난 네가 팀장이 된 걸, 아직도 받아들일 수 없어."

유난히 나에게만 톡톡 쏘던, 팀원 A와의 면담 시간. 겉돌던 대화 끝, 그녀는 숨겨 왔던 속마음을 털어 놓았다. 본인이 차기 팀장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어, 나를 더 미워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직접 들으니 충격이 더 컸다. 꾹꾹 눌러왔던 감정이, 그 한마디에 무너졌다. 서러움과 함께 눈물이 터져 나왔다.


"제가 그만두는 게 맞을 것 같아요."

그날 저녁, 본부장님께 퇴사를 말씀드렸다. 내가 팀을 제대로 이끌어가지 못해, 얼마나 괴로워했는지 알고 있는 나의 상사였다. 오랜 팀장 경험으로 나에게 리더십 책도 권해주고, 강의도 들으라고 조언도 주셨던 분이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게, 실전에서는 하나도 소용이 없었다. 책에 있는 글귀는, 그냥 교과서에 나온 말일 뿐이었다.

'팀장은 팀의 방향성을 제시하고, 팀원들이 그 길로 갈 수 있도록 동기부여 하는 사람이다.'

머리로는 이해가 되었지만, 나한테 적용하기는 힘들었다. 방향성 제시는 커녕, 기 센 팀원들의 의견에 질질 끌려가고 있었다. 나 때문에 팀원들의 일할 의지가 오히려 꺾이는 느낌이었다. 팀장으로서 한참 부족한 내가, 그만둬야만 이 상황이 끝날 것 같았다.


남들이 보기에 나는, 회사에서 인정 받은 최연소 팀장이었다.

그러나 내가 보는 나는, 끝도 없이 바닥으로 추락하는 별볼일 없는 사람이었다. 할 수만 있다면, 다시 팀원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한참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조금씩 알게 되었다. 그때의 나는 부족했던 게 아니라, 막 시작한 사람이었을 뿐이다. 최연소 팀장이 된 건, 행운도 저주도 아니었다. 그냥 그건 직장인으로서 성장하는 과정이었을 뿐이다. 누군가에겐 그게 팀장 자리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겐 전문성을 쌓는 것일수도 있다.

과정이란게 원래 그렇듯, 운이 좋게 잘 풀릴 때도 있지만, 힘든 가시밭길 구간도 나온다. 이게 맞나 싶을 때도 있고, 이 길로만 가면 파라다이스가 펼쳐질 것 같기도 하다.


만약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이제 막 팀장이 되어 괴로워하고 있다면, 내가 그때의 나에게 해주고 싶었던 말을 전하고 싶다.

팀장은 모든 걸 아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자리가 아니다. 당신이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 팀장은, 불확실함 속에서도 팀과 함께 답을 찾아가면 된다. 그때는 몰랐지만, 흔들리며 버텼던 그 시간이 지금의 내 리더십의 자양분이 되었다.

그러니 너무 조급해하지 않아도 된다. 지금 버겁고 서툴다고 해서, 당신이 틀린 건 아니다. 누구나 한 번쯤은 내가 ‘이 자리에 내가 있어도 되나’라는 질문을 품는다. 그 질문을 안고 버티는 시간 속에서 당신만의 리더십이 조금씩 자라고 있을 것이다. 책으로는 절대 배울 수 없는, 당신만의 경험이 쌓인 리더십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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