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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의 헬시 플레저

회사에서 오롯이 '나'에 집중하는 시간

by 수풀림

직장인들의 점심 풍경이 변하고 있다.

어느 날 회사 근처 식당가를 둘러보니, 전무님이 좋아했던 추어탕집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샐러드 가게가 들어섰다. 종종 가던 백반집은 포케 전문점으로 바뀌었고, 서브웨이에는 점심시간이 되기도 전에 줄이 길게 늘어서 있다.

불과 5-6년 전만해도, 점심시간 30분 전부터 이런 멘트가 어디선가 들려왔다.

"흐어~~~어제 과음했더니 속 쓰리네. 오늘은 다같이 순대국으로 해장하러 갈까?"

막내 사원에게는 메뉴 선택권 따위는 없었다. 부장님이 제육볶음이 땡긴다 하면 제육, 짬뽕이 좋다 하면 짬뽕. 먹기 싫어도 사회인의 미소를 지으며 그냥 따라가야 했다. 가끔 누군가 샐러드를 싸오기라도 하면, 그런 풀데기 먹고 어떻게 힘이 나겠냐며 혀를 끌끌 차는 동료들도 있었다.


요즘은 어떤가.

"저는 오늘 혼자 점심 먹겠습니다."

혼밥족을 외치는 직장인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돈까스, 제육 볶음이 물리기도 했고, 물가는 올라 한 끼 식사마저 부담스럽. 게다가 상사와 함께 먹는 밥은, 업무 시간의 연장선 같이 느껴진다.

하지만 요즘 혼밥을 선택하는 가장 큰 이유는 따로 있다. 무엇보다도 '내가 원하는 것에 집중'하기 위해서다.

주위를 보면, 혼밥을 하는 직장인들의 점심 풍경은 제각각이다. 달걀지단 가득한 키토김밥을 사서 자리에서 먹으며 일하는 동료도 있고, 샌드위치를 먹으며 숏츠를 보는 동료도 있다. 누군가는 헬스장에 다녀오고, 누군가는 30분 꿀잠을 자기도 한다.

예전처럼 누군가의 입맛에 맞춰 따라가거나, 관심 없는 대화를 이어갈 필요가 없다. 그저 내가 좋아하는 걸 먹고,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쉬는 것. 혹은, 짜투리 시간을 이용해 자기계발을 하는 시간이 되었다. '끼니'로서의 점심이 아닌, 나를 위한 시간으로 변신한 것이다.


이런 흐름을 보면서, 헬시 플레저(Healthy Pleasure)가 직장인의 삶에도 자연스럽게 자리잡았다는걸 느낀다.

헬시 플레저 : 건강한(Healthy)와 기쁨(Pleasure)의 합성어로, 건강을 추구하면서도 즐거움을 잃지 않는다는 의미가 담김

‘헬시’와 ‘플레저’. 서로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두 단어가 나란히 붙어 있다니, 많이 낯설었다. 다이어트란 본디 괴로운 것이고, 운동이란 피하고 싶은 것 아니었던가. 게다가 직장인의 삶이야말로 전혀 '헬시'할 틈이 없. 궁둥이를 붙이고 몇 시간이나 앉아 있다 보니, 자세는 늘 거북목. 회의 시간에 받은 정신적인 스트레스의 크기는 또 어떻고. 몸이 망가지는 속도보다, 멘탈이 무너지는 속도가 더 빠르다. 과연 직장에서 어떻게 즐겁게 건강까지 챙긴단 말일까.


슬기로운 MZ직장인들은, 이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었다.

비단 점심 시간을 활용하는 것 뿐만이 아니었다. 회식은 어느새 술이 빠진 저녁식사가 당연해졌고, 이마저도 점심 시간을 활용하기도 한다. 가끔 회의를 하며 밥을 먹을 때가 있는데, 이 때도 당당하게 건강한 메뉴를 요구한다. 자칫 피자라도 시키는 날에는, 빵 끄트머리 부분을 떼어내고 한두조각만 먹고 내려놓는다. 탕비실 간식 중 가장 인기 있는 건, 더 이상 초코바나 감자칩이 아니다. 단백질 음료나 견과류가 가장 먼저 없어진다.

최근 입사한 직원들의 자기소개를 들어보니, 달리기, 테니스는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키워드였다. 출근 전에 5km씩 뛰고, 퇴근 후에는 테니스장을 간단다. 8월에 열리는 마라톤 대회 티켓팅 이야기를 회의 시간에 들을 줄은, 정말 몰랐다.


이들의 루틴을 지켜보며, 알게 되었다.

몸과 마음의 건강을 챙기는 일이, 꼭 고통스럽고 힘들지만은 않다는 것을. 누가 억지로 시켜서 하는 게 아니라, 자신을 위해 자발적으로 하기에 가능한 것 같다. 스스로를 위해 선택한 작은 습관들은, 그들의 삶 일부로 자리잡고 있었다. 바쁜 하루 속에서도 나를 잃지 않기 위한 작고 단순한 의지. 그게 바로 직장인들의 헬시 플레저가 아닐까.

헬시 플레저란 더 이상 특별한 사람들만의, 반짝 유행이 아니다. 리처럼 매일을 살아내는 직장인에게도,

내 몸과 마음을 조금씩 회복시키는 아주 현실적인 방법이다. 그리고 이 작은 변화들은 언젠가, 내 삶의 방향을 바꾸는 꽤 큰 힘이 되어줄지도 모른다.

나를 잘 돌보는 일은, 거창할 필요도 없다. 그 시작은, 오늘 점심 한 끼를 나를 위해 고르는 일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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