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함의 함정에서 벗어나기
지난 주는 팀원, 동료들과 함께 몇 달간 준비했던 전시회 기간이었다.
몇 년째 참석하는 전시회지만, 매번 준비 과정은 쉽지만은 않았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아이디어를 내고, 그것을 현실화 시키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힘을 합쳤다. 백조는 참 우아해 보이지만, 물속에서 발을 쉼없이 계속 젓기 때문에 가능한 것 아닌가.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고객들에게 보일 부스를 제대로 만들기 위해, 뒤에서는 보이지 않는 노력들을 계속 하고 있었다.
지난했던 노력의 과정이 끝나고 드디어 전시회 첫날.
분명 전시 부스도, 전시할 제품도, 계획한 그대로였다. 팀원들은 고객을 맞이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고, 준비했던 이벤트도 제 시간에 개시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내 눈에는 자꾸만 '옥의 티'가 들어오는거다.
'전시 테이블이 너무 커서, 직원들이 다닐 공간이 없잖아.'
'진행요원들이 저렇게 안내를 하면, 제대로 된 고객 응대가 안될텐데.'
'저쪽 벽 문구는 왜 이렇게 삐둘게 인쇄된거야?'
분명 잘한 것이 9할 이상일텐데, 나는 어느 순간부터 잘못된 점부터 찾아내기 시작했다.
마치 집안일처럼 회사 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설거지는 잘 마쳤지만 식탁을 제대로 안 닦아 김치국물이 보인다면, 그 얼룩만 자꾸 들어오는 것처럼. 깨끗하게 씻긴 그릇들은 당연시했다. 우리는 집안일을 잘했다고 칭찬받는 횟수보다, 못했을 때 혼났던 적이 더 많아서 그런건가 싶기도 하다.
마찬가지로, 팀원들에게 맡긴 업무도 잘 돌아가고 있을 때는 별 티가 안 나는데, 뭐 하나가 문제가 생기면 그것만 유독 도드라져 보였다. 왜 그것까지 제대로 못 챙겼는지 답답했다.
왜 문제에 집착할까 생각하고 찾아보니, 이건 우리 뇌의 생존 전략 중 하나였다고 한다.
인간의 뇌는 수만 년 동안 '문제'를 빠르게 찾아내는 방향으로 진화해왔다고. 잘 돌아가는 것들은 '안전하다'는 신호로 받아들여 관심 밖으로 밀어내고, 문제가 될 만한 것들은 '위험할지도 모른다'는 신호로 인식해 집중적으로 주목한다고 했다. 게다가 나처럼 완벽주의 성향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이런 문제가 더 크게 느껴지지 않았을까 짐작해본다.
우리는 더 이상 생존을 위협받는 원시 시대에 살고 있지 않음에도, 여전히 '흠'에 집중한다.
내가 전시회장에서 불편하다 느낀 사항들도, 사실 그리 큰 문제는 아니었다. 오히려 이런 '문제 탐지 시스템'이 과도하게 작동하면 정작 중요한 것들을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몇 달간 쏟아부은 팀원들의 노력, 더 잘하려고 고민했던 시간들, 적은 예산 대비 멋지게 꾸며진 부스 등등. 이런 99%의 과정과 성과는 당연하게 여기면서, 1%의 아쉬움에만 매달리고 있다는 자각이었다.
이 세상에 당연한 건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우리는, 나는, 종종 이런 사실을 잊고 살아간다. 그래서 의식적으로 훈련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실수를 찾는 눈만큼이나 잘한 것을 발견하고 인정하며 살아야겠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서로 조율하며 맞춰가는 팀워크, 예상치 못한 변수를 해결하는 능력, 고객 앞에서 미소를 띄며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모습. 이런 '보이지 않는 잘함'들이 얼마나 값진 일인지 의식적으로 인정하고 표현하는 것이 정말 필요하리라.
완벽함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면에 숨어있는 보이지 않는 노력들에 더 주목해야겠다.뇌가 자동으로 찾아주는 1%의 문제보다, 의식적으로 발견해야 하는 99%의 잘함에 더 자주 감탄하면서 말이다.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기에, '의식적'이라는 표현을 강조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