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비전의 부름

전생 연분 23

by 신비

이영은 대비전으로 발을 옮겼고,


대비전은 고요하였다.
대전과는 달랐다.


같이 고요하였으되 이곳의 고요는 사람을 누르지 아니하였다.


조용히 숨을 고르게 만드는 부드러운 고요였다.
향은 은은하게 퍼져 있었고,
촛불 또한 눈에 거슬리지 않게 낮게 깔려 있었다.


문 앞에 선 이영이 걸음을 멈추었다.


고개를 깊이 숙였다.
숨을 들이키지도, 내쉬지도 않는 듯—
그저 서 있었다.


그때
문 앞에 서 있던 상궁이 안으로 낮게 아뢰었다.


대왕대비마마, 영대군 마마께서 드셨사옵니다.


짧고 단정한 음성이었다.


이내


…뭐라?


아주 낮게 되물었다.

곧이어


우리 영대군이 왔다고?


숨이 얕게 스쳤다.
부드러운 웃음이 실렸다.


어서 들라하여라.


문이 열렸다.
이영이 안으로 들었다.
발걸음은 조용하였고, 흔들림이 없었다.


대비는 이미 그를 보고 있었다.
단정하였다.
흐트러짐이 없었다.
그 미소는 지나치게도 부드러웠다.


이영이 멈추었다.
고개를 숙였다.


대비마마를 뵈옵니다.


…이 할미가,

작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얼마나 너를 보고 싶었는 줄 아느냐.

어찌 이리 얼굴 보기가 어려운 게야.


송구하옵니다.


짧았다.
대비가 손을 내밀었다.


이리 오너라.


그리고—


할미 옆으로 오너라.


이영이 다가섰다.
멈추지 않았다.
대비의 곁에 섰다.
가까운 거리였다.


대비의 손이 이영의 손을 잡았다.
따뜻하였다.

그 손이 천천히 올라가 이영의 얼굴에 닿았다.
거칠지 않게 조심스럽게, 볼을 쓸었다.


말은 없었다.
묻지 않았다.

그저—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오래도록.


이영은 움직이지 아니하였다.
그 손길을 피하지도 않았고,
시선을 거두지도 않았다.


잠시—
그 고요가 흐른 뒤, 이영이 입을 열었다.


할마마마.


소자,


숨이 얕게 고였다가—
가라앉았다.



대비마마와 중전마마께,
아뢰고 허락을 받아야 할 일이 있어,
이리 찾아왔사옵니다.



그 말이 내려앉았다.
대비는 바로 답하지 아니하였다.


그저—
미소를 거두지 않은 채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내


그래.


부드럽게 받았다.


이상궁.


낮은 음성이었다.



중궁전으로 가,
중전을 들라 하라.


짧았다.
그 말 하나로 자리는 달라졌다.


이어서


우리 강아지가,


엷게 웃으며 말했다.


오랜만에 들었으니,
그냥 세워둘 수는 없지 않으냐.

다과를 내오너라. 따뜻한 것으로.


말은 다정하였다.

허나 그 온기 아래에서도
자리는 가벼워지지 아니하였다.


그저
기다리고 있었다.



중궁전.


고요하였다.
대비전과 다르지 않았다.
같이 정갈하였고, 같이 흐트러짐이 없었다.


허나
이곳의 고요는 더 단단하였다.
중전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때


중전마마.
대비전 이상궁 마마님께서 오셨나이다.


들라하여라.


문이 열렸다.
이상궁이 들었다.


중전마마를 뵈옵니다.


무슨 일이냐.


대비마마께서,
중전마마를 들라 하셨사옵니다.


잠시—


아침 문안을 다녀온 터에,
어찌하여 다시 들라하시는 것이냐.


영대군 마마께서, 대비전에 드셨나이다.


정적.


어찌하여 대비전에 영대군이?


짧았다.
그 말 하나로 자리는 달라졌다.

이어서 그다음


당장,
대비전에 들 채비를 하라.


그 한마디로 움직임은 시작되었다.




중궁전 한켠. 눈에 띄지 않는 자리에서,
나인 하나가 움직였다.

빠르게 소리 없이.

경빈의 처소로 향하였다.
문을 넘었다.


마마.

중궁전 윤나인이옵니다.


무슨 일이냐.



영대군 마마께서, 대비전에 드셨사온데
중전마마께 들라하셨다 합니다.


잠시



뭐라?

영대군이 대비전에 들었다고?


숨이 가라앉았다.


그런데, 중전만 부르셨단 말이냐.



되묻는 말이었으나,
확인하는 말이 아니었다.


영대군이,
도대체 무슨 꿍꿍이더냐.



그 말이 조용히 흘렀다.
허나 그 안에는 날이 서 있었다.


그리고
아주 미세하게 불편함이 섞여 있었다.



그때
대비전 밖에서 발걸음이 멈추었다.


문 앞에 기척이 섰다.


이내
낮은 음성이 울렸다.



대왕대비마마.

중전마마 드셨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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