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보안관 11
어떤 이의 이야기입니다. 5
배달을 하고 있던 그날이었습니다.
아주 일을 잘하던 직원 하나가 있었습니다.
배달업계에서 에이스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그는 정말 일을 잘했습니다.
그가 처음부터 잘했던 것은 아닙니다.
그는 원래 승부욕이 넘치는 사람이었고,
욕심도 많았습니다.
한 번 시작하면 끝을 봐야 했고,
누가 더 잘하느냐에 늘 마음이 먼저
반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이 일에 뛰어들었고,
제일 일을 잘하는 박 사장에게 손을 내밀었습니다.
그렇게 박 사장과 그는 일로 만나
현실에서도 둘도 없는 형과 동생이 됩니다.
붙어 있으면 티격태격했고,
말로는 맨날 으르렁대는 것 같아도
막상 떨어져 있으면
허전한,
딱
톰과 제리라는 말이 어울리는 그런 사이였습니다.
말로는 서로 놀리기도 하고,
장난도 거칠었지만
누가 봐도 알 수 있었습니다.
둘은 서로를 많이 아끼고 있다는 것을.
형은 동생을 챙겼고, 동생은 그런 형을 믿고 따랐습니다.
그는 하루 온종일
정말 누구보다 성실하게 일했습니다.
콜이 뜨면 누구보다 빨리 손이 반응했고,
한 건이라도 더 타려 했고,
한 푼이라도 더 벌려했습니다.
남들 쉬는 시간에도
그는 핸드폰을 보고 있었고,
남들 한숨 돌릴 때도
그는 또 움직일 준비를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두 아이와 아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가정을 위해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배달하는 날에는 배달로 버티고,
배달을 쉬는 날에는 에어컨 청소까지 하며
정말 쉴 틈 없이 살았습니다.
몸이 편한 날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래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누구보다 많이 벌고 싶었고,
누구보다 성실하게 살고 싶었고,
무엇보다 아내와 아이들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깎아내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에게 일은
그저 돈벌이가 아니었습니다.
가족을 지키는 일이었습니다.
오늘 하루를 버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 내일을 붙잡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힘든 티를 잘 내지 않았습니다.
힘든 날에도 웃었고,
지친 날에도 움직였고,
서러운 날에도 다시 오토바이에 올랐습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그의 낯빛이 어두워집니다.
밥돌이였던 그가 밥도 제대로
먹는 둥 마는 둥 합니다.
하루 종일 재잘대던 그가 말이 줄어들고,
일에 집중을 못 합니다.
며칠째 같은 일들이 반복됩니다.
평소라면 손가락이 먼저
전투 모드가 되어 모든 콜을 다 잡아 타겠다는
불굴의 의지로 핸드폰을 붙잡고 있던 사람인데,
그날의 그는 콜을 잡지도 않습니다.
그냥 계속 핸드폰만
만지작, 만지작거리다가
전화를 받으러 밖으로 나갑니다.
그리고 결국 회사 밖에서 소리를 지릅니다.
안에 있던 사람들까지 조용해질 만큼,
참고 참다가 끝내 터진 사람의 목소리였습니다.
들어온 그를 보며 박 사장이 묻습니다.
무슨 일 있느냐고.
그는
잠깐 고개를 숙였다가 말합니다.
“아 형 집에 일이 좀 있어.”
“제수씨랑?”
“응.”
“무슨 일인데. 뭐 때문에 그래?”
그는 쉽게 말을 잇지 못합니다.
그러다 겨우 꺼냅니다.
“아 그게 배달일 하지 말랜다.”
그는 원래 덤프트럭 기사였습니다.
그리고 그 일로 인해 빚을 많이
지게 된 상태였습니다.
두 아이와 아내,
그리고 그 빚을 감당하려고
결국 배달을 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좋아서 시작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멋있어 보여서도 아니었고,
재미있어서도 아니었습니다.
살아야 했고, 먹여야 했고,
갚아야 했기 때문에
오토바이에 오른 것이었습니다.
당신 일해도 괜찮다고, 아이들과 캠핑을 가고,
매일 돈만 많이 벌어오라던 아내였습니다.
그런데 그 아내가 이제 와서
일을 하지 말라고 한 것입니다.
이유는 단순했습니다.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이 부족하다.
그리고 부부 모임을 가기가 어렵다.
먹고살려면 무슨 일을 해도
어쩔 수 없던 상황이었습니다.
누군가는 직장을 다니고,
누군가는 장사를 하고,
누군가는 몸으로 버팁니다.
그에게는 그게 배달이었을 뿐입니다.
그런데 아내에게는 다른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나는 그냥 당신이 회사 다니면 좋겠어.”
“배달 같은 거 안 했으면 좋겠어.”
“주변 지인들 보기에도 그렇고 싫다고.”
그 남자는 그 자리에서 무너집니다.
남의 시선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손님이 무시해서도 아니었고,
길 위에서 욕을 먹어서도 아니었습니다.
자신이 하는 일을 모르는 남이 아니라,
가장 가까운 사람,
가장 내 편이어야 할 사람,
아내가 하찮게 보고 부끄러워하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남이 던진 말에는 어떻게든 버팁니다.
욕도 견디고, 무시도 견디고,
억울함도 삼킵니다.
그런데 가장 가까운 사람이
내 삶을 부끄러워할 때,
그때는 버티는 방식이 달라집니다.
그건 화가 나는 게 아니라,
안에서부터 조용히 무너지는 일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묻습니다.
“그럼 우리 생활은?”
아내는 말합니다.
“그냥 회사 다니고 투잡 구하면 되잖아.”
참 단순한 말이었습니다.
돈이란 건 쓸 때는 모르지만
버는 건 정말 힘이 듭니다.
매달 꼭 맞춰야 하는 돈이 있고,
당장 이번 달을 넘겨야 하는 사람이 있고,
오늘 더 벌어야
내일이 이어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말은 돈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겁게 벌리는지 모르는 사람만
쉽게 할 수 있는 말처럼 들렸습니다.
밖에 나가 조금 돌아다니다 오면
그 정도는 벌리는 줄 알았던 걸까요.
당장 달마다 나가야 하는 돈이
정해져 있었는데도 말입니다.
아이들 먹을 것,
집에 들어갈 생활비,
쌓여 있는 빚,
밀리면 안 되는 돈들.
그 모든 것은 말로 줄어들지 않았고,
체면으로 해결되지도 않았습니다.
아내는 이혼을 하자고 했고,
남자는 오래 고민하다가
자주 반복되는 그 이혼하자는 말에 지쳐
며칠 뒤 정말 이혼을 하겠다고 합니다.
물론 이혼이 이루어지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 말버릇을 고치고 싶었을 겁니다.
사람을 자꾸 끝으로 몰아붙이면
정말 끝이 날 수도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결국
고민하고, 지치고, 계속 마음이 깎여나간 끝에
그는 정말 의욕이 불타오르고 열심히 하던
배달일을 어렵게 내려놓습니다.
그리고 기러기 아빠가 되어야 합니다.
박 사장은 밥을 사주며
그저 잘 지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 말밖에는 할 수 없었을 겁니다.
붙잡고 싶지만 붙잡을 수 없고,
화를 내고 싶지만 지금 화를 낼 상대는
눈앞에 없고,
대신 무너지는 사람 하나만
앞에 앉아 있었을 테니까요.
아내는 아이들과 같이 지내고,
아이들을 누구보다 사랑하는 아빠는
아내의 지인이 일하는 타 지역으로 가서
혼자 회사를 다녀야 됩니다.
아내 때문에.
박 사장은 그 모습을 참 안타깝게 바라봅니다.
미취학 자녀 둘.
한창 예쁠 때,
가장 많이 안아줘야 할 때,
아빠를 찾으며 뛰어올 나이,
그 시간에 떨어져 살아야 하는 상황을 보며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할 말은 많았습니다.
하지만 하지 않습니다.
정작
지금 가장 괴로운 사람은 본인이었을 테니까요.
위로라는 것도 상대가 견딜 힘이 있을 때 들어갑니다.
이미 무너진 사람 앞에서는
좋은 말도 때로는 아픕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쉽게 납득되지 않습니다.
돈을 벌어도 여기서 더 많이 벌 수 있고,
같이 이사를 가는 것도 아니고,
아이들과 떨어져 타 지역에 가서
홀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
그 이유가 남도 아닌
아내가 배달일을 하는 것이 보기 싫고,
남들 시선 때문이라는 것이었으니까요.
과연 그 아내는 현명했을까요.
배달일이 아이들이 커 간다는 이유로,
남들 시선 때문에
남편을 홀로 타 지역으로 보내야 했을까요.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타 지역에 가서도 회사를 마친 후
오토바이에 또 오릅니다.
투잡을 합니다.
아내는 여기서는 괜찮은가 봅니다.
아는 사람도 없고, 남의 시선도 없으니까요.
결국 보기 싫었던 것은
배달일이 아니라 아는 사람들 앞에서의
배달이었던 걸까요.
그렇다면 그 남자가 견뎌온 세월은
대체 무엇이 되는 걸까요.
결국
정말 기러기 아빠가 된 이유는
나의 제일 가까운 가족,
아내가 배달하는 게 보기 싫고
남들 시선 때문이었다는 것이었습니다.
평소 배달일을 하며 넘어져도 일어나는
오뚝이 아빠였습니다.
몸이 부서질 듯 힘든 날에도
다음 날이면 또 웃으며 나왔고,
비에 젖어도, 눈을 맞아도, 손이 얼어붙어도
그는 늘 다시 일어났습니다.
주저앉을 수 없었으니까요.
그의 등에 업힌 것은 짐이 아니라
가족이었으니까요.
남들의 무례함과 무시로 인한 서러움 투성이었지만, 한 번도 티 내지 않았던
오뚝이 아빠였습니다.
몸은 늘 피곤했고, 마음도 편한 날이 적었지만
그는 묵묵히 버텼습니다.
아이들 앞에서는 웃었었고,
아내 앞에서는 괜찮은 척했고,
밖에서는 더 벌어야 한다는 생각 하나로
자신을 밀어붙이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떠나기 전,
박사장은 작게나마 송별회를 열어주었습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었지만,
함께 울고 웃으며 정이 들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비 오는 날 같이 비를 맞았고,
더운 날 같이 땀을 흘렸고,
콜을 함께 뛰며 욕도 하고 웃기도 했던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직장 동료라기보다 전우 같은 사이였습니다.
술잔이 오가고 웃음소리도 있었지만,
그날의 분위기는 마냥 밝지 못했습니다.
모두가 알고 있었으니까요.
이 자리가 마지막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다들 더 애써 웃었습니다.
괜히 더 농담을 던지고, 괜히 더 잔을 부딪히며
평소처럼 보내려 했습니다.
그래야 덜 슬플 것 같았으니까요.
그리고 정말 떠나야 할 때가 왔습니다.
그는
한 사람 한 사람을 바라봅니다.
눈가는 이미 붉어져 있었습니다.
애써 웃으며 말합니다.
“다들 안전 운행하세요.”
그 한마디를 남기는데 목소리가 떨립니다.
눈이 빨개진 채
애써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는 그 모습에
남아 있던 사람들 모두 쉽게
고개를 들지 못했습니다.
늘 시끄럽던 놈이
그날만큼은 조용했습니다.
늘 장난치던 놈이 그날만큼은
웃지 못했습니다.
그의 뒷모습이 멀어집니다.
너무 슬펐습니다.
하지만 잡을 수는 없었습니다.
잡고 싶다고 잡을 수 있는 일이 아니었으니까요.
남겨진 직원들과 박 사장은
그저 멀어져 가는 그의 뒷모습만 바라봅니다.
마음이 참 아팠습니다.
함께 땀 흘리고, 함께 버티고,
함께 웃었던 사람이 이렇게 허무하게
떠나가는 것이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박 사장은 생각했습니다.
사람 하나 떠나는 게 이렇게 허전할 줄 몰랐다고.
아니, 사람이 떠나는 게 아니라 추억 하나가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고.
그는 그렇게 정들었던 사람들과
정들었던 자리,
그리고 정들었던 박 사장을 뒤로한 채
타 지역으로 떠나갑니다.
누군가는 손을 흔들었고,
누군가는 끝까지 말없이 바라봤습니다.
그리고 모두가 같은 생각을 했습니다.
참 좋은 사람이었는데.
참 열심히 살던 사람이었는데.
그런데 그를 무너뜨린 것은
남들의 시선이 아니었습니다.
제일 가까운 가족의 시선이
남들과 다르지 않을 때도 있다는 것.
그 사실이 사람을 더 깊게
무너뜨리기도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남의 무시는 억울해서라도 버텨집니다.
그런데 사랑한다고 믿었던 사람이
내 삶을 창피해할 때, 그건 상처가 아니라
존재를 흔드는 일이 됩니다.
내가 버텨온 시간,
내가 견뎌온 모멸,
내가 참고 삼킨 하루들이
한순간에 초라한 것으로 밀려나는 기분.
그건 분노보다 깊고,
서러움보다 오래갑니다.
그래서 더 잔인했습니다.
세상이 아닌 가족에게 무너졌다는 사실이.
마지막 사람은 남에게 무너지는 것보다
가장 믿었던 사람에게 작아질 때
더 오래 주저앉습니다.
그리고 때로는 가족이라는 이름이
가장 안전한 울타리가 아니라,
가장 아픈 시선이 되기도 합니다.
끝까지 버텨온 사람을 진짜 무너뜨리는 건
세상의 조롱이 아니라 가장 가까운 사람의
부끄러움일 때가 있습니다.