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리개 / 이영과 연서, 그리고 이현

전생 연분 5

by 신비

연서는 붓을 내려놓았다.


먹이 번진 종이를 한참 들여다보더니,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오라버니.


이영이 책에서 눈을 들었다.


“글이 좀처럼 늘지 아니하옵니다.


연서는 괜히 소매 끝을 매만졌다.

이영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바람이 좋다 하니, 잠시 나가 보겠느냐.


연서의 눈이 환히 밝아졌다.

저잣거리는 오늘도 소란스러웠다.

좌판마다 물건이 쌓이고,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다.


연서는 앞서 걸으며 이것저것 구경하였다.

이영은 반 걸음 뒤에서 조용히 따랐다.


그러다 이영의 걸음이 멈추었다.

노리개를 파는 좌판 앞이었다.


햇빛을 받아 맑게 빛나는

노리개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값비싼 물건임이 분명하였다.


투명하면서도 단정한 빛.


이영의 시선이 그 위에 오래 머물렀다.

연서를 닮았다.


과하지 아니하되, 쉬이 눈을 떼기 어려운 빛.

그는 말없이 값을 치렀다.


오라버니?


연서가 돌아섰을 때,

이영은 이미 노리개를 들고 있었다.


너의 아름다움을 다 담지는 못하였으되…


낮은 음성.


어딘가 너를 닮았더구나.


연서의 숨이 잠시 멎었다.


네게 잘 어울릴 듯하여 고른 것이다.

받아 주겠느냐.


기쁘옵니다.


노리개를 허리에 단 연서는 한 바퀴 빙그르르 돌았다.


오라버니, 소녀가 어떠하옵니까.


이영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연서는… 연서하다.


연서는 그 말의 뜻을 묻지 않았다.

그저 기쁜 듯 웃었다.


오라버니, 엿도 사 주시옵소서.


그 순간—

이영의 시선이 멎었다.


인파 너머, 검은 도포의 사내가 서 있었다.

이현이었다.


연서의 얼굴이 굳었다.


그 무례한—


말을 잇기도 전에,

이영의 손이 연서를 뒤로 물렸다.


단이야.


예, 도련님.


아가씨를 모셔 돌아가라.


오라버니—


집에서 기다리거라.


짧고 단정하였다.

연서는 낯선 기운을 느꼈으나 더 묻지 않았다.

단이와 함께 사람들 틈으로 사라졌다.


두 사내만이 남았다.

이영이 먼저 고개를 숙였다.


형님께서 어찌하여 이곳에 계시옵니까.


이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물었다.


저 여인은 어찌 알게 되었느냐.


이영의 시선이 흔들림 없이 올라갔다.


“인연이 닿았사옵니다.


어디의 여식이더냐.


현조판서의 여식이옵니다.


짧은 정적.


이영은 숨을 고르지 않았다.


제가 마음에 둔 여인이옵니다.


담담하되 분명한 음성.


제 인생의 짝지로 여기고 있사옵니다.


이현의 눈이 미묘하게 가늘어졌다.


이영은 덧붙였다.


제 몸보다 귀히 여기는 이옵니다.


저잣거리의 소음이 아득히 멀어졌다.

이현은 동생을 오래 바라보았다.


영아.


낮게 불렀다.


하여 그 여인을 그렇게 마치 숨기듯 보내었느냐?


그리 까지 말할 줄은 몰랐다.


이영은 말했다.


가벼이 한 말이 아니옵니다.


이현은 더 묻지 않았다.


“학문은 소홀히 하지 말거라.


담담한 한 마디를 남기고 돌아섰다.

사람들 틈을 벗어나며

이현의 걸음이 느려졌다.


처음 부딪혔던 날이 떠올랐다.


왕세자인 자신에게,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손을 올리던 여인.

딱밤의 감촉이 아직도 선명하였다.


그날 이후로


이상하게도 그 얼굴이 자꾸 떠올랐다.


동그랗게 뜬 큰 눈,

따박 따박 따지던 말투,

그래서였다.


혹여 다시 마주칠 수 있을까 하여

이 저잣거리에 나선 것은.

그러나 오늘 본모습은 달랐다.


노리개를 달고 웃던 얼굴.

그리고 그 곁에 선 이영.

이영이 낯설게 느껴졌다.


단 한 번도 내 앞에서 이렇게 말을 한 적이 없었다.


가슴 깊은 곳에서

알 수 없는 기분이 스쳤다.


불쾌함인지,

혹은 다른 무엇인지.

이현은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그 여인을 다시 보고 싶었던 까닭이

단지 무례함 때문만은 아니었음을,


그는 아직 인정하지 아니하였다.



화, 목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