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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녹색햇살 Jul 07. 2023

필로덴드론 실버메탈 1

  천남성과에 속하는 필로덴드론은 종류가 무척이나 많다. 보통 식물이 같은 이름으로 시작하면 비슷한 특징들을 가지고 있는데 필로덴드론은 잎과 줄기의 모양과 크기가 천차만별이라 무심코 보면 같은 종류인지 모를 정도다. 공통점이 있다면 흙 바깥의 줄기에서 뻗어 나오는 공중 뿌리에 있는데 이 뿌리로 가까이 있는 나무를 붙잡아 성장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그리스어로 사랑한다는 뜻의 필로스와 나무라는 뜻의 덴드론이 합쳐져 필로덴드론이란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이렇게 공중 뿌리를 내는 특징 덕분에 번식이 쉬운 편인데 공중 뿌리가 난 줄기를 물꽂이해 두거나 흙에 바로 심으면 비교적 쉽게 화분을 늘릴 수 있다.

  필로덴드론은 해가 많이 필요하지 않고 4~50%의 실내습도에서 잘 자라기 때문에 실내식물로 인기가 많다. 그래서인지 코로나 동안 무척 다양한 종류의 필로덴드론이 소개되어 가격이 천정부지로 뛰었다. 두 세장의 어린잎을 가진 유묘가 10만 원 가까이 할 정도라 식테크라는 말의 중심에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것도 이젠 제법 지난 얘기로 이제는 국내 농원에서 꺾꽂이한 아이에 해외 수입물량까지 더해져 저렴한 가격에 다양한 필로덴드론을 만날 수 있다. 


  우리 집에도 필로덴드론을 몇 가지 키우고 있는데 그중 애착을 가지고 있는 아이는 바로 필로덴드론 실버메탈이다. 은빛 펄이 코팅된 느낌의 반짝이는 잎 두 장을 가진 유묘 시절 우리 집으로 오게 되었다. 어느새 잎은 열 장이 넘었고 키도 훌쩍 자라 지지대를 넘겼다. 문득 처음 녀석을 데려오던 그 날이 생각났다.

  공부를 등한시하고 있는 고등학생 큰아이와 한창 신경전을 벌이고 난 어느 주말의 일이다. 시험을 거하게 망쳤다고 말하면서도 반성의 기미라고는 없고 잔소리하는 엄마에게 굳은 얼굴로 대꾸조차 하지 않던 아이에게 한바탕 난리를 치고 난 후였다. 남편은 살풍경해진 집안 분위기에 화훼단지나 식물원으로 바람이나 쐬러 가자며 나를 달랬다. 나도 큰아이와의 실랑이로 한창 열이 나던 머리를 식히고 싶어 어디로 가면 기분전환이 될까 하고 생각하다 평소 거리가 있어 벼르기만 했던 파주의 한 화원으로 목적지를 정했다. 식물원 못지않은 규모와 플랜테리어로 이름난 곳이라 금세 마음이 들떴다. 옷을 입고 가방을 챙겨 집을 나서려는데 큰아이가 혼나는 통에 눈치만 보며 핸드폰만 만지작거리던 작은 아이가 눈에 밟혔다. 자기 책상 앞에 고개를 박고 뒤통수만 보이던 큰아이도 마음에 걸렸다. ‘설마 저러고 있으면서 같이 가겠다고 나서지는 않겠지?’ 하는 생각을 하며 내 맘 편하자고 아이들에게 물어보았다. ‘엄마 아빠 바람 쐬러 갈 건데 같이 갈래?’ 내 딴엔 한껏 냉랭한 목소리였는데 아이들은 눈치가 없는건지 아니면 자기들도 이 분위기를 어떻게든 하고 싶었는지 둘 다 ‘예’ 하고 벌떡 일어났다. 뜨악한 마음을 감추고 ‘그럼 얼른 씻어.’ 했더니 왔다 갔다 세수를 하고 옷을 챙겨입는 아이들을 보며 남편은 ‘대체 왜?’ 하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어휴, 나도 몰라~’하는 얼굴로 아이들 눈을 피해 주둥이를 찰싹찰싹 때려 보였다. 이렇게 온 가족 나들이가 된 파주행. 출발하는 차 안은 아직도 엄마의 눈치를 보는 아이들로 긴장감이 느껴졌다. 하지만 휴게소에 들러 소시지와 소떡소떡 하나씩을 물리자 금세 아이들은 엄마 어디 가요? 아빠 어디 가는데요? 하며 떠들기 시작했다. 그런 아이들을 보며 나도 마음 한구석이 스멀스멀 풀어지고 있었지만 왠지 모를 오기에 마음을 꼭꼭 다잡고 아이들의 질문에 단답형으로만 대답하며 목적지에 도착하기만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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