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10대들의 사고, 종교: 언니 '림'의 이야기
옆 사람처럼 두 손을 모으고 나면 이윽고 모두가 고개를 숙인다. 나는 몰래 옆의 아빠를 올려다본 후 모두가 눈을 감았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목사님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하고 첫 구절을 뱉으시면 모두가 일제히 다음 구절을 읊었다.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부산에선 당연했던, 눈이 오지 않는 크리스마스의 예배였다. 다른 아이들처럼, 드물게도 어른 예배에 부모님을 따라 참석했던 어린 나는 고개를 들어 마찬가지로 눈 감고 기도하는 아빠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하늘에는 내 아버지가 없다. 내 아버지는 여기에 있었다.
우리 아빠는 어린 내게 특이하게만 느껴지는 사람이었다. 직업이 직업이니 공부를 잘했다는 사실은 알겠다. 하지만 아빠는 뭐 하나 먹을 때마다 “림이 한 입, 아빠 하나. 다 한 입, 아빠 하나.” 거리면서 바보 같은 이유로 제 몫을 많이 챙기는 사람이기도 했고, 그러다가도 우리에게 넘치는 사랑을 안겨주며 하나하나 안아주고 동생과 엄마는 질색하는 뽀뽀를 해주는 사람이기도 했다. 아빠는 우리에게 뭐든 새로운 것은 한 번은 먹어보라고 고집 부리는 선생이기도 했고, 이따금 사회와 시사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며 실질적이지 못하지만, 꼭 필요한 것들에 대해 가르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창의력 수학 문제를 쉽게 설명하는 법은 모르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런 아빠를 사랑하기도 했고, 가끔은 푼수 취급하기도 했으며, 동시에 존경하기도 했다. 그건 내가 아빠를 정의하는 방식이었다. 물론 그건 내가 하늘에 계시다는 그 분을 정의하는 방식은 아니었다.
하지만 내게 또 다른 아버지를 소개해주신 건 엄마와 아빠였다. 두 분은 원래는 각자 종교가 달랐는데, 친가는 사주팔자를 이유로 불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했고 외가는 사주와 불교를 모두 믿었다. 그럼에도 왜 교회에 가느냐고 여쭈면 부모님은 나와 그게 내 동생을 위한 일이라고 하셨다. 하나님이 우릴 지켜줄거란 말은 하지 않으셨으나 내가 받아들인 바는 비슷했다. 나와 내 동생을 위해 실체도 없는 다른 아빠를 만들어준다니, 어린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부모님은 그저 우리에게 쥐여줄 수 있는 최대한의 축복을 쥐여주고 싶으셨던 것 같기도 하다. 다양한 사람이 비슷한 목적으로 모인 사회에 나를 소개시키고, 친구들을 만들어주고…….
그러나 나는 종교에 대해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많았다. 어린 아이들을 보호자 없이 한데 모아두고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하면 지옥에 간다고 가르치고 그 하나님의 존재가 기록되었다는 소설을 매번 읽어주고, 그를 찬양하기 위해 성경과 찬송가를 외우게 하는 것은 분명 쉬이 납득되지는 않는 행보이다. 다만 그것을 교회이니 당연하다고 뭉뚱그리는 것이다. 어린 나는 질문이 많은 편이었는데, 하나님이 정말 존재하느냐고 물었다가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는 답을 듣곤 입을 다물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친구들은 지옥에 갈 것이니까 그 애들을 불쌍히 여기고 그 애들을 위해 교회로 인도해야 한다는 건 정말이지 기괴하게 느껴졌다. 나는 어릴 적에는 그것을 귀찮다고만 여겨 (막말로 나조차 교회에 오는 게 귀찮았는데 그러지 않던 친구에게 그것을 같이 하자고 할 수는 없었다) 몇 년이고 한두 달 안에 다섯 명 넘는 아이들을 데려오라는 선생님들의 당부를 무시했지만, 커서는 그것이 선민의식으로만 여겨졌다. 다른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 또한 그다지 이해가 가는 행보는 아니었다. 네 이웃을 사랑하라면서 그 정도 존중도 못하는 걸까? 나는 신적인 존재가 있으리라고 믿었지만 내 신이 굳이 하나님 원툴일 필요는 없었다. 절대성을 부정하지 말라는 점은 그들에겐 당연했겠으나 내겐 모순적이기만 한 행보처럼 여겨졌다. 절대적이라면 어째서 모두가 하나님을 믿지 않는가? 왜 악이 존재하는가? 모든 것을 사랑한다면 영혼이 영원히 고통 받는 지옥은 왜 존재하지? 훗날 신학을 공부할 기회가 있었으나 그건 종교를 설명하긴커녕 내가 그 종교를 영영 납득하지 못하게 된 계기가 되었을 뿐이었다. 신학이 옛적에 신의 말이 법이 되었던 시대에는 분명 필요한 학문이었을지는 몰라도 이제와선 부정될 수 없는 진리를 설명하라는 것은 고리타분하게 느껴졌다. 과학의 어떤 이론도 100% 맞다고 할 수는 없으며 진리가 될 수는 없는데 어떻게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신의 절대성 같은 게 진리가 된단 말인가?
언젠가 엄마에게 내게 자식이 생긴다면 그 아이는 교회에 보내지 않겠다고 했다. 훗날 알아차렸으나 그건 엄마의 교육방식에 대한 공격으로 비추어 질 수도 있었다. 엄마는 당황하며 말했으나, 그는 자식의 거부에 화가 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엄마는 여러 이유를 꼽았지만, 개중 종교가 어린 아이에게 도덕을 자연스레 가르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는 점이 기억에 남는다. 하지만 내게 도덕을 가르친 건 종교가 아니라 바로 내 엄마와 아빠였다. 친구를 공격하는 것처럼, 하면 안 되는 것과 그럼에도 예외적인 상황 같은 것을 구분짓도록 도와주신 건 무작정 모두를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늘 바로 옆에서 구분을 도와주신 부모님이었다. 내가 거짓말하지 않도록 교육받은 건 그렇게 하면 지옥에 간다는 와닿지도 않는 협박 때문이 아니라 유치원에서 자주 울면서도 그걸 부끄럽게 여겼던 내가 솔직하게 털어놓으면 리모컨을 돌려 파워레인저를 틀어주셨던 엄마 덕분이었다. 잘못을 저지르면 지옥에 간다는 것보다는 우릴 가르친 엄마 아빠가 부끄럽고 속상해질 거란 말이 내가 저지를 수도 있었던 잘못 몇을 참아낼 수 있게 해주었다.
만일 내가 친구들을 열정적으로 전도하고 유일신을 믿지 않는 아이들을 정말로 불쌍히 여겼다면 부모님은 생각이 다르셨을지도 모르겠다. 모두의 집이라는 교회는 내겐 늘 불편하기만 했고, 안락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건 그들의 하늘과는 달리 내 하늘에는 내 아버지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내 아버지는 똑똑하다가도 띨빵한 면모를 보여주는 경상도의 74년생 가장이다. 내 아버지는 내 옆에 있다. 내 아버지는 하늘처럼 닿지 못할 만큼 높은 곳에 있지 않고, 제주에 내려올 때마다 포옹을 위해 팔을 벌려주시며 같은 땅 위에 발 붙이고 존재한다. 오늘은 땅 위에 계신 내 부모님에게 감사를 전하고 싶다. 사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