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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원들은 잘 모르는, 숨겨진 평가 기준

어렵다 어려워

by 수풀림

"저 올해 목표 달성 120% 했는데, 왜 제가 A등급이에요?"

아마도 팀장들이 가장 머리 아파하는 시기는, 고과 시즌이 아닌가 싶다. 팀원들과 일대일 면담도 하고, 그들이 생각한 '셀프 평가 점수'를 듣는 시간은 차라리 낫다. 일단 들어주고, 팀장 입장에서의 잘한 점과 개선점에 대한 피드백을 주면 되니까.

진짜 문제는 고과 점수 통지 이후 시작된다. 마치 대학생들이 기말고사 이후 자신의 시험 점수에 대해 교수님을 찾아가 항의하듯, 팀원들도 팀장에게 먼저 면담 신청을 한다.

"이번에 성과도 초과 달성했고, 맨날 밤새가면서 진짜 열심히 했어요. 팀장님 아시잖아요? 이렇게 했는데도 저는 S등급 못 받는데, 도대체 어떻게 해야 받을 수 있는거에요?"

얘기를 계속 나누다보니, OO팀 김대리는 S등급을 받아 더 억울했고, 평가 기준에 대한 의문이 생겼다고 한다. 자신이 생각하기엔 김대리보다 자기가 훨씬 더 일을 잘 했는데 말이다.


아무리 평가 기준을 잘 설정해놓은 조직이라 할지라도, 고과를 받는 입장에서는 늘 불공평하게 느껴진다.

이런 현상에는 여러 가지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다른 사람에 대한 평가과 자신의 평가 기준이 다를 수 있고, 실제로 회사에 소위 '라인'이라는 것이 있어 실력보다 정치를 더 중요하게 여길 수도 있고, S등급을 받을 수 있는 자리는 정말 손에 꼽을 정도라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팀원들이 잘 모르고 있는 사항이 하나 있다. 팀원들은 흔히 평가가 '목표 달성 여부'만으로 결정된다는 오해를 한다. 단연컨데 이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얘기다. 실제 고과에는 눈에 보이는 성과 뿐만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손'이 더 크게 작용한다.

그 손의 정체는 바로 '동료 평가'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공식적인 동료 평가가 아니라, 고과 회의 때 비공식적으로 진행되는 다면평가다. 팀장들이 서로의 팀원에 대해 나누는 한 마디 한 마디가, 때로는 목표 달성률보다 더 큰 영향을 미친다.


우리 회사는 공식 다면평가를 하지 않는 대신, 팀장이나 리더십 회의를 통해 고과를 논한다.

이 회의의 주요 주제는, 우리 부서에서 최고 등급인 S등급을 누구를 줄 것인가이다. 한 마디로, 팀장과 임원진들의 'S등급 배틀'이다. 서로 각 팀이나 부서의 구성원들이 잘 했다고, 그래서 올해는 꼭 S등급을 주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자리다.

"OO차장이 S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A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리딩하여 30%이상의 매출 성장을 이끌어냈으며....(중략)...그래서 올해는 저희 부서에서 OO차장을 올렸습니다."

OO차장의 리더인 박전무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옆 부서 최전무가 반박한다.

"OO차장이 A프로젝트에 얼마나 기여했나요? 우리팀 XX차장 얘기를 들어보니, OO차장이 중간에 실수를 많이 해서 클라이언트가 화가 났던 적도 있다면서요? 그리고, 프로젝트 진행 상황 내부 공유 안해줘서 리스크 매니지먼트도 제대로 안 되었다고 하던데요?"

박전무는 이에 대해 하나씩 해명과 설명을 하지만, 이미 민심은 기운 상태다. 옆옆부서 김상무가 최전무의 의견에 동조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팀원들도 OO차장에 대해 비협조적이라고 표현했다 덧붙이며 말이다.


처음에는 이런 대화들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팀장인 내가 생각하기에는 100점짜리 팀원인데, 왜 옆 팀에서는 그렇게 못 잡아먹어서 난리인가. 자기 팀원은 얼마나 잘하는지 두고보자라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이런 과정을 몇 년간 거칠수록, 생각의 흐름이 조금씩 바뀌었다.

'아무리 우리 팀 내에서만 잘해봤자, 팀장인 나는 50점밖에 줄 수 없구나. 다른 팀에게도 잘 보여야 나머지 50점을 오롯이 받을 수 있는 거였네...'

여기서, 다른 팀의 동료와 상사에게 잘 보인다는 말은, '쇼업'이 아닌 '협업'을 의미한다. 그들 입장에서는 자신에게 얼마나 협조적인지, 같이 일을 했을 때 시너지가 나는지, 그 사람과 다시 일하고 싶은지가 중요하다. 이직할 때 많이 하는 레퍼런스 체크를 생각해보면 이해가 쉽다. 아무리 화려한 이력서와 완벽한 면접 실력을 갖춰도, 전 직장 동료들이 "그 사람 별로에요."라고 말한다면 채용이 되지 않을 확률이 높다. 마찬가지로 회사 내부 평가도 동료들의 '레퍼런스'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어찌 보면 직장인들의 목표 달성은 기본 평가 자격일 뿐, 진짜 승부는 '협업'에서 갈린다고 볼 수 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협조적인데 자신의 일을 제대로 못하는 직원이라면 어떡하냐고? 걱정할 필요 없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냉정해서, 나에게 업무적으로 해가 되는 동료들에게는 절대로 후한 점수를 주지 않는다. 회사는 혼자만의 힘으로 돌아가는 곳이 아니라 더더욱 그렇다. 아무리 능력이 출중한 직원이라도, 다른 사람을 향한 태도가 부정적이라면 낮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동료 평가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객관화되기 힘들어, 인사 평가의 공식 기준으로 표현되지 못하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나홀로 열심히 일하고 있는 직장인이라면, 한번쯤은 생각해보면 좋겠다. 나는 동료들과 어떻게 소통하고 같이 일하고 있는지. 나의 문제에만 너무 몰두해, 팀 동료들의, 우리 부서 전체의 문제에는 소홀하지는 않은지. 아니면 정말 쉽고 간단한 것부터 실천해도 된다. 옆 자리 동료에게 웃으며 인사하기, 그들이 머리아파 하는 일에 관심 갖기 등등. 이는 비단 평가 뿐 아니라, 원활한 회사 생활의 밑거름이 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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