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거울 11
사람은 이상하게도
사과보다 변명을 먼저 한다.
누군가에게 이런 말을 들으면
대부분의 대화는 이렇게 시작된다.
“그때 네 말 때문에 조금 상처받았어.”
그 말을 듣는 순간
사람은 잠시 멈춘다.
그리고 마음속에서
아주 짧은 생각 하나가 먼저 떠오른다.
‘내가 그런 사람이 아닌데.’
그래서 사람은
상대의 마음보다 먼저 자신을 설명하게 된다.
그래서 대화는 대부분 이렇게 흘러간다.
“그건 그런 뜻이 아니었어.”
“오해야.”
“나는 그렇게 말한 적 없어.”
“그건 네가 예민했던 거 아니야?”
사과보다 먼저 나오는 말은 대부분 설명이다.
그리고 그 설명은 결국
자신을 지키기 위한 말이 된다.
생각해 보면 사과는 조금 이상한 말이다.
사과는 내가 잘못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말이다.
그리고 그 순간 사람은 잠깐
자기 자신을 불편하게 바라봐야 한다.
그래서 사과는 생각보다 어렵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좋은 사람으로 믿으며 살아간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너 때문에 상처받았다”는 말을 들으면
그 사실보다 먼저 자기 이미지가 흔들린다.
그래서 사람은
사과보다 먼저 자신을 설명하게 된다.
그래서 이런 일이 생긴다.
누군가는 그 말을 기다리고 있다.
“그게 아니라…”
“내가 말하려던 건…”
“그 상황이…”
사과 대신 이유가 먼저 나온다.
그런데 사과보다 더 이상한 순간도 있다.
어렵게 꺼낸 말이었다.
그 사람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주고 싶어서.
그래서 망설이다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낸다.
“그때 왜 다른 사람에게 내 욕을 했던 거야?”
잠시 후 돌아오는 말.
그 말은 분명 사과였다.
이유도 변명도 없는.
그 얼굴에는
전혀 미안한 기색이 없었다.
영혼 없이 귀찮다는 듯 툭 던져진 말.
그래서 다시 한번 말한다.
“아니, 그게 아니라 이유가 뭐였어?”
그러면 돌아오는 말은
그 순간
사과라는 말은 남았지만 사과는 사라져 버린다.
사람은
자신의 잘못은 설명하고 타인의 잘못은 판단한다.
그래서 관계 속에서는 늘 같은 장면이 반복된다.
누군가는 이해를 설명하고
누군가는 상처를 기억한다.
그래서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무엇이 그를
잘못하고도 이렇게 당당하게 만들었을까.
무엇이 그를
사과를 하고도 미안하지 않게 만들었을까.
어쩌면
사과는 말이 아니라 태도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어떤 사과는
한 마디로 마음이 풀리고
어떤 사과는
수십 번을 들어도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그래서 어떤 관계는
큰 사건 때문에 무너지지 않는다.
사과할 수 있었던 순간들.
하지만 그 순간마다 마음이 없었던 사과들.
그 작은 순간들이 조금씩 쌓인다.
그래서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관계를 무너뜨리는 것은
큰 잘못이 아니라 사과하지 않은 순간들과
마음이 없는 사과들 인지도 모른다.
어떤 사과는 관계를 살리고
어떤 사과는 관계를 끝낸다.
어쩌면 사람이 관계를 지키는 방법은
대단한 말이 아니라 진심이 담긴
짧은 말 하나인지도 모른다.
변명은
나를 지키는 말이고
사과는
관계를 지키는 말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