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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생존 스킬, 보여주기

보여주기에 대한 오해와 필요성

by 수풀림

회사에서 자기 자랑을 오버스럽게(?) 하는 사람들을 정말 싫어한다.

눈살이 절로 찌푸려지고, 절대로 가까이 하고 싶지 않다. 그들의 쇼잉(showing)은 이런 식이다.

“사장님, 이거 정말 대단하지 않습니까. 저희 팀에서 한땀한땀 엮어서 한 겁니다.”

“원래 확률이 정말 낮았는데, 캬~~! 내가 고객이랑 잘 얘기해서 프로젝트 딴 거잖아.”

실상은 자기나 자기 팀원들은 한 것 없이 다른 사람이 한 일에 숟가락을 얹거나, 요만한 것도 이만큼 크게 부풀린 거다. 이런 배경을 아는 동료들은, 전혀 인정하지 않는 업무 성과다. 여기서 더 나가면, 다른 사람들의 성과까지도 자신의 성과로 가져오는 치사한 짓도 한다. 네 글자로 표현하자면 ‘자화자찬, 지잘난맛, 얼씨구야’ 랄까.


글을 쓰며 가장 먼저 떠오른 인물은 A 전무님.

그를 싫어하는 직원들 사이에서는 ‘아부왕’으로 통한다. 자신 혹은 자신이 이끄는 팀이 하는 업무 중 조금만 괜찮은 건이 있으면 조르르 사장님께 달려가 어린 아이처럼 자랑한다. 실은, 자기 자랑을 하기 전에, 사장님을 향한 극찬부터 시작한다. 훅 들어오는 칭찬에 정신 못 차리고 춤추던 사장님은, A 전무님의 자랑에 ‘우쭈쭈’ 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칭찬과 자랑의 선순환이랄까.

그런 그를 진심으로 싫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배가 아프기도, 그가 대단해 보인 적도 있다.

‘어떻게 저렇게 콩알만한 일을, 솜사탕처럼 부풀려서 얘기하지?’

처음엔 이렇게만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팀이, 팀원들이 인정받는 일이 점점 늘어나자 호기심이 생겼다. 나도 저 기술을 배워서 써먹어야 회사에서 생존할 수 있겠다는 경각심도 함께.


당시 나의 상사였던 B 전무님은, 이런 걸 참 어려워하는 사람이었다.

자기 자랑을 하면 입에 혓바늘이 돋는 유형 말이다. 그는 겸손을 미덕으로, 묵묵히 내 일을 제대로 해내는 걸 제일로 쳤다.

그래서일까. 사장님이 A, B 전무님을 대하는 시선은, 콩쥐팥쥐를 바라보는 눈빛과 비슷했다. 팥쥐는 뭘 해도 예뻐했고, 콩쥐는 일을 아무리 잘 해도 인정해주지 않았다. 계속 구박만 받던 콩쥐 편에 있던 나는 팥쥐가 미운 한 편, 예쁨 받는 비결이 궁금했다. 업무로만 따지면 콩쥐가 훨 나았기 때문이다.

그에 대한 호기심 필터를 끼우고 다시 관찰하자, 전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는 얄미운 자기 자랑을 할 때도 많았지만, 자기 PR에도 능한 사람이었다. 그의 비법 몇 가지를 이 글에서 소개해본다.


상대방과 상황 맞춤형

그는 자기 자랑, 팀 자랑을 할 때 상대방에 맞춰서 했다. 그 대상이 만약 사장님이라면, 사장님의 전략 방향성에 맞는 업무 성과에 대해 자랑을 하고 칭찬을 받았다. 낄낄빠빠(?)를 잘 하는 사람이라, 사장님 기분이 안 좋거나 비즈니스 상황이 악화될 때는 절대 나대지 않았다.

동료나 심지어 고객에게 자랑을 할 때도, 그들이 듣고 싶어 하는 칭찬을 먼저 해서 기분 좋게 만든 후 눈치를 살피며 자랑을 슬쩍 흘렸다. 먼저 칭찬을 들었으니, 그 다음에 오는 귀여운(?) 자랑 정도는 다들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며 들었다.


타이밍이 생명

사장님 입맛에 맞는 성과에 대한 자랑은, 즉각 할수록 좋다. 왜냐하면 사장님이 이 안건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지켜보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요즘 사장님이 'AI의 업무 활용 방안'을 중점 과제로 생각하고 있다고 하면, 이와 관련된 주제는 지속적으로 어필하는 것이 좋다는 뜻이다.

그는 아무리 급한 일이 있어도, 열 일 다 제쳐두고 여기에 속하는 자랑거리는 바로바로 보고했다. 만약 사장님이 자리에 안 계신다면 이메일, 채팅, 카톡 등 모든 수단에 메시지를 남겨 놓았다. 시의적절이란 이럴 때 쓰이는 말인가보다 싶었다.

반면, 눈치없이 이미 한물 간 주제들에 대해 뒷북으로 보고하는 경우, 차가운 경멸의 눈빛을 감당해야 한다.

성과에 대한 정당한 보상

A 전무님의 보여주기에는 궁극적인 목적이 있었다. 자신이 이렇게 해야만, 팀원들의 성과가 윗사람에게도 인정받는다고 믿었다. 사실 자기가 자랑하는 걸 아니꼽게 보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도 진즉 눈치채고 있었다.

하지만 자기가 욕 먹는 것에 전혀 개의치 않았다. 자신의 행동으로 팀원의 성과가 지속적으로 노출되고, 다른 사람들의 입에 긍정적으로 오르내리기만 한다면 목표를 달성한 것이기에.

회사를 다니다보니, 보여주기가 필요한 가장 큰 이유가 이것이 아닐까 싶다. 쉽게 드러나지 않는 정성적인 업무 성과들을 세련되게 풀어내어 상대방을 설득하는 것. 잘 하는 업무에 대해 보상을 받게 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보여주기.


내가 보여주기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을 갖게 된 것은, '보여주기'만 잘 하고 업무는 개판인 사람들 때문이다. 하지만 선배들한테 숱하게 들어왔던 이 문장을, 나도 부인할 수 없게 되었다.

"보여주기도 능력이야."

회사 생활을 계속 해오면서, 이 말에 절로 수긍하게 된다. 보여주기는 회사에서 꼭 필요한 스킬이자, 퍼스널 브랜딩이 중요해진 요즘 더 요구되는 능력이 아닐까 싶다.

물론 회사 일이 보여주기 식으로 끝나면 안되지만, 보여주기의 필요성을 이제는 이해하게 되었달까. 여기에 하나 덧붙이자면, 보여주기는 말뿐인 자랑으로 끝나지 않아야 하고, 진짜 성과로 연결해야 한다는 것. 그래야 진정한 보여주기의 힘이 발휘될 것이다. 보여주는 것에서 진화되어, 가만히 있어도 절로 드러나는 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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