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거울 8
나는
내 감정을 먼저 꺼내는 사람이 아니다.
대신 사람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준다.
대충 듣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듣는다.
그래서 기억도 잘한다.
그 사람이 어떤 말을 했는지
언제 어떤 표정으로 말했는지
그날의 분위기까지
이상할 정도로 기억에 남는다.
그런데 가끔 이상한 순간이 온다.
분명 그 사람이 했던 말인데
정작 그 사람은
본인이 그런 말을 했는지 기억하지 못할 때가 있다.
아니면 진짜 기억하지 못할 때도 있다.
그래서 어느 순간 알게 된다.
아,
이건 거짓말이구나.
하지만 또 이런 생각도 든다.
정말 거짓말일까.
아니면 기억을 다르게 만들어 버린 걸까.
사람은 가끔 자기가 했던 말을
자기에게 편한 방식으로 기억하기도 한다.
그걸 기억 조작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자기 마음을
지키는 방법이라고 해야 할까.
사람은 거짓말을 하나 하면
그 거짓말을 감추기 위해 또 다른 거짓말을 만든다.
그리고 그 거짓말들은 생각보다 허술하다.
출근이 어렵단다.
이유
한 달 전에는 아버지 생신이라고 했다.
그리고 출근하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 또
아버지 생신이라고 한다.
지난달, 아버지 생신 아니었어?
아 그때는 양력이고
오늘은 음력 생신이라고.
그럴 수도 있다.
두 번 생신잔치를 할 수 있지.
그래서 그 거짓말은 그냥 넘길 수도 있다.
세상에는 사소한 거짓말도 있으니까.
“지금 가는 중이야.”
사실은 이제 막 집에서 나왔고
“곧 연락할게.”
사실은 연락할 생각이 없을 수도 있고
“괜찮아.”
사실은 전혀 괜찮지 않을 수도 있다.
이런 말들은
어쩌면 거짓말이라기보다
사람 사이의 작은 완충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그 거짓말을 알고도 모른 척 넘기기도 한다.
하지만 모든 거짓말이
그렇게 가볍게 넘어가지는 않는다.
특히
연인 사이의 거짓말은 조금 다르다.
“어디야?”
“나 이제 자려고.”
그런데 우연히 친구에게 이런 말을 듣는다.
“네 여자친구 거기 있던데?”
그 순간 마음이 묘하게 불편해진다.
그 거짓말이 큰 사건이라서가 아니라
왜 굳이 나에게 그 말을 했을까.
왜 그 상황을 숨기려고 했을까.
왜 솔직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거짓말을 하고 나면
그 사람들은 마음이 편할까.
정말로
그 말이 지나가면 아무렇지 않을까.
아니면
혹시 들통나면 어떡하지.
혹시 기억하고 있으면 어떡하지.
그런 생각이
마음 한쪽에 남아 있지는 않을까.
거짓말은 하는 순간보다
그 이후의 시간이 더 길다.
그래서 어쩌면 거짓말은
듣는 사람보다 말한 사람이
더 오래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떤 거짓말은 사소해 보이지만
어떤 거짓말은 관계를 조금씩
금 가게 만든다.
믿고 있던 말을 부정하는 거짓말.
숨기기 위해 뒤늦게 드러나는 거짓말.
그리고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책임을 피하기 위해 만들어진 거짓말.
그런 거짓말은 가볍지 않다.
어떤 거짓말은 관계를 무너뜨리고
어떤 거짓말은 사람의 신뢰를
한 번에 무너뜨린다.
그래서 세상에는
가볍게 넘길 수 있는 거짓말과
절대 가볍게 넘기지 못하는 거짓말이
함께 존재한다.
그리고 가끔
거짓말과 비밀의 경계도 헷갈릴 때가 있다.
예를 들어
엄마 아빠가 평생 친구였다는 걸,
내 아이가 슬며시 모른 척할 때쯤.
사춘기에 들어서면서 점점 말이 줄어든다.
비밀이 생긴다.
그리고 거짓말도 늘어난다.
이건 거짓말일까.
아니면
그 아이가 처음으로
자기만의 세상을 만들고 있다는 신호일까.
모든 걸 말하던 시절에서
모든 걸 말하지 않는 시절로
천천히 넘어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가끔 생각한다.
거짓말은
항상 나쁜 것일까.
아니면
사람과 사람 사이에
생기는 거리의 모양일까.
그리고 또 하나.
세상에는
용서할 수 있는 거짓말도 있지만
어쩌면
용서할 수 없는 거짓말도 분명 존재한다.
그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다.
그래서 나는 가끔 궁금해진다.
우리는 왜
솔직해질 수 있는 순간에도
거짓말을 선택하게 될까.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을까.
진실을 알게 되면
얼마나 깊은 상처가 되는지
정말 몰랐을까.
거짓말이 아니어도 되는 순간에도
거짓말을 하는 이유는
어쩌면 스스로 만들어 놓은
자신의 모습을 지키기 위해서였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자신이 만든 이미지는
정말 자신일까?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만든 또 다른 모습일까.
아니면
스스로도 믿어버린 하나의 거짓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