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잣거리 / 이현

전생 연분 4

by 신비

저잣거리는 늘 소란스러웠다.

상인의 고함과 아이들의 웃음,

말발굽 소리가 뒤엉켜 쉼 없이 흘렀다.


연서는 그 소란이 좋았다.

집 안의 단정한 공기와 달리, 이곳은 살아 있었다.


아가씨, 이쯤에서 돌아가셔야—


단이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연서는 인파 속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그때였다.


비켜라.


낮고 단호한 목소리와 함께 누군가 인파를 가르며 달려 나왔다. 연서는 피하지 못했고, 단단한 어깨와 그대로 부딪혔다.


아야—!


중심을 겨우 잡았으나 충격은 남았다.

사내는 멈추지 않았다. 사과도 없이 그대로 지나치려 했다.


“… 지금 뭐 하시는 것이옵니까?


그제야 걸음이 멈췄다.


앞을 보고 다니지 못하시오?


무례한 말투였다.


부딪힌 쪽은 그쪽이옵니다.


길 한가운데 서 있지 않았소?


연서의 눈이 가늘어졌다.


딱—

경쾌한 소리가 울렸다.

사내의 이마에 정확히 떨어진 딱밤이었다.


사과 대신이옵니다. 다음부터는 사람을 보고 달리시길.


주변이 잠시 조용해졌다.

사내는 굳은 얼굴로 연서를 바라보았다. 황당함이 스쳐 갔다.


“… 당신.”


허연서이옵니다. 그쪽은 이름도 없이 달리기만 하시는 분이 옵니까?


잠시 침묵.


“... 이현이오.”


연서는 그 이름을 곱씹지 않았다.


기억해 두겠사옵니다.


그 한마디를 남기고 등을 돌렸다.

참으로 무례한 자였다.

그날 저녁, 비가 스친 뒤라 공기가 묵직했다.

처마 끝에서 떨어진 물방울이 마루를 적셨다.


연서는 붓을 들고 앉아 있다가 문득 웃으며 말했다.


오라버니.


이영은 먹을 갈고 있었다.


왜 그러느냐.


저잣거리에서 괴이한 자를 만났사옵니다.


먹을 가는 손길이 아주 잠시 멈췄다.


괴이한 자?


예. 달려와 부딪혀 놓고도 사과 한 마디 없더이다. 되레 제게 앞을 보지 않는다 하니, 참으로 어이가 없지 않사옵니까.


연서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덧붙였다.


딱밤을 놓아주었더니 그제야 멈추더이다. 이름은 이현이라 하였사옵니다.


그 순간—

붓끝이 종이 위에서 멎었다.

먹 한 점이 떨어져, 흰 종이 위에 번졌다.


“… 이현이라.”


낮고 짧은 음성.

연서는 눈치채지 못한 채 말을 이었다.


성정도 거칠고, 말투도 고약하니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자이옵니다.


이영은 한동안 번진 먹을 바라보았다.


이현.

낯설지 않은 이름이었다.


그러나 그는 곧 생각을 접듯 고개를

아주 미세하게 저었다.


설마.

그리 경솔할 리 없다.

그는 붓을 내려놓았다.


연서야.


예, 오라버니.


낯선 자는 멀리하여라.


연서는 고개를 기울였다.


그리 까지 할 일은 아니옵니다. 그저 무례한 자였을 뿐—


그것으로 되었다.


말은 낮았으나 단단했다.


처음 보인 태도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 예의를 모르는 자는 가까이 둘 사람이 아니다.


연서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그의 눈빛이 평소보다 깊었기 때문이다.


염려하시는 것이옵니까?


이영은 곧바로 답하지 않았다.

바람이 문살을 스쳤다.


“… 내가 없을 때에는 나서지 말라.

연서의 눈이 조금 커졌다.


오라버니?


세상은 네가 보는 것보다 거칠다.


그의 시선이 천천히 연서를 향했다.


나는 온전히 너를 내 안에서 지키고자 한다.


목소리는 낮았으나 흔들림이 없었다.

연서는 순간 말을 잇지 못했다.


내가 곁에 있을 때는 무엇이든 하여도 좋다.


그는 덧붙였다.


하나 내가 보지 못하는 곳에서는, 스스로를 아껴라.


연서는 괜히 붓끝을 만지작거렸다.


그리 연약하지 않사옵니다.


안다.


짧은 대답.


그러나 그 눈빛에는 꾸짖음이 아닌, 깊은 염려가 담겨 있었다.


그러니 더 조심하라는 것이다.



연서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사옵니다, 오라버니.


이영은 다시 붓을 들었다.

그러나 번진 먹 자국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이현.

그 이름이,

이상하게도 오래 남았다.


그리고 그는 알지 못했다.


그 이름이 다시 그의 앞에 서게 될 날이

생각보다 멀지 않다는 것을.



화, 목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