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10대들의 사고, 죽음: 언니 '림'의 이야기
외할머니의 두 번째 형제가 돌아가셨을 때였던 것 같다. 어렸을 때의 기억 중에서도 그나마 선명히 남은 것이다. 다섯의 나는 나보다도 어린 동생의 작은 손이 떠내려가기라도 할 것처럼 쥐었다. 다리가 아파 칭얼거리면 인사를 하러 분주히 돌아다니시던 엄마 아빠가 우릴 안아올렸다. 쌀쌀하고 눅눅한 공기에 얼른 들어갈 수는 없냐며 아빠를 보챘던 기억이 있다. 그날의 나는 불편함을 제외하곤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했다. 그건 그냥 참여하고 싶지 않은 교회 행사 같은 것이었다. 당시의 나는 의무라는 개념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교회 행사는 당시의 내게 가장 의무에 가까웠던 것이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수육을 먹고 시끌벅적한 장례식장이 아니라 묘지로 가기까지의 질척함만이 기억에 남는다. 그날부터 내게 죽음은 비 오는 날의 질척한 비포장도로, 추적거리며 내리는 비와, 검은 우산 따위의 것이었다. 할머니의 표정은 어두웠고, 엄마와 아빠의 표정은 딱딱하기만 했다.
그다지 멀지 않은 훗날의 나는 엄마에게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시면 장례식장을 풍선으로 꾸밀 수는 없겠느냐고 물었다가 크게 혼이 났다. 아마 전 날에 장례식장에선 죽은 사람이 머물다 간다는 소릴 들었던가 했을 것이다. 할머니의 행복을 빌기 때문에 장례식장에 풍선을 두고 싶었던 마음이었던 것 같다. 행복해지고 싶은 날에는 모두 풍선을 달았으니까. 생일날이나 졸업식에 그러는 것처럼.
그때의 나는 헤어지는 것의 아픔은 이해하고 있었지만, 죽음이 유달리 심각하게 다뤄지는 이유는 이해하지 못했다. 당시 작별은 내게 ‘나쁜 것’이라 생각되고 있었는데, 헤어지는 것만으로 충분히 나쁜데 마지막으로 보는 얼굴들이 죄다 굳어 있거나 눈물에 범벅되어 있다면 그게 귀신 입장에서는 더 나쁘지 않나 했다. 고인이 생전에 좋아했던 신나는 음악을 틀고, 풍선을 알록달록하게 달고, 얼굴엔 웃음을 한가득 머금고. 사람이 모이는 어떤 행사든 풍선으로 장식되어 있었으니 장례식도 풍선으로 장식되어 사람들의 기분이 좋았으면 했다. 한 번 유치원을 옮겼던 내가 기억하기로, 가족들보단 훨 가벼운 인연이었던 친구들과 헤어지는 것조차 울며 마무리 짓는 것보단 마지막까지 웃는 얼굴을 보는 것이 좋았다. 어렸던 내가 생각하기엔 가장 이상적인 작별이었던 셈이다.
여섯 살의 나는 그 가정조차 불쾌해하시는 엄마를 이해하지 못했다. 오래 살았던 아파트의 이웃들과는 어떻게 작별 인사를 나눌지 생각해보시면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어떻게 헤어져야 할지는 생각해두지 않으신 걸까.
그 의문을 해소한 건 삼 년이 지난 어느 겨울이었다. 우리가 모두 잠에 든 줄 알고 부모님이 어른들끼리의 대화를 시작했을 때다. 나는 다른 아이들이 그렇듯 그런 부모님의 이야기를 몰래 듣는 것을 좋아했다. 이야기가 흥미진진하지 않고 두려워지기만 했을 때는 엄마의 사주 팔자에 대해 엿들었을 때다. 엄마는 자신이 어느 점집을 가든 사십대를 넘기지 못할 거란 말을 듣곤 했다고 말했고, 그 말은 내 영혼에 박혔다.
아홉 살의 나는 그 겨울이 끝나갈 때까지 엄마의 죽음에 대해 생각했다. 종교의 유무를 떠나 미신 따위를 믿는 집안의 아이로 자라서 그런 것이었는진 몰라도, 이불 안이 유난히 추운 밤에 부모님이 남몰래 나눈 이야기가 이불 속 추위가 가시는 그 날까지 신경을 건드렸다. 그때의 나는 꿈과 망상, 머릿속에서 수도 없이 반복된 엄마의 죽음으로 영원한 작별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었다. 부모님이 왜 그런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주려 하지 않았는지, 왜 그날따라 부모님의 분위기가 가라앉아 있었는지, 왜 그 대화를 들은 이후부터 엄마가 좋아했던 브루노 마스의 <When I Was Your Man>을 들으면 유달리 울컥하는지도.
죽음은 어떻게 다루어져야 할까. 어렸을 땐 선명했던 답이 머리가 자랄수록 흐려지기만 한다.
나는 더 이상 누구와도 죽음에 대해 말을 나누지 않는다. 장례식을 어떻게 꾸며야 할지 묻는 것도 더 이상 하지 않는다. 그건 이미 답을 알게 되어 더 이상의 논의가 필요하지 않은 게 아니라, 그런 말을 어떻게 꺼내야 할지도 모르겠어서이다.
외할머니의 장례식을 가정하는 것을 불쾌해하셨던 엄마를 이해하게 될수록, 어리고 아는 것 없어 명료한 결론을 내렸던 나와는 멀어진다. 죽음은 아직 내게 무섭기만 한 주제라, 나는 이따금 그에 대해 생각하는 것만으로 그날의 남은 시간 전부를 마비시키고 만다. 엄마만이 할 줄 아는 요리의 레시피를 물어보는 것이나, 엄마가 그리는 미래 계획을 잠자코 듣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것의 전부다. 헤어짐이 갑작스러울 수도 있다는 것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으나, 마찬가지로 그게 내가 알게 된 것의 전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