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 연분 14
연서를 돌려보낸 뒤에도
이영은 한동안 그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밤은 깊었고
달빛은 조용히 마당 위에 내려앉아 있었다.
그러나 그의 눈빛은
조금도 고요하지 않았다.
잠시 뒤
어둠 속에서 사내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영의 사람이었다.
사내가 고개를 깊이 숙였다.
“영대군마마.”
이영의 목소리가 낮게 떨어졌다.
짧은 말이었다.
사내가 고개를 들지 않은 채 기다렸다.
이영이 다시 입을 열었다.
잠시 정적.
사내가 깊이 머리를 숙였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이영의 시선이 어둠 속으로 가라앉았다.
“…그리고.”
그의 목소리가 더 낮아졌다.
사내가 다시 고개를 숙였다.
“예, 마마.”
잠시 뒤
사내의 그림자가 조용히 사라졌다.
그의 손이 서서히 쥐어졌다.
“…연서는.”
낮은 목소리였다.
잠시 후
그의 눈빛이 완전히 식어갔다.
“…감히.”
짧은 침묵.
“…배후가 누구든.”
“…무엇이 이 일을 만든 것이든.”
그날 밤.
도성 어딘가에서는
또 다른 움직임이 시작되고 있었다.
도성 밖.
깊은 산 아래 숨겨진 장원.
검은 흑립을 눌러쓴 회주가
조용히 장원 안으로 들어섰다.
마당의 공기가
순간 미묘하게 가라앉았다.
검을 맞대고 있던 사내들까지
자연스레 움직임을 멈추었다.
조장이 급히 걸음을 옮겨
그 앞에 무릎을 꿇었다.
“회주님을 뵙습니다.”
잠시 정적.
면사 뒤에서
낮은 목소리가 떨어졌다.
조장이 고개를 깊이 숙였다.
“그 여인을 납치하는 데에는 성공하였으나…”
잠시 숨을 삼켰다.
“…영대군이 나타났습니다.”
짧은 침묵.
“그 여인을 구해갔습니다.”
조장의 목소리가 더 낮아졌다.
“…송구합니다.”
잠시 공기가 멎었다.
면사 뒤의 시선이 조장을 향해 내려앉았다.
낮은 물음이었다.
조장이 대답했다.
잠시 뒤
회주의 목소리가 다시 떨어졌다.
“아니옵니다.”
잠시 정적.
그리고
면사 뒤에서 아주 낮은 웃음이 흘러나왔다.
잠시 말을 멈추었다.
조장의 등이 조금 더 굽어졌다.
회주가 천천히 물었다.
조장이 대답했다.
“현조판서의 외동딸.”
“허연서 아가씨이옵니다.”
잠시 침묵.
면사 뒤의 시선이 가늘어졌다.
잠시 후
회주의 목소리가 다시 흘러나왔다.
“그곳은 영대군이 글공부를 하러 간다 들었는데.”
조장이 고개를 숙였다.
“예.”
잠시 정적.
그리고 회주가 천천히 말했다.
“자신의 여식을 궁에 얽어 넣을 위인이 아니다.”
잠시 숨이 고였다.
면사 뒤에서
낮은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렇다면.”
장원의 공기가 조용히 흔들렸다.
회주의 목소리가 다시 낮게 떨어졌다.
“세자와.”
“영대군.”
“당돌한 계집이구나.”
잠시 멈추었다.
면사 뒤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흘러내렸다.
회주의 목소리가 다시 떨어졌다.
“…서신 한 통을 써 줄 터이니.”
“도성으로 가라.”
잠시 후
조장의 어깨가 미묘하게 굳었다.
정보살.
도성의 어둠 속에서 이름을 아는 자가 드문
기이한 무속인이었다.
잠시 정적.
그리고
회주의 목소리가 차갑게 내려앉았다.
장원의 밤공기가
조용히 움직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