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소공포증과 포도

자매로 사는 것에 대한 이야기, 과일: 언니 '림'의 이야기

by 림다림다

포도는 내가 눈치 보지 않고 먹을 수 있는 과일 중 하나였다. 먹기 시작하면 너무 많이 집어먹는 바람에 포도가 한 번에 접시에 올라가는 양이 달라지긴 했지만, 먹는 것 자체에 대해 누군가의 눈초리를 받을 일은 없었다는 뜻이다. 먹는다고 눈초리를 받을 만한 음식은 보통 동생이 좋아하는 것이었다. 눈초리를 받은 건 내가 장녀라서 양보해야 하기 때문이라거나 부모님이 동생을 편애해서는 아니었고, 순전히 그 눈초리의 주인이 동생이기 때문이었다. 동생이 좋아하는 복숭아 같은 것을 주워 먹으면 동생은 엄마에게 칭얼거리거나 억울한 눈으로 나를 노려보곤 했다. 동생이나 나나 유난히 눈이 쪽 찢어져서 있었기 때문에 집에서는 암묵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표현이었지만, 그때의 동생은, 그래. 분명히 나를 째려봤다.


포도는 그 달달한 과육에도 불구하고 잘못 씹으면 끔찍한 맛이 나는 껍데기와 씨앗 때문인지, 집안에서는 나름대로 미식가인 동생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 나는 그것을 보고 미식가라서 그런 게 아니라 자연의 섭리에 충실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포도도 동생놈의 선택을 받고 싶지 않았으니 그렇게 진화한 것 아닐까? (고등학교 생물 과정을 이수해 진화론을 배우고나서는 물론 생각이 바뀌었다. 이제 보니 운명적이기까지 한 것 같다.)


한쪽만 좋아해 마음놓고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있는 한편, 둘 모두 좋아해 손을 뻗는 매 순간이 눈치게임인 것들이 있고, 어느 누구의 선택도 받지 못해 손도 닿지 않은 채 서빙된 그대로 남아있는 것이 있다: 바로 채소다. 아빠가 성인이 되고 스물여덟에 엄마를 만나기까지 채소를 입에 대지도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채소를 싫어하는 동생과 나의 특성은 우리의 고유한 특징이라기보단 DNA에 박혀 유전된 특성이란 것을 알 수 있다. 친가에서 물려받은 수전증 같은 것이다.


네 가족 중 셋이 채소를 싫어하므로 우리 가족의 식단은 보통 육식이다. 몇십 년간 그런 식습관을 영위하신 것에 대한 업보로 아빠가 당뇨를 판정받았기 때문에, 영 달갑지만은 않은 변화만이 나를 기다린다. 결국 채소를 먹어야만 한다. 열무나 김치 정도는 괜찮다. 하지만 청경채나 시금치처럼, 오래 씹어야 하는 것은 끔찍하기만 해서 생각만으로 표정이 굳어지고 만다.


나는 일종의 채소-포비아를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혐오가 아니라 공포라는 게 중요하다. 아빠의 식습관을 보면 유전자에 박혀 있을 것 같지만, 아니다. 내 채소 기피는 초등학생일 적 학습된 것이다.


초등학교 1학년. 나는 채소를 자주 남기는 아이들 중 하나였다. 나 자신은 그다지 심한 편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전해듣기로는, 바닥에 몰래 버리는 아이들도 있다고 했으니까! 바닥에 버리면 더럽기만 하고 쉽게 들통나기까지 해 혼날 텐데, 난 그런 것을 할 만큼 대담하고 멍청한 학생이 아니었다. 물론 그렇다고 선생님께 혼나는 상황을 피해가기 위해 머리를 쓸 만큼 교묘하거나 똑똑하지도 않았다. 내가 하는 것은 단순했다: 그냥 먹거나, 운 좋게 피해가길 기도하면서 식판 검사를 받기.


채소를 심히 기피하게 된 것은 당시 담임 선생님이 내 식판에 채소를 다른 아이들이 받아간 양보다 많이 덜어주시고는 그걸 전부 먹기 전까지는 하교하지 못하게 한 이후다. 못 먹겠다고 떼를 쓰고 울어도 그걸 잔반처리하고 집에 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그때 세 분단으로 나뉘어진 교실에서 왼쪽에서 첫 번째 분단, 두 번째 열 세 번째 행에 앉아 있었는데, 그래서인지 식판 위의 변함없는 초록색 덩어리와는 달리 하나 둘 비어가는 자리들을 눈에 담을 수 있었다. 나를 제외하곤 마지막으로 남은 아이가 식판을 반납하고 선생님께 인사하며 앞문으로 나섰던 순간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다. 나는 섬유질이 많고 길이가 긴 채소를 질기단 점과 그렇기 때문에 입에 오래 남아있다는 점, 그리고 목에 잘 걸려 헛구역질을 하게 된다는 사실 때문에 싫어했는데, 불행히도 그날의 채소는 죄 그런 것들뿐이었다. 헛구역질을 여섯 번째로 참아낸 뒤에야 나는 식판을 전부 비울 수 있었다. 선생님의 단호한 어조와, 입 안에서 씹히는 길고 끔찍한 맛의 덩어리와 달리 먼지 떠다니는 게 보일 만큼 환한 햇살이 들어오던 것이나 평소라면 좋아했을 적막 같은 것들이 기억난다.


돌이켜보면 포도를 처음부터 좋아하지는 않았다. ‘달달한 과육에도 불구하고 잘못 씹으면 끔찍한 맛이 나는 껍데기와 씨앗’은 동생이 먹을 때에만 마법처럼 생겨나는 것은 아니었다. 내가 달달한 과육을 위해 껍데기와 씨앗을 무시할 수 있게 된 건 부모님이 내세우셨던 ‘처음 접하는 음식은 꼭 한 번은 먹어보자’는 규칙이 준 도전정신뿐 아니라, 엄마가 어린 우리를 위해 껍질과 씨를 제거한 뒤 과육만을 컵에 잔뜩 담아주었기 때문이었다. 접근이 힘들었던 포도를 우리가 접근하기 쉬워하는 방식으로 바꾸어 차근차근 주셨고, 그런 보살핌이 서서히 없어지고 난 뒤에는 껍질도 씨도 먹을 줄 아는 사람이 된 것이다.


음식을 대하게 되는 태도를 결정짓는 것은 어떤 방식으로 음식에 접근하게 하느냐가 아닐까? 어린 아이들에게 건강에 좋다며 채소를 먹이는 것은 강아지에게 몸에 좋다며 싫어하는 사료를 먹이는 것과 비슷하다. 건강에 좋다는 것은 어린 아이들에게는 아무래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이고, 채소를 좋아하게 만드는 이유도 되지 못한다. 결국 끔찍한 맛의 껍데기와 씨앗을 처음부터 감내하라 이르는 것보다는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것부터 가공해서 제공하고, 싫어하는 부분들을 감수하고서도 그 좋아하는 맛을 찾게 하는 게 보다 효과적인 접근이 아닐까 싶다. 어쨌거나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진정으론 어떠한 것도 자발적으로 하라 강요할 수는 없다.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것으로 충분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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