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매로 사는 것에 대한 이야기, 부모님: 언니 '림'의 이야기
십몇 년 전의 내가 본 세상은 이상했다. 모르는 게 많았던 게 문제였다. 어른들에게 많은 질문을 던지곤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들이 내게 모든 것을 알려주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가장 많은 변수를 안고 있는 건 대인관계나 소통 따위의 문제였다. 어떻게 굴어야 칭찬을 듣거나 혼이 나지 않는지는 한 번 알았다고 생각했을 때도 변화구가 날아올 때가 잦았고 그럴 때면 나는 갈팡질팡하다가 기어이 혼이 날 만한 행동을 하곤 했다.
하지만 다행히도, 쓰잘데기 없는 곳에서도 규칙을 찾는 건 내 특기였다. A라는 행동에 사람들은 보통 B라는 반응을 보인다는 일관성을 찾아낸 것이다. 어린아이들은 어차피 복잡하게 사고할 수 없고, 어른들은 어린아이들에게 복잡한 반응을 보통 돌려주지 않는다. 그랬기 때문에 사람들의 반응에서 규칙을 찾고 그것을 학습하는 과정은 꽤 수월하게 진행되었고, 내가 생각하기에는 이게 보통의 아동들이 대인소통을 학습하는 과정이다.
다만 내가 다른 아이들에 비해 희한했던 점이 있다면 그 과정에서 다른 사람들을 그렇게 설계되어 있을 뿐인, 자아가 없는 생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던 점이다. 사람들을 일종의 NPC로 본 것이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없었고, 극도로 납작하게 어릴적에 나는 사람들을 A라는 자극에 B라는 언행으로 반응하도록 설계되어 있는, 자아가 없는 생물이라고 생각할 때가 있었는데, 게임의 존재를 알게 된 훗날의 나는 그때의 내가 사람들을 NPC라고 생각했다고 정의했다. 어른들은 한낱 꼬마였던 내게 다양한 반응을 돌려주진 않았고, 같은 나이대의 친구들은 다양한 반응을 돌려줄 만큼 복잡하게 움직이지 못했다. 사람들은 어떤 방식으로 움직이게 코딩되어 있었고, 대개 그것은 엄마가 꼭 강조했던 인사나 존대, 예의바른 태도 따위를 보이지 않을 때 가장 일관되게 나타났다.
예외는 아빠였다. 아빠는 조금 푼수 같은 면이 있는데다 제멋대로였고, 도움이 되는 가르침을 주다가도 영 쓰잘데기 없는 주제로 넘어가거나 그 반대를 반복하곤 했는데, 그건 아빠를 굉장히 입체적인 사람으로 보이게 했다. 좋은 사람이었고 좋은 아버지였지만 사람이 특이하고 또 이상해서 세상이 구태여 저런 NPC를 설계할 것 같지 않다는 혹평도 한몫했다. 아빠는 처음부터 NPC가 아니리라고 생각되었던 유일한 사람이었는데, 개중 NPC라고 생각했으나 점차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게 된 존재도 있었다. 어린 동생은 한창 싸우다가도 3분 뒤에 제가 원하는 것을 내밀면 바보처럼 웃으며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까먹는 녀석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결국 따라 좋아하게 되면서, 내가 당장 좋아하는 것에 대해 설명하면 이해하지 못하고 못생긴 얼굴을 찌푸리기도 했다. 나는 그 규칙들을 빠르게 학습했다. 동생은 아빠처럼 원체 제멋대로인데다 어린애라 규칙이랄 게 없어 점차 다루기 힘들어졌기 때문에 동생을 NPC라고 생각하는 것은 그만두게 되었지만, 그러고도 우리 집에 요주의 NPC는 남아있었다.
나는 오랫동안, 다양한 이유로 엄마가 NPC일 거라고 생각했다. 엄마에게는 과거랄 게 없었다. 엄마는 우리가 생기기 전의 이야기를 꺼내는 것을 극도로 피하곤 했다. 아빠는 어느 대학을 졸업했는지는 물론이고 중학생이나 고등학생 때 어느 학교를 다녔는지도 알 수 있었고, 그가 자라난 동네 같은 것도 몇 번이고 직접 눈에 담을 수 있었지만, 엄마는 내가 캐묻고 캐물어도 답을 내놓지 않았다. 엄마는 굉장히 비밀스러운 사람이었다. 사진도 없었다! 아빠와 데이트할 적 찍은 사진, 결혼할 적 찍은 사진만 남아있을 뿐이었다. (이사 도중 잃어버린 것이라 듣긴 했지만…… 어린 나는 그냥 미심쩍어했다.) 엄마에게는 호불호랄 것이 없었지만 마치 그렇게 설계되었다고 생각될 만큼 무척이나 규칙적인 습관을 갖고 있었다. 나는 그때 도덕이라는 단어를 몰랐지만, 알았다면 엄마가 도덕책에서 태어난 도깨비이기라도 한 건지 고민했을 것이다.
엄마는 언제나 내가 예상하는 범주 안의 사람이었다. 내가 어떤 문제를 들고 가든 엄마는 어떻게든 그 문제를 해결해주기도 했다. 엄마가 동생과 내가 무얼 하고 있는지 기이할 만큼의 정확도로 알아차리는 것도, 엄청나게 똑똑한 것도 엄마가 NPC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엄마가 우리를 사랑함을 알고 나 또한 엄마를 사랑했지만, 엄마는 내게 납작하기만 했다.
조금 더 자란 나는 엄마가 NPC라는 누명으로 오랫동안 내 마음속 유치창에 갇혀 있던 이유를 정리할 줄 안다. 엄마는 전혀 인간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엄마의 하루하루는 지나칠 만큼 나와 내 동생으로 가득차 있었고, 엄마만을 위한 시간은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엄마가 개인적인 것을 꺼내놓지 않고, 개인적인 것을 새로 시도해보려고 하지도 않아서였기도 했다.
엄마가 나와 동생이 그런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만큼 자랐을 때 들려준 옛날 이야기는 엄마를 보다 입체적인 인물로 만들어갔다. 생명공학과 물리치료 그리고 보건학을 전공하고 박사 과정을 밟을 예정이었던 엄마가 아빠를 만나고 육아를 선택하며 커리어를 포기하게 된 것 따위의,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고 교수를 목표로 했던 개인의 삶을 버리고 우리의 엄마만으로 존재하게 된 이야기를 듣고 있자면 그랬다. 엄마는 우리의 엄마로서만 존재했기 때문에 비인간적으로 느껴졌지만, 되짚어보면 처음부터 그랬던 사람은 전혀 아니었던 점이나 그렇게 되기까지의 원인에 나와 내 동생, 그리고 아빠가 있다는 점이 불편하고 죄송스럽게만 다가오는 것이다. 엄마의 삶이 성공적이었으면 나와 내 동생은 세상에 없었을 거란 생각도 들었다. 엄마가 내린 선택인 우리가 좋은 결과만을 가져왔다고 볼 수 없기 때문에 더 죄송스러워졌다.
엄마가 내게서 NPC로서의 이미지를 깨고 하나의 개인으로서 존재하기 시작했을 때 나는 끔찍하게 괴로워졌다. 엄마가 그래선 안되었다는 게 아님을 분명히 밝힌다. 그냥 내가 끔찍하게 죄송스러웠을 뿐이다.
물론 마냥 죄송스러웠다고만 할 수는 없다. 감사하는 마음이 더 크다. 우리를 선택해주어서 기쁜 마음이 더욱 크다. 엄마가 내 뒤에 존재하고 있는 게, 언제고 우리가 필요로 하는 곳에 있다는 점이 더없이 든든하다. 하지만 새로운 기회가 주어진다면 엄마에게 다른 선택을 내릴 것을 권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내가 죄책감을 덜어내는 법은 엄마에게 개인적인 시간을 만들어주려고 애쓰는 것이었다. 그날부터 나는 엄마에게 취미를 가져보지 않겠느냐고 권하기 시작했다. 글 쓰는 것도 좋고, 그림 그리는 것도 좋다. 그러니 뭐라도 남겨보라. 하지만 엄마의 답은 언제고 부정이었다.
“시간이 없는데 무슨.”
그 말이 맞다. 엄마는 우리 가족 중에서 가장 바쁜 사람일 것이다. 활동반경이 넓지 않다고 해서 그의 어깨에 얹어진 책임이 적은 것이 아니다. 엄마는 우리 가족의 20년을, 혹은 그 너머를 계획한다. 나와 내 동생의 대학이나 아빠의 미국 의사 면허 시험, 건강이나 대인관계 따위의 수백가지로 나뉘어 존재하는 변수를 하나하나 살피고 그에 대응하는 수십 가지 계획을 내어놓는 것이다. 플랜 A가 틀어졌다고 우리 가족이 무너지는 일이 있을 수 없도록 플랜 B, C, …그렇게 그 변수를 최대한 감안한 계획 수십 가지를 짜고, 그 계획들이 제대로 기능할 수 있도록 최대한 많은 앎을 가지려고 하고, 가정하고, 행동하고…….
하지만 엄마가 가장 바쁘다는 사실에 동의한다고 해서 내 이의가 철회되는 것이 아니다. 개인적인 시간은 시간이 없으면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을 미루고서라도 반드시 끼워넣어야 하는 요소이다. 그런 것들이 우리 엄마를 림과 다의 모친, 유 모씨의 아내, 엄마가 아니라 하나의 개인으로 살게 할 것이라고 믿는다. 스스로를 잃어가며 엄마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은, 가족의 일원인 나로선 감사해야 할 일이지만, 희생이라기보단 혹사다.
그래서 엄마가 민화를 시작했을 때 나는 꽤 기뻤다. 영화 <프리 가이>에서는 NPC가 아름다움을 깨닫고, 자의식을 가지고, 끝내 주인공이 된다. 엄마 본인은 훗날 돈벌이를 위한 스킬 터득이라고 했지만, 숙제라며 몇 시간씩 꽃 그림을 붙잡고 놓아주질 않고, 마음에 들지 않는 구석이 있으면 그를 어떻게 고칠지 끊임없이 생각하는 것을 보면 그 기쁨은 변하지 않는다. 언젠가 엄마가 글도 써주었으면 좋겠다. 엄마 개인을 남길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나나 내 동생이 아니라! 우리는 서로를 보며 엄마를 추억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