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는 매일이 조별 과제의 연속일지도
조별 과제란 무엇인가.
나무 위키에 따르면 '2명 이상의 학생이 조를 짜서 공동의 과제를 수행하는 것'을 일컫는단다. 주로 대학교에서 대학생들이 수행하며, 중·고등학교에서서도 종종 이루어진다고 한다.
나도 그런 줄만 알았다. 조별 과제는 대학교 졸업과 동시에 영원히 안녕일 거라고.
하지만 직장인이 되니, 오히려 더 자주 실전 조별 과제가 주어졌다. 회사는 혼자 하는 업무보다 같이 해야 하는 업무가 훨씬 많기 때문이다. 다른 부서와 팀을 이뤄 공동의 프로젝트를 수행한다던가, 워크샵을 가기 위한 TFT(Task Force Team)을 꾸린다던가, 단체 봉사활동을 위한 조를 짠다던가.
얼핏 보면 나 혼자 다 하는 것 같은 일도, 그 안을 들여다 보면 여러 사람들이 한꺼번에 엮여 있는 경우가 많다. 특히 내가 하고 있는 마케팅 업무는, 절대 혼자서 할 수 없는 일이다. 개발팀, 제품팀, 영업팀 등과 끊임없이 소통하며 일해야 하기 때문에 사실상 거의 매일 조별 과제를 수행하고 있는 느낌이다.
한 마디로 직장은, 거대한 조별 과제의 연속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최근 수행하고 있는 조별 과제의 예시를 소개하려 한다.
이번 조별 과제는 '회사 체육대회 기획'이었다. 거의 30명이 넘는, 각 팀에서 선발된 팀장들이 참가한 대형 TFT였다. 천 명이 넘는 직원들이 참석하는 행사라, 준비할 것도 많았다.
내가 속한 조에서는 행사 당일 음식 메뉴를 선정하는 역할을 맡았다. 총 5명으로 구성된 이 팀의 시작은, 처음부터 삐끗댔다. 아이러니하게도 모두가 팀장이었기에, 모두가 눈치만 보고 있는 상황이랄까. 아마 자기가 이끄는 팀에서는 절대 안 그럴 것 같은, 조별 과제 참가 대학생 같은 모습들이 자연스럽게 튀어 나왔다.
"저는 그 날 바빠서 참석을 못 할 것 같아요."
"조장은 OO님이 하시죠!"
각 조별로 알아서 준비를 하고, 일주일에 한 번씩 전체 TFT에서 브리핑을 해야 했다. 그러나 누구 하나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물론 '나'를 포함해서 말이다. 만약 업무와 연관된 TFT라면 적극적으로 참가했겠지만, 현생을 사느냐 바쁜 우리는 그럴 여유 따위는 없었다.
대학교 때 조별 과제를 해본 분이라면 알겠지만, 직장인의 조별 과제도 별반 다르지 않다.
이런 답답한 상황에서 적극적으로 나서서 상황을 정리하는 동료가 있는 반면, 채팅방에서도 마치 존재하지 않는 척 배경색을 띄며 숨어 있는 동료도 있다. 누군가 아이디어를 내면 꼭 반대 의견만 제시하는 사람도 있고, 어떤 의견이 나오던 자기 생각 없이 다 좋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팀워크를 길러줄 수 있는, 좋은 의도에서 시작한 조별 과제는 종종 비극적인 결말을 맞기도 한다. 제일 나대는 사람이 밤새 자료도 만들고 발표도 하는 상황이 오거나, 혹은 아무도 제대로 준비하지 않아 다같이 F를 맞기도 한다. 옆에서 하는 일 없이 놀고 있는 것 같은 동료를 보면 부아가 치밀어, 공평성을 제기한다.
직장인 18년차, 이런 상황을 너무 많이 봐왔기에 TFT에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우리 일주일씩 돌아가면서 TFT 팀장 해요. 그 주에 팀장인 사람이 회의 리딩하고, 자료 찾고, 발표도 다 하는 걸로. 대신 다른 사람들에게 의견 물어보면서요."
망하는 TFT의 첫 번째 조건은, 배를 몰고갈 선장이 없다는 점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선장의 역할을 하려면 그만큼 힘드니, 돌아가면서 고통 분담을 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직급이 깡패라 그랬는지, 혹은 다들 반대 의견을 내기가 더 귀찮아서 그랬는지 내 제안대로 진행되었다.
나는 그 과정에서 재밌는 광경을 목격했다. 첫째 주, 내가 TFT 팀장이었을 때 이것저것 정리해서 팀에 의견을 제시했을 때, 채팅방은 온통 내 글로 도배되었다. 이 메뉴 괜찮냐고 아무리 물어봐도 묵묵부답이었다. 하루가 지나 '좋아요'를 누르던가, 혹은 상대방 이름을 몇 번쯤 불러야만 '이견 없습니다' 정도의 답이 왔다. 답답했지만 그러려니 하고 일주일을 보낸 후 다음 타자에게 해야 할 업무들을 정리해서 넘겼다. 그렇게 한 지 5주차로 접어든 지금, 배의 선장이라는 역할은 얼마나 큰 역할인가 실감하게 된다.
"다들 의견 없으신가요? 오늘까지 발주 넣어야 되서요."
여전히 채팅방은 팀장의 공허한 메아리로 가득하지만, 선장을 맡은 사람만큼은 무지 열심이다. 내 가족에게 먹일 메뉴도 그렇게 꼼꼼하게 찾아보지 않았을 것 같다. 요즘 유행하는 음식은 무엇인지, 예산 범위 안에 들어오는지, 혹시나 알러지를 유발하지는 않는지 등등. 각자 자기가 팀 리딩을 하는 차례가 오면, 태도가 180도 달라졌다. 평소엔 바쁘다고 채팅방을 외면던 사람도 자료 찾기에 열을 올렸고, 에이전시와도 적극적으로 소통을 이어 나갔다.
온 책임이 자기에게 주어지는 순간, ‘내가 제대로 하지 않으면 이 배가 표류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이번 조별 과제 실험을 통해, 비단 직장인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적용되는 한 가지를 깨달았다.
바로 책임감의 중요성이다. 그리고 리더십의 시작은 바로 이 책임감이라는 것도.
내가 맡은 팀이 크든 작, 어떻게든 책임을 지고 잘 이끌어내려는 태도에서 리더십은 싹튼다. 책임을 회피하는 순간 팀은 흔들리고, 누군가 그 무게를 감당하는 순간 팀은 앞으로 나아간다. 물론 리더 혼자서 모든 책임을 지면 안되겠지만, 적어도 책임을 끝까지 지려는 태도는 팀의 중심을 단단히 세운다.
생각해보면 리더십은 타고나는 재능이 아니라, 이런 조별 과제 같은 작은 경험 속에서 반복적으로 길러지는 습관에 가깝다. 겨우 조별 과제 하나로 리더십을 운운하는 게, 나 스스로도 다소 억지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결국 사소한 경험의 축적이 우리의 태도를 만들고, 나아가 인성을 결정한다고 믿는다. 졸업 후에도 끝나지 않는 조별 과제라는 실험 속에서, 우리는 오늘도 리더십을 훈련받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