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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느라 놓친 것 vs 들으니 보이는 것

말하기와 듣기 그 사

by 수풀림

"안녕하세요, 잠깐 오셔서 OOO 구경하고 가세요. 딱, 10월까지만 프로모션도 진행하고 있어요!"

지난 달 여러 명의 동료들과 함께 기획했던 전시회 부스에, 각 부서의 주니어 영업사원들이 지원을 나왔다. 하루에도 수십명이 넘는 고객들이 부스를 찾는데, 그들은 너무나도 열심히 고객을 상대했다. 단순 응대를 넘어, 적극적으로 우리 부스에 오게끔 홍보대사를 자처했다. 지나가는 고객을 잡아 이벤트도 홍보하고, 전시 제품을 알리기 위해 쉬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그들의 환한 미소와 열정적인 태도를 지켜보며 흐뭇해 하다가, 나도 그들처럼 열심히 해야겠다는 자극까지 받게 되었다.


그들이 세운 목표는, 데모 고객 하루 10명 발굴이었다.

하지만 마음만큼, 그리고 노력만큼 결과가 따라주진 않았다. 고객에게 열과 성을 다하는 그들이 참 예뻐 보였는데, 성과로 이어지지 않자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나는 그들을 돕고 싶어, 고객과 한참 상담중인 그들 옆에 슬쩍 껴서 대화를 엿들었다.

"이 제품은 A기능이 추가되서 실시간 모니터링이 가능하고요, 유명한 B고객사에서도 쓰시고요, 경쟁사 C사와 비교해서 저희가 훨씬 더 지원을 잘 해드릴 수 있어요...(중략)...그래서, 데모 한 번 받아보시겠어요?"

관찰자 시점이 되니, 그제야 문제점이 무엇인지 보였다. 영업사원이 계속 제품을 홍보하는 동안, 고객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한참 듣고 있었다. 내 눈에만 그렇게 보인건지 모르겠지만, 별 관심없어 보이는 표정으로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보다 못한 나는, 끼어 들어가 대화를 끊었다.

"고객님, 주로 어떤 실험 하세요? 혹시 이런 비슷한 종류의 제품 사용 고려해보신 적 있나요?"

그제야 고객은 우리를 쳐다보며, 처음으로 자신의 얘기를 했다. 실은 제품 도입까지 심각하게 고려하다가, 새로 바뀐 경영방침 때문에 중단되었다고. 이후 대화는 고객이 그동안 고민했던 내용을 우리에게 질문하고, 영업사원들이 그에 대한 답을 하며 자연스레 흘러갔다.

그 대화를 하다 보니, 나의 흑역사가 불연듯 떠올랐다. 사회 초년생 시절, 기존 직원의 퇴사로 임시로 영업 업무를 맡았을 때였다. 넘치는 의욕과 열정으로, 고객을 한명한명 찾아가 제품 홍보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OO회사 OOO입니다. 이번에 저희 회사에서 이벤트 시작했는데요...(중략)...한 번 써보시겠어요?"

부스에서 열심히 우리 제품을 홍보하던 주니어 영업사원과, 똑같은 멘트였다. 아니, 그보다 훨씬 더 과했는지도 모른다. 고객 앞에서 내 얘기만 주구장창 20분을 넘게 했던 경우도 있으니. 지금 생각해보면, 고객들이 참 착해서 내 얘기를 끝까지 들어줬던 것 같다.


부스 전시가 끝나갈 무렵, 나는 주니어 영업사원 앞에서 다시 설명을 했다.

아까 내가 말을 끊어서 미안했으며, 왜 끊었는가에 대한 의도에 대해서 말이다. 그들 입장에서는 나의 개입이 불편했을 수도 있기에, 꼭 얘기하고 싶었다. 우선, 잔소리에 앞서 그들의 노력부터 칭찬해 주었다. 열심히 한다는 태도 자체가, 곧 그 사람의 인격이자 능력일 수 있기에. 그 이후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이것이었다. 물론 전혀, 이렇게 잘 전달하지는 못했지만...

"우리는 먼저 고객의 니즈를 파악해야 해요. 우리 부스로 찾아오는 고객들이, 모두 같은 목적으로 오는 건 아니에요. 고객 각자가 가진 각자의 상황과 수요가 있을 거에요. 설령 자기는 정말 이걸 사고 싶은데, 꼰대 부장님이 왜 이런 걸 사느냐 뭐라 했을수도 있고, 혹은 이걸 도입했을 때 리스크를 감당할 수 있을까 불안할 수도 있을거에요. 그러니 우리의 얘기를 하기 전에, 고객의 얘기를 먼저 들으면 좋을 것 같아요. "


내 말만 했을 때, 놓칠 수 있는 것들이 너무 많다.

고객이 보내는 작은 신호들, 그들의 속마음, 그들이 놓인 상황 등. 그것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으면, 제품을 판매할 수 있는 확률이 낮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 하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고객의 숨은 니즈를 파악할 수 있을까? 여러 방법이 있겠지만, 나는 1번 항목으로 '질문'을 꼽겠다. 내가 신도 아니고, 어떻게 고객의 마음을 훤히 들여다 보겠는가. 고객에게 다양한 질문을 건넴으로서, 그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 수 있다. 당장은 정답이 안 보일지라도, 최소한 힌트라도, 그의 마음으로 가는 지름길이라도 알 수 있게 된다.

누구나 아는 사실은, '경청'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경청도, 자신의 생각을 말로 표현하는 고객 앞에서나 통하는 기술이다. 고객이 아무 얘기도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들의 마음을 파악하기 어렵다. 그래서 나의 말과 고객의 말 사이에, '질문'을 설계한다면, 고객이 자연스레 자신의 생각을 말할 수 있게 된다.


말하느라 놓친 것은 고객의 생각이었고, 비로소 들으니 보인 것은 그들의 마음이었다.

우리는 고객을 '설득'하려고 말을 꺼내지만, 대화의 첫 단추는 '이해'여야 한다. 그들의 마음은, 말보다는 질문과 경청으로 열릴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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