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거울 14
좋은 사람이 되려다 만만한 사람이 되는 순간
처음에는 그저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회사에서도, 친구 사이에서도, 가족 앞에서도
괜히 분위기 흐리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고,
굳이 말 꺼내서 불편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고,
내가 조금 더 이해하면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한 번 더 들어주고 한 번 더 맞춰주고 한 번 더 넘겼다. 그게 좋은 사람이라고 믿었다.
그날도 그랬다.
내 일이 아니었는데, 누군가 부탁을 했고 잠깐이면 된다고 했다. 그래서 그냥 했다.
그게 시작이었다.
그 다음부터는 설명이 필요 없어졌다.
부탁이 아니라 당연한 일이 되었고
거절할 타이밍은 점점 사라졌다.
그래서 어느 순간 이상한 일이 생긴다.
나는 그대로인데 사람들이 나를 대하는 방식이 달라진다.
가볍게 부탁하고 쉽게 넘기고 편하게 대한다.
그때 처음 느낀다.
이게 편함이 아니라 가벼움이라는 걸.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을 뿐인데
어느 순간 만만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이건 꽤 중요한 차이다.
좋은 사람은 존중받지만
만만한 사람은 편하게 소비된다.
그래서 관계의 온도도 다르다.
좋은 사람에게는
선을 지키고 만만한 사람에게는 선을 넘는다.
그래서 더 헷갈린다.
나는 똑같이 행동했는데 왜 결과는 다르게 나오는지.
가만히 보면 문제는 행동이 아니라 기준이다.
나는 계속 내 기준을 낮추고 있었고
사람들은 그 기준에 맞춰 나를 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관계는 상대가 결정하는 게 아니라
내가 어디까지 허용했는지로 결정된다.
이게 핵심이다.
사람은 좋은 사람을 좋아하지만
편한 사람은 더 쉽게 사용한다.
그래서 계속 맞춰주면
고마운 사람이 되는 게 아니라 편한 사람이 된다.
그리고 편해지는 순간
존중은 조금씩 사라진다.
존중은 부탁에서 시작되지만
당연함이 되는 순간 사라진다.
그래서 부탁은 늘어나고 배려는 줄어든다.
이건 관계의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그래서 더 조심해야 한다.
사람은 선을 한 번 넘으면
다음에는 더 쉽게 넘는다.
그래서 한 번의 양보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기준이 되는 순간 계속 반복된다.
그래서 결국
관계는 편해지는 게 아니라 기울어진다.
한쪽은 계속 맞추고 한쪽은 계속 기대한다.
그래서 균형이 무너진다.
이 상태가 오래되면
사람은 두 가지 중 하나가 된다.
지치거나 아무렇지 않게 되거나.
둘 다 건강한 상태는 아니다.
그래서 이제는 조금 다르게 보려고 한다.
좋은 사람이 되는 것보다 내가 불편해지지 않는 선을 지키는 사람이 되려고 한다.
모든 걸 이해하는 사람이 아니라 지킬 건 지키는 사람이 되려고 한다.
말을 잘 들어주는 사람이 아니라
필요할 때는 멈출 수 있는 사람이 되려고 한다.
그래야 관계도 유지되고 나도 남는다.
사람은 착해서 무너지는 게 아니라
선을 지키지 않아서 무너진다.
그리고 더 정확하게 말하면
사람은 상대를 너무 배려해서 무너지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을 배려하지 않아서 무너진다.
그래서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면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되려고 하지 말고
나를 지키면서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좋은 사람으로 남으려다,
나를 잃으면 그건 관계가 아니라 소모다.
그래야 관계도 지키고 나도 잃지 않는다.
그게
만만해지지 않는 유일한 방법이다.
나는 다 주고 있었는데,
그 관계는 나를 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