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주고도 못 해보는 경험이었어요
"저 뭐부터 하면 될까요?"
다짜고짜 푸드트럭 문을 열고 들어가 내가 외친 첫 마디였다.
얼마 전에 천 명이 넘는 직원들이 참석한 체육대회가 있었다. 어쩌다보니 나는 행사를 준비하는 TF멤버로 참석했고, 그 중에서도 푸드트럭 담당이었다. 메뉴와 수량을 정하고, 질서 있게 직원들 줄을 세우거나 현 응대를 하는 것이 주 업무였다. 업무로 바쁜 와중에도 우리팀은 몇 차례의 회의와 현장 답사 등을 하며 만반의 준비를 했다. 그러나 '만반'이라는 단어가 단단한 착각임을 알게 된 것은, 총 5대의 푸드트럭 개시를 한지 채 십분이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직원들이 푸드트럭으로 나오기 한참 전부터, 이미 수많은 음식과 음료들이 제조되어 대기 상태였다.
그러나 수십, 수백명의 인파가 한꺼번에 우르르 몰리자, 그 많던 것들이 순식간에 동이 나버렸다. 그 다음부터는 생산과 수요 사이 절망적인 격차와의 싸움이었다. 푸드 트럭 안에서 아무리 쉬지 않고 열심히 만들어도, 줄 선 사람들은 더 늘어나고, 기다리는 자들의 원성도 높아졌다.
그 중에서도 가장 답이 없는 곳은, 커피 트럭이었다. 카페인 없이 단 하루도 살 수 없는 직장인들은 끊임 없이 몰려오는데, 알바생은 단 두 명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망설임없이 그곳에 뛰어 들어가, 사장님으로 보이는 분께 아무 일이나 시키라고 말씀드렸다. 잠깐 당황하던 사장님은,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는 심정으로 나에게 물을 채워달라 요청하셨다. 알바생이 에스프레소 원액과 얼음을 담아 건네면, 생수를 부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완성하는 과정이었다.
처음에는 이 좁은 공간에서 어떻게 세 명이 일할 수 있을까 싶었다.
하지만 1평 남짓한 이 작은 공간에도 나름의 질서가 있었다. 각자 주어진 역할 분담, 최적의 효율을 내는 동선, 심지어 커피를 만드는 동시에 쓰레기 처리까지 깔끔하게 하는 노련함까지. 처음에는 그걸 몰라 생수병을 따다가 물을 질질 흘리기도 하고, 얼음컵 동선을 파악 못해 알바생과 손이 부딪치기도 했지만, 점차 익숙해져 갔다. 그리고 중간에 예상치 못하게 어느 과정이 잠깐 멈추면, 눈치껏 다른 사람이 그 과정을 돕기도 했다. 예를 들어 얼음이 떨어져 누군가 가지러 가면, 한 명은 그 사이 플라스틱 컵을 테이블에 펼쳐놓는 식이다. 밖에는 아직도 줄이 길게 늘어섰지만, 안에서는 묵묵히 각자의 역할에 집중하며 리듬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서로 말하지 않아도 마음으로, 눈빛으로 통한달까. 어느 순간에는, 이 협업의 하모니에서 희열이 느껴질 정도였다. 마치 생활의 달인에 나오는 한 장면에 내가 들어가 있는 기분이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밖에 서 있던 TF멤버가 알려주었다. 이제 20명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고.
사장님은 그제야 나를 보고 웃으며 농담을 건네셨다.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이제 저희가 마무리할게요. 내일부터 여기로 출근하시면 되겠는데요? 하하."
폭풍같이 몰아치던 커피 제조의 시간이 멈추자, 만감이 교차했다. 가장 먼저 든 감정은, 나도 모르던 나에 대한 놀라움. 실은 나는 손아귀 힘이 약해 물병을 잘 따지 못한다. 뭘 마실 때마다,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도와달라 부탁해야 했다. 그러나 눈앞에 극한 상황이 주어지자, 갑자기 슈퍼 파워가 튀어 나왔다. 물병도 척척 따고, 그 와중에 앞뒤옆 스캔하며 정리하고, 직원들을 향해 맛있게 드시라는 인사까지...평소의 나라면, 상상조차 못할 행동이었다. 특히나 덥고 좁은 푸드트럭 안에서 일한다는 상상만으로도, '나는 절대 못하지'라고 단념했을 것이다.
솔직히 사무실 책상에만 앉아있던 내가, 과연 회사 밖으로 나오면 뭘 할수나 있을까 걱정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이번 체험을 통해, 그래도 굶어 죽지는 않겠다는 약간의 자신감도 얻었다. 일거리가 주어지면 뭐라도 하겠구나라는 생각. 회사 밖의 나는 쓸모 없는 인간일까 두려웠는데, 내가 하기에 따라 쓸모를 만들어갈 수도 있겠다 싶었다.
물론, 회사 밖의 세상에서도 당연히 그 일을 오래 해왔고 잘 하는 경력자를 선호하겠지만, 중요한 건 '시작하는 용기'와 '배울 자세'가 아닐까 싶다. 그 어떤 경력에도 첫 시작은 있을테니 말이다. 어차피 처음부터 잘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배워가며 차근차근하면 되지 않을까. 단숨에 성공하는 욕심만 내려 놓는다면, 어디서든 뭐라도 하며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느낀 점도, 역시 '나 자신'에 대한 것이었다.
내가 좋아하고 선호하는 일에 대해 조금 더 뾰족해진 생각. 나는 혼자 일하는 것보다, 누군가와 함께 합을 맞춰 일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것. 단순 반복되는 일을 하더라도, 전체를 파악하고 싶어서 계속 옆을 기웃거리는 사람이라는 것. 정해진 일보다는 주변 환경에 따라, 그때그때 필요한 일을 가장 중요시한다는 것을 말이다. 아마 이 짧은 알바를 해보지 않았다면, 매일 회사에서 똑같은 일을 하고 있었더라면, 이런 생각도 잘 하지 못했겠지.
그 날의 체육대회에는, 유명한 사람도 오고, 각종 재미난 프로그램도 다채롭게 펼쳐졌다. 그러나 누군가 체육대회 어땠냐고 나한테 물어본다면, 아마 이렇게 답하리라.
"무지 신기한 경험이었어. 특히, 푸드트럭이 제일 기억에 남네."
결국 나를 만들어가는 가장 큰 재료는, 경험인 것 같다. 아직도 못해본 경험들이 얼마나 많은가. 언젠가 또 다른 '푸드트럭'을 체험해볼 날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