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이 가진 힘에 대해
질문에는 참 신비한 힘이 있다.
누군가 나에게 질문을 건네는 순간부터, 머릿속은 그 답을 찾으려 분주해진다. 그게 설령 살면서 한 번도 상상조차 해본 적 없는 것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내 일에서 ‘순간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 경험은 무엇인가요?"
만약 당신이 직장인이고, 이런 질문을 받는다면 어떤 생각이 들 것인가. 흑백요리사에 출연한 에드워드 리 작가님의 '버터밀크 그래피티'라는 책에는, 그가 본 일에 대한 아름다움이 잔뜩 담겨 있다. 글쓰기 수업에서 그의 글 한 단락을 읽고 이 질문에 답해야 되는 숙제를 받았을 때, 나는 진심으로 당황했다.
일과 아름다움이라니. 얼마나 어울리지 않는 두 단어의 조합인가. 일이라는 단어 앞에는 보통 '고통스런',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때려치고 싶은' 이라는 수식어가 따라오지 않는가. 꾸역꾸역, 지긋지긋하지만 해야 하는 것에 가깝다고만 생각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질문을 받으니, 답을 계속 생각하게 되었다.
마치 낚싯바늘에 걸린 물고기처럼, 질문은 나를 그 주제에 오래 머물게 했다. 설령 나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회사를 다닌다 생각했을지라도, 질문을 받은 순간만큼은 ‘일의 아름다움’을 떠올릴 수 밖에 없었다. 평소에 한 번도 해보지 못했던 생각들이 흘러나와, 이런 문장을 써내려갔다.
Q. 내 일에서 ‘순간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 경험은 무엇인가요?
A. ‘일’을 ‘예술’ 이라는 단어로 치환해봅니다.
예술이 아름다운 이유는, 창조가 있기 때문이라 생각해요. 일에서도 이런 예술적인 요소들이 있어요. 아마 직장인들이 이 문장을 읽으면, 야유를 퍼부을지도 모르지만, 용감하게 써봅니다.
제가 하는 마케팅이라는 업은, 더욱 더 예술의 영역이 요구되요. 일을 쳐내기 바빠 의식한 적은 별로 없지만요. 경쟁사와 비슷하게 만든 고만고만한 제품에, 마케팅으로 예술적인 가치를 더해요. 비단 아이디어 톡톡 튀는 광고나 팝업 스토어만을 일컫는 건 아니에요. 그건 지적인 예술의 영역에 가깝죠. 고객의 숨은 니즈를 파악하고, 경쟁사를 분석한 다음, 어떻게 차별화 할 것인가 끊임없이 고민해요. 이 치열한 고민의 순간으로 탄생한 것이, 잘 된 마케팅 캠페인이에요. 고민이 깊이가 깊을수록, 예술적인 캠페인이 나오는거에요. 남들 눈에는 잘 안 보이지만, 같은 업을 하는 사람에게는 그 예술적인 고민이 느껴져요.
예술의 가치가 그렇듯, 이건 시대의 상황과 추구하는 가치에 따라 평가가 달라질 수 있어요. 그러나 일의 예술을 경험해 본 사람은, 알 수 있어요. 먹고 살기 위해 했던 이 일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점을요. 그 순간 느끼는 희열은, 계속 일을 하게 만들어 주는 근본적인 원동력일 거에요.
질문은 내가 느끼지 못하던 감각을 일깨워 주었고, 새로운 관점을 발견하게 만들었다.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던 영역에 빛을 비추고, 스스로를 새로운 각도에서 바라보게 했다. 질문을 받는 순간, 나는 다른 길로 접어들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바로 옆에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길. 가능성의 길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질문은, 여행 초대장처럼 느껴진다. 질문에 대한 나만의 답을 찾으려는 과정에서 의도치 않게 새로운 길로 발을 옮기게 되고, 전혀 예상치 못한 풍경과 마주한다. 어떤 질문은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그 불편함이야말로 성장의 또 다른 이름이다. 또 어떤 질문은 시야를 넓혀, 가능성을 제시하기도 한다. 그야말로 질문이 가진 신비한 힘이다.
질문이 아니었다면 그대로 머물렀을 자리에서, 질문 덕분에 우리는 다른 길로 여행을 떠날 수 있다. 오늘의 질문이 바꿀 내일의 여정이 더욱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