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먹어보지 못한 맛은 얼마나 많을까
“빨리 공기밥부터 시켜!”
중국 출장 이틀 차, 뒤늦게 합류한 회사 선배가 식당 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내가 외친 말이다. 중국 현지 동료들은 우리를 베이징의 유명 중식당에 데려갔다. 하지만 중국 본토 음식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던 나는, 그나마 익숙한 흰 쌀밥에만 손이 갔다. 테이블 위에는 처음 보는 신기한 요리들이 쫙 펼쳐졌지만, 내 젓가락은 쉽사리 움직이지 않았다. 나도 모르는 이상한 게 들었으면 어떡하나 걱정도 되고, 기름이 겉도는 요리 모습에 살짝 겁도 났다.
“싫은데, 난 요리 위주로 먹을 건데.”
내가 공기밥을 권하자, 선배는 단호하게 답했다. 의외에 대답에 흠칫 놀라 선배를 쳐다봤지만, 그는 태연하게 열 가지가 넘는 요리를 하나씩 맛보았다. 얼굴에 미소를 띄며 중국 동료들에게 엄지척을 날리기도 했고, 이건 무슨 재료와 양념을 썼는지 묻기도 했다.
내가 만약 지금 중국 출장을 간다면 어떨까.
세상에나 마상에나, 이런 산해진미를 언제 다시 경험해보겠나 싶어 배가 빵빵해질때까지 먹겠지. 아마도 나를 현지 맛집으로 데려간 동료를 껴안고 감사의 눈물을 흘릴지도 모른다. 십 년전의 나는 중국 음식에 대한 편견으로 가득찬 사람이었다는 사실에, 새삼 부끄러워질 것이다.
우연한 기회로 중국 요리에 맛을 들이니, 새롭게 눈을 뜬 기분이었다. 미뢰 세포 하나 하나가 중국 요리의 색다른 맛에 반응했다. 마파두부 위에 송송 뿌려진 화자오 알갱이가 톡톡 터지니 혀가 마비되는 듯 얼얼했고, 동파육은 젓가락만 대도 결이 술술 풀리며 구수한 간장 향이 밀려 들었다. 게다가 볶음밥은 재료라곤 계란과 파, 밥뿐인데, 어떻게 이렇게 완벽한 밸런스가 나오는지 신기하기만 했다. 매번 무쳐만 먹던 가지를 튀기고 볶고 절묘하게 양념을 입히니, 끊임없이 밥을 부르는 요리로 탄생했다.
중국 음식은 각종 재료와 향신료, 센 불, 여기에 요리사의 단련된 웍질이 만든 예술의 영역이었다.
뒤늦게 깨달았다.
편견이란 게 이토록 무섭구나. 내가 놓치고 있던 건 그저 낯선 음식이 아닌, 그 안에 숨어 있는 다채롭고도 풍성한 맛의 신세계였다. 생각해보면 어릴 땐 싫어해서 못 먹던 음식도, 어른이 되면 없어서 못 먹는 음식이 되곤 하지 않는가. 누군가에게는 그게 곰삭힌 홍어일 수도 있고, 다른 누군가에겐 달큰한 완두콩일 수도 있다. 조금만 마음을 열고 시도해보면, 불편했던 냄새는 맛깔난 향으로 다가오고, 낯설었던 맛도 즐겨 찾는 맛이 되기도 한다. 다시 먹어 보고, 그제야 그 맛의 진가를 발견하는 순간이다.
중국 음식이 내게 가르쳐준 건, 편견을 넘는 것이 곧 삶을 넓히는 일이라는 사실이다. 사람도, 경험도, 기회도 음식과 다르지 않다. 중국 음식에 눈을 뜨고 나니, 저절로 중국 문화에 관심이 갔고, 그건 다른 세계에 대한 확장으로도 이어졌다. 동료들과 중동 음식점을 가보기도 했고, 인도 영화를 보며 스크린 너머의 인도 음식에 대한 동경도 하게 되었다.
거창할 필요는 전혀 없다.
그저 딱 한 숟갈의 시도면 충분다. 먹어보고 맛이 이상하면, 그냥 편안한 마음으로 내려 놓으면 그만인 걸. 혹시 모른다. 뜻밖의 음식에 내 마음이 움직일지도. 자꾸만 더 먹고 싶어지고, 인생 음식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 한 숟갈의 시도가, 나의 음식 세계를 그리고 삶의 세계를 멀리 확장시켜줄 것이다.
결국 중요한 건, 단단한 껍질 같은 내 생각을 조금씩 깨보려고 하는 작은 용기다.
편견의 넘어서야 비로소 알게 되는 무궁무진한 인생 맛. 당신도 궁금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