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거울 7
누군가는 말을 쏟아낸다.
억울했던 일,
참았던 말,
삼켜야 했던 감정들.
그리고 그 옆에는
항상 듣는 사람이 있다.
말하는 사람은
울고 나면 조금 가벼워진다.
하지만
듣는 사람은 그 자리에 남는다.
그래서일까.
누군가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돌아오는 날이면
마치 내가
그 일을 겪은 사람처럼
마음이 무거워진다.
나는
그저 들어줬을 뿐인데.
사람들은 말한다.
“그래도 누군가는 들어줘야지.”
맞는 말이다.
누군가는 말해야 살고,
누군가는 들어줘야
세상이 조금 덜 외로워진다.
하지만
듣다 보면 가끔 이상한 순간이 있다.
왜 사람들은
이미 듣고 싶은 말을
정해 놓고 물어볼까.
그리고
그 결이 다른 말을 하면
왜 기분이 나빠질까.
위로를 해달라고 했는데
정답은 정해져 있는 것처럼.
그럼
나는 무조건 좋은 말만 해줘야 하는 걸까.
가끔 이런 경우도 있다.
누군가는 이야기를 하다가
이렇게 묻는다.
“내가 잘못한 거야?”
나는 조심해서 말을 고른다.
이야기를 듣다 보면
그 사람이 조금 급하게 말했을 수도 있고,
상대방의 입장도
완전히 틀렸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때가 있다.
그래서
조금 다른 방향의 말을 꺼낸다.
“서로 감정이 올라갔던 것 같네.”
그런데
그 순간
공기가 달라진다.
“아니, 내가 잘못한 거냐고.”
그 말에는
이미 답이 들어 있다.
어떤 사람은
누군가를 욕하며 이야기를 한다.
그 사람이 얼마나 이기적이었는지,
얼마나 무례했는지,
얼마나 상처를 줬는지.
그래서
나는 그 이야기를 조용히 듣는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데
이상한 순간이 있다.
같이 욕을 해주면
그건 또 듣기 싫어한다.
본인이 욕하는 건 괜찮은데
남이 욕하는 건 불편한 얼굴이 된다.
그때
나는 조금 멈칫하게 된다.
지금 내가 해야 하는 건
공감일까.
아니면
동의일까.
그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는 것과 그 사람이 옳다고
말해주는 건 같은 걸까.
다른 걸까.
그래서 나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사람들은
위로를 찾는 걸까.
아니면
이미 정해 둔 답을
확인받고 싶은 걸까.
어쩌면
우리는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털어놓을 때
정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이 틀리지 않았다는
확인을 받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다른 결의 말을 들으면
위로가 아니라
부정처럼 느껴지는 걸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요즘 조금 조심해서 듣는다.
맞다고 말하기 전에
틀렸다고 말하기 전에
먼저 생각해 본다.
지금
이 사람이 원하는 건
조언일까.
아니면
그저 자기 마음을 들어줄 사람일까.
그리고
가끔 이런 질문도 떠오른다.
우리는
정말 답을 듣고 싶은 걸까.
아니면
이미 알고 있는 답을
확인받고 싶은 걸까.
실컷 시간을 들여 이야기를 들어준다.
그 사람이 얼마나 속상했는지,
얼마나 억울했는지
그 감정을 따라가며 같이 앉아 있는다.
어쩌면
그 시간은 단순히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 아니라
내 감정도 함께 소비하는 시간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야기가 끝나면
가끔 이런 순간이 온다.
나는 지금
위로를 해준 걸까.
아니면
정답을 틀린 사람이 된 걸까.
어쩌면 사람들은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을 찾는 것이 아니라
자기 마음을 대신 말해줄 사람을
찾는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