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1] 남해 한 달 살기를 위한 준비
회사를 때려치웠다.
좋아하는 분야고,
나름 진심을 쏟았다고 생각했지만
잠시 멈춰야겠다고 생각했다.
상사는 구체적인 사유를 물었다.
나는 내 인간성의 그릇이
점점 좁아지고 있음을 느끼고 있다고 이실직고했다.
믿기지 않아 하는 상사를 향해
난 허공에 둥그런 그릇을 그려보았다.
웃기는 나만의 개똥철학이라고
미리 말에 선수를 쳐놨다.
저는 사람이라면 이만한 그릇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점점 남을 이해하고 관용하는 마음의 그릇이,
나의 인간성의 파이가 좁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좀 더 솔직하게 말해줬으면 좋겠다는 상사를 향해
나는 어깨를 잠시 들썩였다.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라 그게 정말 퇴사 이유인데요?"
그리고 그 인간성은
잠시 사람과의 얼기설기 걸쳐진 관계망에서
잠시 거리를 두면 회복될 수 있음을
나는 직관적으로 알아차렸다.
나는 어떤 유행이든
모두 한 철이 지나고야 따라 하는 버릇이 있다.
일단 남들이 다 하는 건 하기 싫다는(?)
알량한 고집이기도 하고,
사람들이 많이 해본 후에는
그 후일담을 통해 장단점을 따져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단 해 보는' 사람들의 용기 뒤에 편승해
재고 따지다가
나는 얼마나 헤아려볼 수 없는 기회들을 놓쳤는가.
그럼에도 '00 한 달 살기'는 걱정 많은 나에겐
버킷리스트지만 당장 해볼 수 있는 유행이라기엔
'선뜻' 해 볼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다가,
대학원을 졸업하고 바로 취업 전선에 뛰어든 후
아니, 20대 전반을 통틀어
나 자신을 바라보는 멍 때리기는
해본 적이 없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여전히 내가 '무엇'을 위해
남해를 내려왔다고 말할 순 없지만,
'무엇'이 들어간 명제 자체가 잘못됐다는
짝꿍의 말에 힘입어
더 열심히 멍을 때려보고자 했다.
그리고 무언가를 남해에서 하지 않아도
내가 어떤 '젠장할'할 사건들이 또 온데도,
다시 되돌아갈 곳이 있는 것처럼
'아, 그럼 남해 한 달 살기하고 오지 뭐!' 하는
자신감은 얻고 오겠지-하는 생각으로
짐을 싸기 시작했다.
한 달 살기 어플로
열심히 손품을 팔아 가격을 비교하고,
퇴직금이 들어온 날 바로 한 달치 숙박비를 결제했다.
2주와 한 달 사이에서
숙박 기간을 갈등하는 내가 있었다.
2주는 딸기 우유 같을 거 같았고,
한 달은 그래도 딸기청라떼를
마셨다는 기분이 들 것 같았다.
한 달을 과감하게 선택했다.
(3달-1년 이상을 사는 분들 앞에서
할 얘기는 아니지만...)
그날은 지도앱을 켜
항공뷰의 사진만으로
채워질 수 없는 상상력으로 채우느라
밤을 지새웠다.
☑ 애착 베개
☑ 노트북
☑ 바지 2벌, 흰 티셔츠 3벌,
해수욕하고 나왔을 때 휘뚜루마뚜루 입을 원피스
☑ 인센스 스틱
☑ 그만 미뤄야 할 전공 서적들과 소설 몇 권
(나머지는 남해의 아마도 책방 외
다른 서점들에서 사면된다.)
☑ 혼자 있을 짝꿍이 다 먹지 못할 복숭아 잔뜩
등등
을 챙기면서 생활필수품과 아닌 것들은
무슨 기준으로 나누는가-
최소한의 짐이란 무엇인가-
따위에 고민하느라
떠나기 하루 전 날을 모두 탕진해 버렸다.
향으로 새로운 환경을 적응해 나가는 사람들은
인센스가 필수품일 수 있지 않나?
속옷을 입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속옷은 덧두꺼운 껍질에 지나지 않나? 와
같은 잡념들이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는 내 캐리어에 부서졌다.
그래서 짝꿍이 퇴근을 마치고 돌아온 저녁 순간 까지도
내 캐리어는 닥치는 대로
혹은 떠오르는 대로 던져진(?) 물건들로 가득 차갔다.
주위 사람들이 물어본다.
왜 결혼 전에 다녀오지,
결혼도 한 몸이 한 달 살기를 다녀오느냐
이제 30세인데,
다시 또 취업 준비를 먼저 해야 되는 거 아니냐
'무엇'을 하고 올 거냐
('왜'다녀오냐고 물어본 사람은 단 한 명에 불과했다!)
나는 멋지고 앙칼지게 대답을 못했지만
음흉하게 일단 한 달 살아보고 글로 회답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