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매로 사는 것에 대한 이야기, 과일: 동생 '다'의 이야기
복숭아는 맛있다. 단순히 맛있다고 표현될 맛남은 아니다. 복숭아의 하얀 속은 그 어떤 과일과 비교해 보아도 단연코 최고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달콤하다. 이러한 달콤함은 나를 해바라기를 찾은 꿀벌처럼 복숭아만 찾도록 만들어 버릴 정도이다. 하지만 복숭아의 특징 중 나랑 가장 빨리 사로잡은 것을 그 껍질의 색이라고 할 수 있다.
분홍색. 나는 이런 분홍색을 어릴 적에 아주 좋아했었다. 얼마 전 어릴 때 입던 옷을 정리하기 위해 옷장을 열어보았는데, 벚꽃이라도 핀 것처럼 온 옷장이 분홍색으로 물들어있었다. 드디어 검은색 옷을 찾았다 싶었는데, 레이스가 달린 데다가 심지어 그 레이스의 색이 분홍색이어서 충격을 받은 기억도 있다. 그만큼 나는 분홍을 좋아했다. 일본으로 가 헬로키티 인형을 사도 분홍색 기모노를 입고 분홍색 리본을 단 헬로키티를 샀었고, 친구들이랑 해외여행을 하던 중 산 비즈 목걸이도 분홍이었다. 지금은 내가 분홍을 왜 좋아했는지도 모를 정도로 분홍을 그렇게나 좋아했다.
분홍색에 대한 사랑이 정점에 다다른 것은 3학년 때였다. 3학년은 분홍에 대한 나의 사랑이 가장 최고치를 기록함과 동시에 물을 끼얹은 불씨처럼 아주 빠르게 사라졌던 학년이다. 분홍색을 얼마나 좋아했냐면, 새 학기랍시고 새로 산 가방도 분홍색이었고, 마음에 들어 눈여겨 보다가 결국 산 접이식 필통도 분홍색이었다.
3학년은 분홍과 동시에 복숭아에 대한 사랑도 아주 흘러넘쳤던 때이다. 어렸을 때 집에 가면, 의사인 아빠가 환자분들과 간병인분들에게 선물로 받은 포도주나 식료품들이 집에 한가득 나를 반기고 있었다. 그 선물 중엔 물론 과일도 있었는데, 과일로는 보통 복숭아나 포도가 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복숭아. 나의 최애 과일! 나는 복숭아가 선물로 들어오거나 엄마나 아빠가 복숭아를 사 올 때마다 엄마한테 복숭아를 깎아달라고 졸랐던 기억이 있다. 그러면 보통 엄마는 한두 번 거절하다 결국 복숭아를 깎아준다. 하지만 이건 여담인데, 엄마는 복숭아털 알레르기가 있어 복숭아를 만지지 못한다고 한다. 어렸던 나는 그런 걸 모르고 계속 엄마한테 복숭아를 깎아달라고 조른 것이다. 여기에서 나는 엄마의 사랑을 확인 할 수 있었다. 물론 얼마 전에 알아서 그때는 그런 사소한 부분에도 엄마의 사랑이 묻어나온다는 것을 알지 못했지만.
엄마의 알레르기 탓인지 엄마가 몸이 안 좋아 힘들었던 것인지, 어느 순간부터 나는 아빠에게 복숭아를 깎아달라고 조르고 있었다. 그럴때면 먹는 것을 좋아하는 아빠는 내가 먹는 것을 보는 게 자기의 행복이라며 복숭아를 한 번에 두 개에서 세 개 정도를 깎아주었었다. 아빠가 그렇게 하면 나는 안방 침대에 누워있는 엄마에게 복숭아 하나, 공부 방에서 피아노를 치고 있는 언니에게—언니는 복숭아를 잘 먹지 않고 포도를 굉장히 좋아해서 복숭아를 건네면 거절할 때가 많았다. 복숭아를 하나, 그리고 복숭아를 깎아준 아빠에게 복숭아를 하나 주었다. 그 후엔 복숭아가 다 내 것이었다. 가끔은 아빠랑 같이 나눠 먹거나 했지만, 대부분은 나 홀로 TV 앞에 앉아 아빠가 깎아준 복숭아를 다 해치우곤 했다. 보통 여름방학 되면 복숭아를 많이 먹긴 했지만, 그 정도로 많이 먹은 건 초등학교 3학년이 유일하다. 복숭아를 너무 좋아해 집에 있는 복숭아를 전부 흡입을 한 탓에, 나는 예전의 빼빼 말랐던 어린 나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몸무게가 아주 많이 늘어났었다.
“엄마, 이게 진짜 복숭아를 많이 먹어서 일어난 일일까…?”
충격을 받은 나는 실제로 한동안 복숭아를 일체 먹지 않았고, 그때부터 나의 분홍색 사랑은 시들어만 갔다.
반면 언니는 꾸준히 한 과일을 애정하고 있다. 언니는 포도를 굉장히 좋아한다. 달콤하고 새큼한 게 좋다나 뭐라나. 요즘도 좋아하긴 하지만 예전엔 광인 정도로 포도를 좋아하고 사랑했다. 적포도가 식탁 한가운데에 놓여있으면, 그 적포도는 한두 시간이 지나면 뼈대만 남은 물고기처럼 앙상해진 상태로 식탁 한가운데를 지키고 있었다. 언니의 포도 사랑을 알던 나는 일부러 언니에게 복숭아를 권유하곤 했는데, 이렇게 하면 언니는 포도가 아니라서 안 먹는다고 하고 공부방에 들어가 피아노를 치곤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방심한 나를 제치고 복숭아를 서너 개씩 집어먹고 가는 경우가 있기도 했다. 이럴 때마다 가히 어지러울 정도로 어이가 없었다. 엄마, 언니, 그리고 아빠한테까지 복숭아를 준 후 남은 복숭아가 내 것으로 생각했던 나(도대체 왜 그랬니???)는 아무리 가족이라도 누군가가 복숭아를 뺏어가면 항상 한마디씩 툭툭 던지곤 했다.
“언니 내 것 안 먹는다며!”
지금은 안다. 복숭아는 내 복숭아가 아니고 다 같이 나눠 먹는 복숭아라는걸. 다 같이 나눠 먹는 “우리”의 복숭아를 왜 나는 내 것으로 생각했는지 모른다. 어쩌면 내가 어떤 것에 관심이 생기면 그것만 주구장창 파는, 그러한 나의 특징이 어렸을 때부터 보였던 것일 수도 있을 것 같다. 물론 이제는 남을 생각할 줄 아는 그런 사람이 되었지만, 아직도 남아있는 나의 복숭아 사랑을 보면, 그런 특징은 아직 남아 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