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으로 남은 3주년

우리 동네 보안관 12

by 신비

어느덧 새로운 사람들과 함께

사계절을 지나고 있었습니다.


처음엔 어색한 얼굴들이었고, 이름보다 오토바이와 헬멧이 먼저 보이던 사람들이었는데,


비를 함께 맞고,

여름 더위를 함께 견디고,

가을바람을 함께 지나

겨울 찬 손을 비벼가며 버티다 보니


어느새

회사 설립 1주년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박 사장은

그 1주년을 그냥 넘기고 싶지 않았습니다.


회사 돌잔치를

한번 해보고 싶었습니다.


사람이 태어나 첫돌을 챙기듯,

아무것도 없던 자리에서 버텨서 만들어낸 이 회사의 첫해도 기념해주고 싶었습니다.


회식을 자주 하긴 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은 회식과는 다른 기념 파티였습니다.


그냥 밥 먹고 헤어지는 자리가 아니라,

같이 버텨온 시간을 한 번쯤 돌아보고 싶은 날이었습니다.


그래서 박 사장은

미리 가맹점 사장님들께 양해를 구합니다.


사장님들,

4월 12일은 회사가 처음 만들어진 날인데

곧 1주년입니다.


모든 라이더들과 함께하고 싶습니다.


이날 하루만큼만

조기 마감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그 문자를 보내고도

박 사장은 쉽게 핸드폰을 내려놓지 못했습니다.


그들에게도 그날 장사는 생계였습니다.

반대하면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집니다.


문자를 본 늦게까지 마감하던 가게들에서

오히려 먼저 답이 옵니다.


당연하죠~

더 일찍 마감하셔도 됩니다.


그 문장을 읽는 순간

박 사장은 괜히 가슴 안이 뜨뜻해졌습니다.


그리고 어떤 사장님은 가게를 편히 쓰라고

대관을 해주셨습니다.


또 어떤 사장님들은

음식을 만들어 보내주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날만큼 박 사장은 느꼈습니다.


단 하루의 휴무도 없이 달려온 시간이

헛되지 않았구나.


사람은 돈만 남기고 사는 게 아니라

마음을 남기고 살기도 하는구나.


가슴 안에서 무언가 뭉클하고 따뜻한 것이

천천히 차오르는 걸 느꼈습니다.



그렇게 1주년이 되었습니다.

박사장의 아내는 떡을 만들어 포장 후

감사 메시지와 함께 가맹점에게 돌립니다.


그리고 파티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이상한 일이 벌어집니다.


라이더들이

하나둘씩 모이기 시작하고,

많이 본 얼굴들도 하나둘 늘어났습니다.


가맹점 사장님들의 참석.


인스타에는 조기 마감 후


저희는 오늘 여기서 놀고먹고 하렵니다.


하는 축하 글을 올렸었고,


누가 초대한 것도 아닌데

하나둘씩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심지어 가게 영업을 종료하고

직접 오신 사장님들도 있었습니다.


이상하지 않은가요.


라이더들도 가맹점 사장님들이

충분히 불편할 수 있는 관계고,


가맹점 사장님들 역시

박 사장과 따로 개인적인 자리가 아닌데

라이더들과 한 공간에 있는 게

어색할 수도 있는 관계입니다.


그런데 그날만큼은 달랐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경계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회사 생일 축하합니다” 하며

케이크를 사 들고 오셨고,

음식을 직접 만들어 오시기도 했습니다.


어쩌면 그건 박 사장이

그동안 쌓아온 힘이었을지도 모릅니다.


항상 친절은 기본이었고,

항상 웃는 얼굴로 사람을 대했고,

항상 먼저 이해하려 했고,

사람을 편하게 만드는 말투를 가졌으니까요.



선입견이 있던 가맹점 사장님들도

조금씩 변해 있었습니다.


예전 같았으면

그저 기사님, 사장님으로만 불렸을 관계가

그날은 훨씬 더 가까운 거리에서 웃고 있었습니다.


장난을 걸어오고,

친근한 말투가 오가고,

가맹점 사장님들과 라이더들 사이에

자연스러운 웃음이 생기고,


박 사장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흐뭇했습니다.


그렇게

아주 많은 사람들이 몰렸습니다.


가게를 대관해 주겠다고 하셨던

털보 사장님은 준비를 넘치게 해 두셨습니다.


그리고

아주 센스 있게 조용히 생일축하합니다 노래를 틀어주셨습니다.


그 순간

모두가 하나가 되어

손뼉을 치며 따라 불렀습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누군가는

박자도 놓쳤고,

누군가는

웃으면서 크게 불렀고,

누군가는

괜히 더 열심히 박수를 쳤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노래가 장난처럼 들리지 않았습니다.


정말

한 회사를, 한 시간을,

함께 버텨온 사람들의 진심처럼 들렸습니다.


케이크가 나왔고,

모두가 박 사장을 보며 불을 끄라고 손짓합니다.


짝짝짝

이어지는 박수 소리와

여기저기서 터지는 함성.


영원하자~!


그 소리가 생각보다 크게

박 사장 가슴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그 순간

박 사장 마음속에서는

뜨겁고 울컥한 감동이 올라왔습니다.


회사를 만든다는 건

간판을 다는 일이 아니라,

사람을 얻는 일이라는 걸

그는 그날 다시 느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털보 사장님은 메뉴에는 없는 메뉴들을

어마무시한 종류와 양으로 힘차게 내오셨습니다.


남기면 죽는다.


가볍고 조용한 협박 같은 농담을 던지며

웃고 계셨고, 사람들은 또 한 번 배를 잡고 웃었습니다.


모두가 소주를 따르고,

누군가는 맥주를 열고,

또 누군가는 잔을 돌리며

박 사장에게 건배사를 요구합니다.


대표님, 한 말씀하셔야죠.


박 사장은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모두들 고맙습니다.


그 한마디를 하는데 이미 눈가는 빨개져

촉촉이 젖어들고 있었습니다.


제가 더 노력하겠습니다.


못난 대표 믿고 따라와 줘서 너무 고맙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짧은 말이었지만

그 안에는 지나온 시간들이 다 들어 있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라이더들은 잠시 지나간 기억들을 되짚습니다.


울고 웃고,

넘어지고 일어나고,

가슴 아픈 일도 있었고,

기쁜 일도 지나갔습니다.


그 안에 서로가 있었습니다.


누군가는 힘들 때 기대었고,

누군가는 무너질 때 붙잡아줬고,

누군가는 괜히 더 웃겨서 하루를 버티게 했습니다.


그렇게 서로 “영원하자를 외치며

잔을 부딪힙니다.


짠.

짠.


여기저기서 유리 부딪히는 소리가 이어지고,

그날의 말들은 평소보다 더 따뜻했습니다.

많은 이야기들이 오갑니다.


가맹점 사장님들도

완전히 어우러진 분위기입니다.


한 병, 두 병

늘어나는 소주병과 맥주병은

어느새 탑처럼 쌓이고 있었습니다.


술을 못 먹는 사람들도

그날은 술이 아니라 분위기에 취하고,

사람에 취해 텐션이 올라갑니다.


그리고

기념사진을 찍으려는데

가맹점 사장님들이 말합니다.


기사님은 회사 바람막이 입었잖아.

우리는 조끼라도 빌려줘.

나도 여기 식구 할래.


그 말을 듣고 여럿 기사들이

깔깔깔 웃으며 조끼를 벗어 건네줍니다.


그렇게 조끼를 착장 한 후

모두 함께 사진을 찍습니다.


누군가는 엄지를 치켜들었고,

누군가는 어깨동무를 했고,

누군가는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었고,

누군가는 환하게 웃었습니다.


찰칵, 찰칵.


그 사진은 그날의 공기까지 담아

기념이 되었습니다.


참 신기하지요.


가맹점 사장님들 역시도

박 사장을 알기 전까지는

배달기사는 기사지,

그렇지 뭐,

하는 시선을 갖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모든 시선은 조금씩 바뀌고 있었습니다.


사람을 자꾸 보다 보면

직업보다 얼굴이 먼저 보이고,

얼굴을 자꾸 보다 보면

사정보다 마음이 먼저 보이기도 하니까요.


그날은

가맹점 사장님도 라이더도 없었습니다.


형, 누나, 동생, 친구로 통했습니다.

그날 오간 말들은 노랫소리처럼

아름답고 훈훈한 멜로디들로

가득했습니다.


누군가는 크게 웃었고,

누군가는 괜히 눈가가 촉촉해졌고,

누군가는 취한 척 더 큰 소리로 떠들었지만

다들 알고 있었을 겁니다.


이 자리가

참 귀하다는 걸.


그렇게

회사는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고,

3년이 되었습니다.


시간은

그냥 흐른 것이 아니라

사람들 사이에 쌓였습니다.


처음엔

낯설고 어색했던 사람들이,


이제는

서로의 안부를 먼저 묻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여전히 반가운 얼굴들은 그대로입니다.


그 자리에 있다는 것만으로

반갑고 든든한 사람들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박 사장은

또 이벤트를 준비합니다.


스크래치 복권에 현금과 엔진오일 등

다양한 상품을 넣어두고, 꽝도 있지만

꽝의 웃긴 메시지까지 정성껏 준비했습니다.


웃겨야 더 기억에 남는다는 걸

그도 알고 있었던 겁니다.


점점

그들은 더 찐해져 있었고,


박 사장은

조금 더 그들을 들여다보게 되었고,

서로는 가족이 되어 있었습니다.


피가 섞이지 않아도

시간이 섞이면 가족 같은 사이가 되기도 합니다.


함께 버틴 시간은

그만큼 깊은 흔적을 남기니까요.


그리고

오늘은 그들의 3주년입니다.


처음에는

그저 회사를 만든 줄 알았는데,


돌아보니

사람을 만든 시간이었고,

관계를 만든 시간이었고,

서로의 하루를 지켜준 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의 3주년은 숫자 하나가 아니라

그들이 함께 버텨온 시간의 이름이었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박 사장이 만든 것은

회사가 아니었는지도 모릅니다.


처음에는

하루를 버티기 위해 만들어진 자리였을 겁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곳에는

일만 하는 사람들이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힘든 날이면

서로의 얼굴을 먼저 살피는 사람들이 남았고,

기쁜 일이 있으면

자기 일처럼 더 크게 웃어주는 사람들이 남았고,

누군가 넘어지면

같이 손을 내밀어 일으키는 사람들이 남았습니다.


그건 그냥 회사에서는

쉽게 생기지 않는 풍경이었습니다.


그날 모인 사람들은

박 사장의 회사를 축하하러 온 것이 아니라,

자기가 함께 지나온 시간을

축하하러 온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날의 박수는 한 사람을 향한 박수가 아니었습니다.


버텨낸 시간과, 쌓인 신뢰와,

끝내 사람으로 남은 관계를 향한 박수였습니다.


세상에는

일로 만나 일로 끝나는 관계가 많습니다.


그런데 어떤 관계는 일로 시작했지만

사람으로 남습니다.


그리고 그런 관계는

생각보다 드물고, 생각보다 귀합니다.


누군가는

회사를 키우며 숫자를 남기지만,


누군가는 사람을 남깁니다.


그리고 결국 오래 기억되는 건

잘된 사업보다 좋았던 사람들입니다.


그날의 사진 속에는

대표도, 기사도, 사장님도 없었습니다.


그저

같이 버텨온 사람들만 있었습니다.


그래서

회사의 생일이 아니라, 사람들이 서로에게

완전히 익숙해진 날입니다.


마지막

사람은 오래 같이 있었다고 가족이 되는 게 아닙니다.


함께 웃고,

함께 버티고,

함께 기억될 때


비로소

가족 같은 사이가 됩니다.


그리고

어떤 관계는

피보다 느리게 만들어지지만,

한 번 만들어지면

그 무엇보다 오래갑니다.


회사는

건물로 남는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 남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회사를 키운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서로를 남겼습니다.


회사를 키운다는 건

사람을 모으는 일이 아니라

마음을 남기는 일입니다.


대표님,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건

결국, 함께 버텨준 여러분 덕분입니다.

그래서 오늘이 더 의미 있습니다.


그리고


오래 남는 사람들은

결국 좋은 기억이 많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동네 보안관 OST"




토,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